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관리(HR) 소프트웨어 기업 립플링(Rippling)이 자사 직원들의 인공지능(AI) 사용량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증한 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자체 도구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고 테크크런치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립플링은 이번 주 'AI 스펜드 콘솔(AI Spend Console)'이라는 제품을 공개했다. 기업이 AI 지출을 추적하고 억제할 수 있도록 돕는, 이른바 '토큰맥싱(tokenmaxxing·토큰 과소비)' 방지 제품이다.
이 도구의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개별 직원과 팀, 직군별로 얼마나 많은 AI 비용을 쓰고 있는지를 매핑하고, 그 지출이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이른바 'AI 슬롭(slop, 저품질 산출물)'만 양산하는지를 가려낸다는 점이다.
립플링은 블로그 게시물에서 이 도구가 "AI 지출이 많으면서도 동료들이 코드 리뷰에서 재작업을 자주 요청하는 엔지니어가 누구인지"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 40%까지 치솟은 R&D 예산 대비 토큰 지출
이 제품은 립플링이 올해 초 다른 많은 기업들처럼 '토큰맥싱'에 전면적으로 뛰어든 뒤, 직원들이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탄생했다. 맷 매키니스(Matt MacInnis)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지난 3월 경영진 회의에서 아담 시비에치키(Adam Swiecicki)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충격적인 수치를 제시했던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테크크런치에 말했다.
당시 립플링은 연구개발(R&D) 조직 인건비 예산의 40%를 AI 토큰 비용으로 소진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해당 부서 직원 전체 보상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토큰 비용으로만 쓰고 있다는 의미로,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였다. R&D 조직은 대다수 기술기업에서 엔지니어링 부문을 포괄한다.
지출은 매달 80%씩 늘어나고 있었고, 이 추세가 계속되면 다음 해에는 고연봉 R&D 인력 전체 인건비의 거의 90%에 달하는 금액을 AI 토큰에 쓰게 될 상황이었다.
매키니스는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경영진은 즉시 이 지출의 실체와 그 대가로 무엇을 얻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긴급'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실제로 이번 신제품 출시 광고에는 시비에치키 CFO가 스툴에 앉아 있고, 직원들이 현금 뭉치를 집어 종이 파쇄기에 넣는 장면이 등장한다.
립플링이 분석한 결과, 전체 직원의 약 10~15%가 전체 AI 지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한 엔지니어는 월 5만 달러를 쓰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블로그에서 밝혔다.
◇ 최고급 모델로 몰리는 습관…"AI 랩들은 지출 억제할 유인이 없다"
립플링은 AI 사용 자체를 중단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크게 억제하는 쪽을 택했다. 우선 회사가 사용하는 각 도구인 커서(Cursor), 오픈AI(OpenAI), 앤스로픽(Anthropic)과 각각 최대 지출 한도를 협상했다. 그 과정에서 명확한 문제가 드러났다. 직원들이 모든 작업에 가장 최근에 나온, 가장 비싼 최상급(frontier) 모델을 기본값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키니스는 "앤스로픽이나 오픈AI 같은 추론 제공업체들은 여러분의 지출을 통제하도록 도울 유인이 전혀 없다"며 "그들은 오히려 지출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도록 만들 유인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업체가 제대로 된 사용량 인사이트를 제공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2026년 초 여러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문제였다는 게 매키니스의 설명이다. 이제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기업들은 두 가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첫째, 여러 AI 연구소의 다양한 가격대 모델을 함께 써야 하며, 그중에는 최상급 오픈웨이트(open-weight) 모델, 특히 중국산 모델도 포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립플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커 콘래드(Parker Conrad)는 지난달 자사 내부 용도로 자체 벤치마크를 진행한 결과, 스페이스X(SpaceX)의 그록(Grok)이 전반적으로 최고 성능을 보였지만 "GLM 5.2는 비용이 85% 더 낮으면서도 최상급 모델과 거의 동일한 성능"을 냈다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스페이스X는 현재 그록을 비롯해 수십 개 모델에 접근할 수 있는 커서를 인수해 소유하고 있다. 즈에이아이(Z.ai)의 GLM 5.2는 최근 기술기업들 사이에서 코딩 작업용으로 특히 선호되는 중국산 모델로 자리 잡았으며, 데이터브릭스(Databricks) 역시 이 모델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둘째, 기업들은 프롬프트를 작업에 가장 적합하고 비용 효율적인 모델로 라우팅해주는 'AI 게이트웨이'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립플링도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자체 AI 게이트웨이를 구축했고, 이를 이번 신제품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매키니스는 이미 다른 게이트웨이를 쓰는 기업도 AI 스펜드 콘솔을 사용할 수 있지만, 지출을 통제하는 기능을 원한다면 립플링의 게이트웨이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 토큰 지출 40%→15%로 낮췄지만 사용량은 그대로
AI 스펜드 콘솔은 하루 프롬프트 수와 작업 산출물(코드 라인 수·풀 리퀘스트 수), 지출액 등을 결합해 점수를 산출하는 대시보드를 제공한다. 이는 과거 '토큰맥싱' 시기에는 '리더보드'로 불리던 개념이다.
이 도구를 도입한 뒤 립플링은 토큰 지출을 R&D 인건비 예산의 40%에서 약 15%로 낮췄다고 밝혔다. 다만 AI 사용량 자체를 줄인 것은 아니다. 매키니스에 따르면 CFO가 경고를 처음 제기했던 달, 립플링은 최대 6050억 개의 토큰을 소비했다. 지난 7월에도 내부 사용량은 다시 6000억 개에 달했지만, "7월 토큰 지출 비용은 4월 지출 비용의 37% 수준"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매키니스는 "이는 이제 우리가 더 효율적인 모델로 라우팅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영업팀이 문법 교정 같은 작업에 페이블(Fable) 같은 고가 모델을 쓰게 하지는 않는다"고 농담을 곁들였다.
◇ 기술만으론 부족…"AI 캡틴" 두고 전 부서 확산 추진
립플링은 기술적 해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직원들을 찾아내 다른 직원들을 돕는 역할인 'AI 캡틴'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엔지니어링 외 부서로 AI 활용을 확산하려는 노력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매키니스는 전했다. 지금까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주된 사용자였지만, 예를 들어 고객 온보딩 팀을 위해 메일링 데이터 처리와 데이터 대조 작업 일부를 자동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경우 대시보드는 생산성을 더 많은 고객을 온보딩한 실적으로 측정하게 된다.
매키니스는 "일반관리(G&A) 부서와 고객 대응 부서의 토큰 소비를 생산성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런 기술을 더 넓은 직원층에게 개방하는 것은 아예 물 건너간 얘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립플링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토큰맥싱 열풍이 정반대 방향으로 너무 크게 흔들린 결과 이제 직원들의 AI 접근권이 슬랙(Slack)이나 이메일처럼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생산성을 측정할 수 없다면, 모든 직원에게 AI 접근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AI 스펜드 콘솔은 립플링의 HR 구독 서비스에 포함돼 제공되며, 다만 AI 사용량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매키니스에 따르면 단독 제품으로도 구매할 수 있으며, 다른 HR 시스템과 통합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