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3일 치러지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가 민주당의 사비에르 베세라(Xavier Becerra) 전 미 보건복지부 장관과 공화당의 스티브 힐턴(Steve Hilton) 전 폭스뉴스 진행자의 2인 구도로 좁혀졌다고 LA타임스가 10일(월) 보도했다. 예비선거 과정에서 스캔들과 반전이 잇따른 끝에 본선 무대에 오른 두 후보는 노동자 계층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십대 시절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는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지만, 주의 미래를 놓고는 정반대의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번 선거는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재출마가 불가능해진 개빈 뉴섬(Gavin Newsom) 현 주지사의 후임을 뽑는 자리다. 뉴섬 주지사는 베세라를 공식 지지했으며, 2028년 대선 출마 가능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세라가 당선되면 주의 진보 정책과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저항 노선을 그대로 이어가겠다고 공언한 반면, 힐턴은 세금 감면과 규제 철폐, 주 정부 축소를 통해 정책 방향을 전면 되돌리겠다고 밝히고 있다고 LA타임스는 설명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맞대결을 앞둔 베세라 VS 힐튼. AI )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지지자가 공화당 지지자보다 거의 2대 1 비율로 많은 주다. 힐턴 본인도 이번 선거가 힘겨운 싸움이라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예비선거 이후 그는 무당파 유권자층 공략에 집중하면서, 16년간의 민주당 집권 동안 빈곤과 빈부격차가 오히려 심화했다는 점을 부각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본선이 다가오면서 두 후보 모두 각자의 정책 의제를 구체화하고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한 공세를 서로에게 퍼붓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 베세라,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120건 트럼프 행정부 소송 주도

베세라(68)는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난 멕시코 이민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사무직 노동자였고 아버지는 채소 수확과 건설업 등 여러 일을 했다. 그는 아내인 캐롤라이나 레예스(Carolina Reyes) 박사와 새크라멘토에 거주하며 성인이 된 세 딸을 두고 있다.

베세라는 뉴섬의 후임을 노리는 다수 민주당 후보 중 한동안 열세로 평가받았으나, 성폭행 및 성비행 혐의로 기소된 에릭 스왈웰(Eric Swalwell) 전 하원의원이 경선을 중도 사퇴하면서 지지율 1위로 뛰어올랐다. 스캔들 이후 스왈웰의 선거 참모 다수가 베세라 캠프로 옮겨왔고, 새 대안을 찾던 유권자들은 그의 차분한 태도와 수십 년에 걸친 정부 경험에 호감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6월 2일 예비선거에서 28.1%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캘리포니아의 '톱2 예비선거' 제도에 따라 정당과 무관하게 모든 후보가 동일한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렸고, 1·2위 득표자가 11월 본선에 진출했다.

베세라는 그동안 캘리포니아 민주당 정치권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꾸준한 존재감을 보여온 인물로, 당선되더라도 위험을 최소화하며 현 정책 기조를 이어갈 후보로 평가받는다. 어머니는 과달라하라 출신이고 아버지는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나 티후아나에서 자랐다. 세 자매와 함께 새크라멘토에서 성장한 베세라는 고등학교 시절 사용하지 않은 스탠퍼드대 지원서를 버리려던 동급생을 설득해 이를 넘겨받아 직접 작성해 합격했고,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해 법학과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내가 의대를 마치는 동안 매사추세츠에서 잠시 법률구조 업무를 하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아트 토레스(Art Torres) 전 주 상원의원의 입법보좌관과 부검찰총장으로 일했다. 몇 년 뒤 샌게이브리얼밸리 지역 주 하원의원 선거에 영입됐다. 캘리포니아 선거 정치에서 긴 경력을 쌓았지만, 올해 전까지는 수십 년간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적이 없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영향력 있는 라틴계 인사들의 지원에 힘입어 첫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했고, 2년 뒤에는 연방 하원의 공석에 당선돼 이후 24년간 의석을 지켰다.

2017년 제리 브라운(Jerry Brown) 당시 주지사는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가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생긴 주 검찰총장 공석에 베세라를 임명했다. 그는 곧 1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법적 대항마로 떠올라, 이민 단속과 청정대기·멸종위기종 보호, 오바마케어(적정부담보험법) 등을 둘러싸고 12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다.

4년 뒤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베세라를 방대한 조직인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지명했고, 그는 상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인준됐다. 그러나 재임 중 코로나19 백신 접종 캠페인 기간 낮은 대외 노출도로 비판받았고,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어온 이주 아동 수만 명에 대한 관리 부실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뉴욕타임스 조사에 따르면 검증 절차가 축소된 결과 다수의 아동이 공장과 농장, 건설현장 등 위험한 일자리에서 노동에 동원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베세라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 정도 규모의 아동을 돌볼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부처를 넘겼다고 반박하며, '실종'된 무연고 미성년자 수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이견을 밝혔다.

베세라는 자신의 선거자금 계좌에서 22만5000달러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 전직 참모 2명 및 로비스트가 연루된 부패 사건과도 연결돼 있다. 다만 본인은 어떤 위법 행위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그의 전 비서실장인 션 매클러스키(Sean McCluskie), 뉴섬 주지사의 전 비서실장이자 민주당 자문역인 다나 윌리엄슨(Dana Williamson), 로비스트 그렉 캠벨(Greg Campbell)은 모두 연방 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예비선거 이후 베세라는 공개 행사를 거의 열지 않으며 낮은 자세를 유지해왔다. 힐턴이 상대의 선거운동 부재를 비판하며 토론을 제안하자, 베세라의 대변인 조너선 언더랜드(Jonathan Underland)는 그가 "트럼프의 혼란을 캘리포니아 가정에 들이지 않을 주지사를 뽑기 위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힐턴과의 토론에 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 힐턴, 영국 총리 자문역·폭스뉴스 진행자 출신…트럼프 지지 발판

힐턴(56)은 영국에서 태어나 현재 베이 에어리어의 애서턴에서 아내 레이철 웨트스톤(Rachel Whetstone)과 살고 있다. 웨트스톤은 구글, 우버, 페이스북, 넷플릭스에서 홍보 임원을 지냈으며 부부는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공화당 소속이다.

힐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공화당 표를 결집해 예비선거에서 24.6%를 얻어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다만 트럼프의 지지 선언은 그가 극도로 인기 없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힐턴은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것에 대해 "매우 영광"이라고 밝혔지만, 예비선거 이후에는 무당파와 라틴계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국가 정치에 대한 견해와 무관하게 캘리포니아의 주거비, 노숙 문제 등에 불만이 있다면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국가 정치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그 변화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힐턴은 또한 이주 아동 위기와 관련한 베세라의 대응에 계속 초점을 맞추며, 보건복지부가 자신들을 인신매매업자에게 넘겼고 강제노동과 성적 학대에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내부고발자와 청소년들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런던에서 헝가리 내전을 피해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힐턴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영국 보수당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문역이었다. 영국 정치권에서 그는 보수당이 동성결혼과 친환경 정책을 수용하도록 이끈 기발하지만 뛰어난 마케팅 전략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BBC 정치 시트콤 '더 씩 오브 잇(The Thick of It)'에서 보수당의 '친환경적이고 미디어에 능하며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소통 담당 임원 스튜어트 피어슨으로 풍자되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의 초기 지지자였다.

힐턴과 가족은 아내 웨트스톤이 구글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로 승진하면서 2012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베이 에어리어에서 그는 스탠퍼드대 방문학자로 활동했고, 초당파 정치 후원 플랫폼인 크라우드팩(CrowdPac)을 공동 창업했으나 트럼프 지지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회사를 떠났다.

이후 6년간 폭스뉴스에서 주간 프로그램 '더 넥스트 레볼루션(The Next Revolution)'을 진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로 자주 클립을 공유하는 인물이 됐다. 방송에서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봉쇄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고,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뒤에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힐턴은 2021년 미국 시민으로 귀화했고, 지난해에는 영국 국적을 포기했다. 주지사 출마 전에는 주거비, 노숙 문제, 주의 기업 환경 등을 연구하는 정책 연구소 골든투게더(Golden Together)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이 주창하는 '긍정적 포퓰리즘',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실패' 등을 다룬 여러 저서도 펴냈다.

◇ 주거 문제: 규제 완화엔 공감대…방식은 이견

캘리포니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인 심각한 주택 부족과 천정부지 물가 문제는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드물게 두 후보가 공감대를 이루는 지점이다. 예비선거 기간 주요 후보들은 모두 주택 건설과 허가 절차의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베세라는 당선되면 캘리포니아의 주택 부족을 주 차원의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행정부에 건설비 절감 방안을 찾도록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첫 주택 구입자를 위한 주 다운페이먼트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기관 투자자의 단독주택 매입을 막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주법에 따라 충분한 주택 계획이나 건설을 하지 않는 도시들을 상대로 한 뉴섬 주지사의 법적 대응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1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저렴주택 채권인 '주민투표안 1(Proposition 1)'과 250억 달러 규모의 다운페이먼트 지원 프로그램인 '주민투표안 37(Proposition 37)'을 지지하고 있다.

힐턴은 여러 겹의 허가 규정이 소형·저가형 신축 주택 건설을 실질적으로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000제곱피트 규모의 신축 주택 건설을 우선시해 승인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관련 수수료를 낮추고, 새로운 주택 규제에 대한 유예를 두겠다고 밝혔다. 또한 신규 주택 개발을 지연시키거나 중단시키는 소송을 제한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환경품질법(CEQA)을 개정하겠다고 제안했으며, 일정 비율의 저렴주택을 포함하면 개발업자가 사업 규모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주의 '밀도 보너스(density bonus)' 법에도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캘리포니아 부동산중개인협회(California Assn. of Realtors) 주최 토론회에서 "우리는 위로만이 아니라 바깥으로도 건설할 수 있게 해야 하고, 단독주택에 대한 편견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 물가 문제: 힐턴 "감세와 규제 완화"…베세라 "가격 담합 대응"

힐턴은 휘발유값을 3달러로 낮추고 전기·수도 등 유틸리티 요금을 절반으로 줄이며, 첫 15만 달러의 소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그가 이전에 내놓은 10만 달러 기준안보다 상향된 수치다. 그는 "비대하고 관료주의적인 보모국가에 해머를 내리치겠다"며 에너지 비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한 기후 정책들을 되돌리면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휘발유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국내 원유 생산 확대와 정유시설 규제 완화를 제안했다.

베세라는 "가격 폭리와 부당한 요금 인상에 맞서고, 보육 및 필수 생활비 지원을 확대하며, 시장이 실패한 곳에서는 주 정부의 힘을 활용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물가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검찰총장 시절 병원 시스템의 반경쟁적 관행에 맞섰던 경험과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수급자를 위해 처방약 가격을 더 저렴하게 협상했던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앞서 주택보험료와 유틸리티 비용을 동결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힐턴과 보험업계 관계자들이 이 방안의 법적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고 매체는 전했다.

◇ 의료비와 불법 이주민 건강보험

베세라는 선거 초반 자신을 "의료 주지사"로 내세우며, 주요 의료 법안을 입안하고 시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비용을 낮추고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예비선거 과정에서 다른 민주당 후보들로부터 주 차원의 단일보험자 의료제도 공약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에 대해 베세라는 전국 단위의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12개 항목 의료 계획에는 주의 복제약 제조 프로그램인 'CalRx' 확대, 원격의료 접근성 확대, 질병 예방·검진을 위한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 투자 등이 포함돼 있다. 뉴섬 주지사와 주 의회는 수년간 불법 이주민에 대한 메디캘(Medi-Cal) 적용 범위를 확대해오다 지난해 늘어나는 비용을 억제하기 위해 신규 등록을 동결했다. 베세라는 무보험자를 응급실로 몰아넣는 것보다 정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라며, 해당 동결 조치를 되돌리겠다고 밝혔다.

반면 힐턴은 지난 6월 초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여기 있을 자격도 없는 다른 나라 국민에게 제공되는 무상 의료"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건강보험사 간 경쟁을 늘리고 의료업계의 통합을 막아 비용을 낮추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