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경기 가속 신호 보내지만 고용은 정체...AI 투자와 기업 이익이 성장 기대 견인

미국 증시는 경제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고용시장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와 기업 이익 급증이 시장을 끌어올리는 반면, 신규 고용은 약해지는 이른바 '고용 없는 호황'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그레그 입(Greg Ip) 칼럼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공식 성장률은 아직 호황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최근 1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2.1%로 전년과 비슷했고, 2분기 성장률은 연율 1.5%에 그쳤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전혀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관세, 전쟁, 고유가, 실망스러운 GDP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시는 올해 들어 13% 올랐다.

뉴욕 증권거래소 NYSE
(뉴욕 증권거래소. 자료화면)

지난주에는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이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합의에 가까워졌다고 말하자 증시가 사상 최고치로 뛰었다. 실제로 해협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주가는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거품인가, 미래 성장 신호인가

증시와 GDP 사이의 괴리를 설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식시장이 거품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이 미래의 성장 가속을 먼저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일반적인 거품에서는 주가가 이익보다 더 빨리 오르면서 주가수익비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최근 1년간 미국 증시에서는 오히려 기업 이익이 주가보다 더 빠르게 늘었다.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투자이익 효과로 실적이 부풀려진 아마존(Amazon)과 알파벳(Alphabet)을 제외해도, S&P500 기업의 2분기 이익은 지금까지 32% 증가했다.

그 결과 밸류에이션 배수는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단순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제 기업 이익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가 이익 성장의 핵심 동력

기업 이익 급증의 핵심 배경은 AI다. AI 붐은 클라우드 저장공간,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들이 받기 시작한 관세 환급금도 일부 실적 개선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흐름은 기술주나 AI 관련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따르면 S&P500 기업의 중간값 기준 이익 증가율은 2년 전 8%에서 최근 13%로 높아졌다. 에너지와 금융을 제외하고, 물가와 환율 변동을 조정한 S&P500 기업 매출도 약 8% 증가했다. 이는 전체 GDP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초기에는 소수 AI 관련 대형주가 시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제 상승세는 더 넓어졌다. 올해 들어 경기 민감도가 높은 은행주와 소형주가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 대형 기술주보다 더 많이 올랐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기업 실적 발표에서 "광범위한"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PNC파이낸셜서비스의 빌 뎀착(Bill Demchak) 최고경영자도 AI가 GDP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산업과 지역 전반에서 대출 증가가 나타나는 만큼 AI만이 유일한 동력은 아니라고 말했다.

기업은 잘 벌지만 사람은 덜 뽑는다

문제는 이런 이익과 매출 증가가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7월 전체 비농업 고용은 감소했다. 지난 12개월 동안 고용이 줄어든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민간부문 고용 증가도 최근 1년간 월평균 5만 명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이런 흐름은 경기침체가 아닌 시기에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실업률은 4%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유는 노동력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계속되고, 이민 유입도 줄어들면서 구직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

즉 실업률이 낮다고 해서 고용시장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자리가 많이 생겨서 실업률이 낮은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 줄어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는 측면이 크다.

노동 수요도 약하다

노동공급 감소만이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의 노동 수요도 강하지 않다.

채용공고는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 부근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이 인재 확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면 임금 상승률에서 그 신호가 나타나야 하지만, 연간 임금 증가율은 3.2%로 팬데믹 이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기업들이 매출과 이익을 늘리면서도 신규 인력 채용에는 신중하다는 뜻이다. AI와 자동화, 생산성 향상, 비용 통제, 노동시장 불확실성이 결합하면서 "성장하지만 고용하지 않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AI 낙관론의 극단적 시나리오

스트라이프(Stripe) 최고경영자 패트릭 콜리슨(Patrick Collison)은 최근 X에서 150만 팔로어를 대상으로 경제 전망 설문을 진행했다. 약 1만3,000명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향후 5년간 경제성장률이 평균 4.3%로 두 배 가까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동시에 고용은 약 8%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는 AI 낙관론자들이 상상하는 극단적 시나리오다. AI가 경제 산출을 크게 늘리는 대신, 수천만 명의 노동자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미래다.

칼럼은 이런 전망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 산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고용이 그렇게 큰 폭으로 붕괴한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치의 정확성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과거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고용 없는 호황이 이제 실제 경제 흐름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와 데이터센터 부채가 변수

다만 주식시장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계속 흘러갈지는 불확실하다.

소비 수요는 임금 상승세가 약한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견조했다. 그러나 이는 많은 가계가 저축을 줄이며 소비를 유지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또 민간투자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막대한 부채 발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AI 인프라 확장을 위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런 투자도 무한정 이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당장은 이런 흐름이 계속될 수 있다. 특히 AI가 낙관론자들의 기대 중 일부라도 실현한다면, 기업 이익은 고용 증가 없이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증시는 호황, 노동시장은 침체 직전

미국 경제는 지금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증시는 기업 이익과 AI 투자, 광범위한 매출 증가를 반영하며 호황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전혀 다른 신호를 보낸다. 고용은 줄거나 매우 느리게 늘고, 채용공고는 낮으며, 임금 상승률도 둔화됐다.

과거에는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도 함께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AI와 자동화, 인구구조 변화, 이민 감소가 맞물리면서 그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있다.

이것이 완전한 '고용 없는 호황'의 시작인지, 아니면 일시적 괴리인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미국 경제는 분명히 새로운 형태의 성장 실험을 하고 있다. 기업은 더 많이 벌고, 주가는 오르지만, 일자리는 따라오지 않는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