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독립성 vs 대통령 권한...이사 해임 놓고 경제적 파장 경고

미 연방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인 리사 쿡(Lisa Cook)을 해임하려는 시도를 심리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실제 경제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잇달아 제기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2일 보도했다 

21일(수) 열린 구두변론에서 대법관들은, 법원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현직 대통령뿐 아니라 향후 대통령들에게까지 통화정책 결정자를 손쉽게 해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는 100년 넘게 유지돼 온,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 운영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취지다.

이 같은 우려는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대법관의 발언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쿡 이사를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법무차관보 D. 존 사우어(D. John Sauer)에게 "대통령이 판단하는 '사유'만으로, 사법적 심사도 없고 절차도 없으며 구제수단도 없는 해임이 가능하다는 당신들의 입장은, 연준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또, 이러한 기준이 허용될 경우 대통령이 '무언가를 찾아내 서류 한 장으로 끝내는' 식의 해임, 즉 사법적 통제 없는 '표적 제거(search-and-destroy)'를 유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금리 인하 요구가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 의장 체제 하에서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온 데 불만을 표해왔으며, 파월 의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5월 이후 자신과 정책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인사를 새 의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 해임의 근거로, 연준 임명 이전 주택담보대출 신청 과정에서의 허위 진술 의혹을 들고 있다. 쿡 이사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통화정책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자신을 축출하기 위한 구실(pretext)에 불과하다고 반박해 왔다. 쿡 이사는 2022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으며, 임기는 2038년까지다.

리사 쿡
(연준 이사에서 해이되어 법정 소송 중인 Lisa Cook)

이와 별도로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는 이달, 워싱턴 연준 본부의 역사적 건물 두 채를 개보수하는 사업과 관련해 파월 의장을 상대로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 파월 의장 역시 이 수사가 연준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날 변론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 대법관은 쿡 이사 해임이 가져올 경제적 파장에 주목했다. 배럿 대법관은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제출한 의견서를 언급하며, 쿡 이사의 해임이 경기침체(recession)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사우어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쿡 이사 해임을 발표한 이후 주식시장이 상승했다는 점을 들어 시장의 우려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럿 대법관은

"나는 시장을 예측하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판사다. 하지만 만약 위험이 존재한다면, 그것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지 않는가."라고 선을 그었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단기적인 정치 압력으로부터 독립돼 있을 때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경제 성과를 낸다는 점이 확립된 원칙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높은 금리가 단기적으로 성장 둔화와 실업 증가를 초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 안정성을 높인다는 판단에 기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1년 동안 대통령 권한을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1년간 여러 사건에서 긴급 판단 형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기관 인사들을 해임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관들은 연준이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 기관이라는 점, 그리고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통화정책을 직접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쿡 이사 사건은 다른 사안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대법관은 "그녀를 유임시킨다고 해서 대통령이 부처를 운영할 권한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연준을 운영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해임을 막은 하급심 판사는, 사전 통지나 청문회 없이 이뤄진 해임 조치가 미 수정헌법 제5조가 보장하는 적법절차(due process)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현재 대법원은 쿡 이사의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이 하급심 결정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을 심리 중이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 사안을 충분한 숙고 없이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기관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하급심에서 모든 쟁점이 충분히 검토된 뒤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이 법 절차에 대한 국내외 신뢰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오는 6월 말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경우에 따라 더 이른 시점에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