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반도체·클라우드 투자 급증...최근 성장의 3분의 1가량이 AI 관련 효과

미국 경제가 인공지능(AI) 붐에 점점 더 깊이 의존하고 있다. 기술기업들은 AI 연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으며, 이를 위한 부채 발행도 크게 늘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AI 관련 투자는 미국 경제의 여러 축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은 건설 지출과 고용, 지방정부 세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AI 붐에 힘입은 반도체와 관련 기업 주가 상승은 가계 자산을 크게 늘렸고, 이는 소비 지출을 떠받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
(인공지능. 자료화면)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마이클 피어스(Michael Pearce)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요인들이 최근 미국 경제성장의 약 3분의 1을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AI 주도 경제"

바클레이스의 조너선 밀러(Jonathan Millar)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미국 경제는 매우 AI 주도적"이라며 "이 같은 추진력이 없었다면 미국 경제가 지금처럼 회복력을 보였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AI 붐은 강점인 동시에 취약점이기도 하다. 경제가 AI 투자와 AI 관련 주가 상승에 크게 기대고 있다면, AI 붐이 식을 경우 성장 동력도 함께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미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 지출은 직접 AI와 관련이 없고, 일부는 수입품 구매로 이어져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반적인 규모는 이미 상당하다.

AI 관련 기업투자 연율 1조5,000억달러

최근 발표된 미국 GDP 세부 자료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건설, 컴퓨터 및 통신장비 등 AI 관련 범주의 기업투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들 분야의 지출 속도가 12개월간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연율 기준 약 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2년 전 약 1조달러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000억달러가량 늘어난 셈이다.

상무부가 4일 발표한 자료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 증가가 뚜렷했다. 6월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은 연율 기준 683억달러로, 1년 전보다 215억달러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주택, 쇼핑센터, 병원 등을 포함한 다른 민간 건설 지출은 1,016억달러 줄었다. 미국 건설경기 안에서도 AI 데이터센터가 거의 유일한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가 다른 건설 수요 대체 가능성도

다만 AI 투자가 순수하게 경제를 추가 성장시키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Michael Feroli) 이코노미스트는 AI가 너무 많은 자원을 빨아들이면서 경제의 다른 부문을 밀어내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쓰이는 토지, 자재, 숙련 노동력이 다른 건설 프로젝트에 사용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AI만 빼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다고 볼 수는 없다"며 "AI와 관련된 활동과 금융시장 과열이 다른 활동을 밀어내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AI 투자 붐은 성장률을 높이는 동시에,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다른 산업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

대만산 반도체·컴퓨터 수입 급증

AI 투자 중 일부는 미국 내 생산이 아니라 수입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메모리 반도체와 컴퓨팅 장비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들어온다. 미국은 올해 1~5월 대만에서 컴퓨터 장비, 반도체, 전자부품 등을 약 900억달러어치 수입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약 200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급증한 수치다.

이런 수입은 미국 기업의 AI 투자에는 포함되지만, 미국 국내 생산을 직접 늘리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AI 지출 전체가 그대로 GDP 성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도체 가격 상승도 문제다. 메모리칩 가격이 급등하면서 같은 돈을 써도 기업들이 예전만큼 많은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AI 투자 규모의 실질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어스 이코노미스트는 AI 투자만으로도 최근 미국 GDP 성장의 거의 4분의 1을 설명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주식시장 상승도 소비 떠받쳐

AI 붐의 또 다른 경제 효과는 주식시장을 통한 자산 증가다.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가계 순자산은 174조달러에 달했다. 1년 전보다 13조달러 늘어난 규모이며, 증가분 대부분은 주식시장 상승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광범위한 S&P1500지수는 약 15% 추가 상승했다. 따라서 현재 가계 순자산은 당시보다 수조 달러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AI 관련 반도체 기업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기업 주가 상승이 이 같은 자산 증가를 주도했다. 가계 자산이 늘어나면 소비자들은 더 자유롭게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주식시장 자산이 1달러 늘어날 때 소비가 몇 센트씩 증가한다고 본다.

특히 주식을 많이 보유한 고소득층 소비가 이 효과를 크게 받는다. 이들의 지출은 여행, 고급 소비재, 서비스업 등 여러 분야를 떠받칠 수 있다.

피어스는 "이 투자 붐이 없었다면 미국 경제가 지금보다 더 차갑게 식어 있었을 것은 꽤 분명하다"고 말했다.

AI가 물가도 자극

AI 붐은 성장만이 아니라 물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반도체 수요, 전력 인프라 투자, 냉각 장비와 예비 발전기 수요가 늘면서 관련 품목 가격이 오르고 있다. 메모리칩 가격 상승은 소비재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9월 출시 예정인 아이폰 18 프로는 메모리칩 가격 급등이 없었다면 더 낮은 가격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AI 붐이 기업투자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일부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높여 소비자의 구매력을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하이퍼스케일러 투자, 4년간 4조달러 전망

최근 일부 AI 관련 주식이 하락했지만, AI 지출 붐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팩트셋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은 알파벳(Alphabet), 아마존(Amazon), 메타플랫폼스(Meta Platforms),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오라클(Oracle) 등 이른바 5대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이 2029년까지 4년 동안 거의 4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불과 한 달 전 전망보다 3,000억달러 이상 늘어난 수치다.

AI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형 기술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서버, AI 칩, 전력 설비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다. 각 기업은 AI 수요를 놓치지 않기 위해 투자 속도를 늦추기 어렵다.

부채시장도 AI 붐 떠받쳐

AI 투자는 기업 내부 현금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부채시장도 중요한 자금 공급원이다.

바클레이스는 5대 하이퍼스케일러와 AI 신규 강자로 부상한 스페이스X(SpaceX)의 올해 채권 발행액이 2,8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약 1,090억달러에서 크게 늘어난 규모다.

이는 AI 붐이 주식시장뿐 아니라 채권시장에도 깊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막대한 부채를 발행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주식시장이나 부채시장이 흔들릴 경우다. AI 관련 주가가 크게 하락하거나 채권시장에서 자금 조달 비용이 급등하면, AI 투자 붐은 갑자기 둔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가 기대고 있는 성장 축도 약해질 수 있다.

AI는 성장동력이자 위험요인

AI 붐은 미국 경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꾸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은 민간 건설 지출의 중심이 되고 있고, 반도체와 컴퓨팅 장비 수입은 급증하고 있다. 대형 기술기업들은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AI 관련 주가 상승은 가계 자산과 소비를 떠받치고 있다.

이 모든 효과를 합치면 AI는 최근 미국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최근 성장의 3분의 1가량이 AI 투자와 AI 관련 자산 효과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커지고 있다. AI 투자가 둔화되거나, AI 주식이 급락하거나, 부채시장이 자금 공급을 줄이면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식을 수 있다.

AI는 이제 기술 산업의 한 분야가 아니다. 건설, 금융, 소비, 무역, 물가, 고용, 지방재정까지 건드리는 거대한 경제 변수다.

미국 경제는 지금 AI 붐을 성장 엔진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그 엔진이 계속 같은 속도로 돌 수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