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심야 협상 끝에 전력회사(유틸리티)의 산불 배상 책임을 보험사와 지방정부로 떠넘기는 내용의 입법 추진을 대부분 철회하기로 주 의회 지도부와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뉴섬 주지사는 수주간 이어진 비공개 협상과 산불 피해 생존자들의 거리 시위 끝에, 전력회사가 낸 산불로 인한 비용 부담을 부동산 보험사 쪽으로 더 많이 옮기고 주 전역 보험료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법안 추진에서 물러섰다. 동시에 화재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배상금을 줄이고 피해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에 전가하는 방안도 철회했다. 산불 피해자들과 비판론자들은 애초 이 법안을 "기업 구제안"이라고 규정해 왔다.

토요일 오전 7시26분 공개된 96쪽 분량의 법안에 따르면, 뉴섬 주지사와 주 의회는 향후 전력회사발 산불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일부 조치에는 합의했다. 법안은 보험사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특정 수수료를 제한하고,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산불 피해 보상 청구권을 사고팔아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헤지펀드들이 남캘리포니아에디슨(Southern California Edison)을 상대로 한 이턴(Eaton) 산불 피해자들의 보상 청구권을 사들이겠다고 나서면서 제도 개혁 요구가 커진 바 있다. 법안에는 또 산불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더 신속히 지급하기 위한 주정부 프로그램 신설 내용도 포함됐다.

뉴섬 주지사는 성명에서 "이는 향후 산불 생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이 시스템은 부분적 개혁이 아니라 전면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 의회가 올해의 이 진전을 발판 삼아 내년에는 산불기금(Wildfire Fund)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전기요금을 안정화하며, 파산 절차에서 화재 피해자들이 다시는 무담보 채권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마무리해 주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복잡한 법안은 상원법안 492호(Senate Bill 492)라는 이름의 기존 법안 내용을 통째로 들어내고 새로 채워 넣는 이른바 '거트 앤드 어멘드(gut and amend)' 방식으로, 회기 종료(월요일)를 사흘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제출됐다. 2016년 유권자 투표로 통과된 주 헌법 조항은 법안이나 수정안이 상·하원 표결에 부쳐지기 전 최소 72시간 동안 공개돼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번 회기는 화요일까지 연장돼야 하는 상황이다.

이턴 산불 생존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수주 전부터 뉴섬 주지사에게 법안 세부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해 왔다. 지난 24일 밤에는 뉴섬 주지사가 새크라멘토 주지사 관저에서 의원들을 위한 행사를 여는 동안, 이턴 산불 생존자 50명 이상이 관저 앞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누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라고 외친 뒤 "주주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구호를 외쳤다.

토요일 산불 피해자들은 주지사의 입법 추진에 맞서 물러서지 않은 의원들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 에브리 파이어 서바이버스 네트워크(Every Fire Survivor's Network)의 조이 첸(Joy Chen) 상임이사는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온 생존자들이 새크라멘토를 찾아, 집과 공동체와 삶이 파괴된 사람들 편에 서 달라고 선출직 대표들에게 요청했다"며 "그들은 귀 기울여 들었다. 주에서 가장 막강한 이익집단들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그들은 생존자와 캘리포니아 가정을 중심에 놓았다"고 말했다.

에디슨을 비롯해 주 내 3대 영리 전력회사들은 지난해 이턴 산불로 일부 투자자들이 발을 빼고 주가가 급락하자, 뉴섬 주지사와 의원들을 상대로 회사와 주주들을 산불 배상 책임에서 한층 더 보호해 달라고 로비를 벌여 왔다. 정부 산불 조사관들은 19명이 숨지고 수천 채의 주택을 파괴한 이턴 산불의 원인이 에디슨 소유의 사용 중지된 송전선에서 발생한 전기 아크(electrical arcing)라고 밝혔다. 해당 송전선은 1971년 이후 사용되지 않았는데도 에디슨은 이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왔다. 현재 1만1000여 가구가 회사 측 과실을 주장하며 에디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며, 회사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전력회사들은 뉴섬 주지사와 의원들에게, 2019년 자신과 의원들이 함께 만든 제도의 틀을 더 강화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 법은 전력설비가 대형 산불을 일으켰을 때 전력회사가 파산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210억 달러 규모의 산불기금을 조성했으며, 이 기금은 현재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한 피해자들에게 에디슨이 지급하는 합의금을 보전해 주고 있다. 지난해에도 회기 종료 직전 공개된 입법을 통해 뉴섬 주지사는 향후 발생할 화재 비용을 대기 위한 180억 달러 규모의 두 번째 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뉴섬 주지사 측 참모진이 의원들에게 보낸 비공개 문건에 따르면, 주지사는 애초 이 기금이 전력회사에 보전해 주는 산불 피해 배상금 한도를 60억 달러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전기 요금 고객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이렇게 되면 전력회사의 산불 배상 책임은 줄어드는 대신 전기요금은 오르는 결과가 나올 뻔했으나, 이 조항은 토요일 아침 공개된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뉴섬 주지사는 토요일 성명에서 이번 법안이 화재를 낸 전력회사 임원들의 상여금 지급을 막아 책임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의 세부 조항에 따르면, 500채 이상의 건물이 피해를 입은 산불이 발생한 뒤에는 회사가 최고위 임원에게 '단기'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뉴섬 주지사는 2019년 당시 자신이 만든 법이 전력회사 임원 보수를 회사의 안전 성과와 연동시켰다고 자평한 바 있으나, 실제 조항은 회사들이 그 방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치명적인 이턴 산불에도 불구하고 페드로 피사로(Pedro Pizarro) 에디슨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임원들의 상여금은 지난해 오히려 급증했다. 피사로는 지난해 현금과 주식 등을 포함해 166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으며, 이는 2024년보다 20% 늘어난 액수다.

이번 새 법안은 에디슨,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acific Gas & Electric·PG&E), 샌디에이고가스앤드일렉트릭(San Diego Gas & Electric) 등 3개 영리 전력회사에만 적용된다. 캘리포니아 산림소방국(California Department of Forestry and Fire Protection) 자료에 따르면 이들 3개 전력회사는 캘리포니아 역대 최악 산불 20건 가운데 최소 7건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