지난 주말 베네수엘라 상공에 투입된 150대 이상의 미군 항공기 가운데, 직접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 기체가 있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보도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미 해군의 전자전 항공기 EA-18G 그라울러다. 통신과 레이더를 마비시키는 이 '전파 공격기'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에서 베네수엘라의 방공망을 신속히 무력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신호를 공격하는 전투기

그라울러는 사람이나 시설이 아닌 신호를 공격한다. 레이더와 군 통신을 탐지·교란·차단하는 전자전(EW)에 특화된 이 항공기는 보잉의 F/A-18F 슈퍼호넷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냉전 이후 한동안 뒷전으로 밀렸던 전자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규모로 활용되며 다시 주목받았고, 미군은 이를 베네수엘라 작전에 적극 적용했다.

그라울러
(그라울러. 위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라울러는 베네수엘라의 레이더 위치를 파악한 뒤 교란 신호를 쏘아 방공망을 '눈먼 상태'로 만들고, 군 통신을 차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군은 F-22, F-35, F-18 전투기와 B-1 폭격기, 드론을 동원해 방공·통신을 억제하는 동안 특수부대가 지상 작전을 전개했다.

노후 방공망의 취약성

베네수엘라는 소련·러시아제 방공체계를 다수 보유했지만, 최신 전자전에 취약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S-300 계열 미사일 방공체계를 12기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사한 체계는 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에서 비교적 쉽게 우회·무력화한 전례가 있다. 중국제 레이더도 일부 보유했으나, 공개된 모델은 구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분석가들은 "이번 전술은 러시아나 중국 같은 '준동급(nearp-peer)' 상대에선 동일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면서도, 베네수엘라처럼 수량은 있으나 현대화가 제한된 방공망에 대해선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미군 전자전의 재부상

전자전은 20세기 초 영국 해군의 무선 교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분야지만, 아프가니스탄·중동 분쟁에선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다. 그러다 **Ukraine war**에서 드론·위성 신호 교란이 대규모로 사용되며 판도가 바뀌었다. 러시아는 드론과 미제 무기체계의 신호를 방해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고, 이에 대응해 서방도 전자전 역량을 서둘러 강화하고 있다.

그라울러는 레이더를 속여 다수의 가짜 항적을 만들어내거나, 전파원을 탐지해 파괴하는 대레이더(anti-radiation)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다. 동체와 날개 아래 장착한 대형 포드에는 각종 전자전 장비가 밀집돼 있으며, 조종사 2명 중 1명은 전자전 전담 요원이다. 2021년 기준 기체 가격은 약 6,700만 달러로 알려졌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경제학

전자전은 방산업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분야 중 하나로 부상했다. 미 방산 대기업들은 관련 매출을 별도 공개하지 않지만, 유럽 업체들은 높은 마진을 보고한다. 통신·레이더를 교란하는 미사일, 적의 조준을 빼앗는 미끼(decoy), 신호 방어를 위한 레이저 통신과 광섬유 드론까지 기술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역시 전자전의 효율을 끌어올릴 핵심 변수로 꼽힌다.

다만 우려도 있다. 그라울러 전자전 포드의 업그레이드가 지연되는 등,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미 공군 장관 프랭크 켄달은 "전자전은 눈에 띄지 않아 과소평가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보듯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며 "개선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경고했다.

체포 작전의 숨은 주역

결국 이번 베네수엘라 작전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보여줬다. 마두로 체포라는 극적인 결과 뒤에는, 총성과 폭발 대신 전파와 신호를 장악한 그라울러의 역할이 있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