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 밖 비축 원유 9,000만배럴서 2,900만배럴로 급감...이란 경제 위기 심화

이란의 핵심 외화 수입원인 원유 수출 수익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미국 해군의 이란 항구 봉쇄로 페르시아만에서 새로 출항하는 이란산 원유가 막힌 데다, 중국으로 향하던 해상 비축 물량까지 줄어들면서 테헤란의 경제 압박이 한층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선박 추적업체 케이플러(Kpler)는 미국이 7월 중순 해상 봉쇄를 재개한 이후 이란산 원유가 봉쇄선을 넘어간 사례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여전히 소량의 원유를 유조선에 싣고 있지만, 이 물량은 페르시아만 안에 갇혀 구매자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르그 섬에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
(하르그 섬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의 모습. 자료화면)

페르시아만 밖에서 이미 떠 있던 이란산 원유 비축분도 빠르게 줄고 있다. 케이플러에 따르면 봉쇄선 밖 유조선에 실려 있던 이란산 원유는 7월 중순 약 9,000만배럴에서 최근 약 2,900만배럴로 감소했다. 이 물량은 다음 달이면 소진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봉쇄 이후 새 원유 수출 사실상 중단

이번 압박의 핵심은 제재보다 직접적인 해상 봉쇄다. 과거 미국의 최대 압박 제재 기간에도 이란산 원유는 위장 선박과 환적, 중국 구매망을 통해 일정 부분 해외로 흘러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 해군이 페르시아만 출항 자체를 막으면서 새 원유 물량이 구매자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Reuters도 현재 봉쇄가 과거 제재와 달리 이란의 새 원유 화물을 중국으로 보내는 흐름을 차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르텍사(Vortexa) 분석가는 2019~2020년 최대 압박 제재 때도 이란산 원유가 매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지만, 7월 중순 이후처럼 지속적으로 거의 제로 수준까지 떨어진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란의 8월 원유 및 콘덴세이트 선적량은 하루 22만~25만5,000배럴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7월 약 74만배럴, 3월 약 200만배럴과 비교하면 급감한 수치다.

중국행 비축분도 고갈 단계

이란은 6월 중순 미국과의 양해각서 체결 이후 봉쇄가 일시 중단된 기간을 활용해 상당한 원유를 페르시아만 밖으로 옮겨놓았다. 이 물량은 이후 중국 등으로 전달되며 테헤란의 수입원이 됐다.

모흐센 파크네자드(Mohsen Paknejad) 이란 석유장관은 원유 판매와 고객 인도 과정이 페르시아만과 오만해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생명줄도 사라지고 있다. 케이플러는 현재 하루 약 100만배럴 규모로 이뤄지는 이란산 원유 인도가 대부분 중국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 속도라면 해상 비축 물량이 10월 중순쯤 바닥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미 인도된 화물에 대한 대금 흐름도 12월 중순쯤 마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 재정의 3분의 1이 원유 수입

원유 수익은 이란 경제와 정권 운영의 핵심이다. 이란 국가예산의 약 3분의 1은 통상 석유 수입으로 충당된다. 원유 판매는 이란군과 혁명수비대(IRGC)의 재정에도 직접 연결돼 있다.

미 재무부는 이란 군부와 혁명수비대가 전용 회사와 그림자 선단을 이용해 원유를 판매하고 자체 예산을 보충해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원유 수출이 막히면 단순히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수준을 넘어, 이란 정부의 재정 운용과 군사비 조달, 외환시장 방어 능력까지 흔들릴 수 있다.

리알화 급락·물가 폭등

이란 경제는 이미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공식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80%를 넘는 수준으로 전해졌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경제가 5.4%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최악의 경기 수축이 될 수 있다.

원유 수출 감소는 테헤란이 리알화 가치를 방어하고 수입 대금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경화를 줄인다. 이는 공장 원자재와 생활필수품 수입 비용을 높이고, 다시 물가를 밀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하마드 후세인(Hamad Hussain)은 트럼프 대통령이 8월 경제 압박 캠페인을 발표한 이후 리알화가 달러 대비 거의 15%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구매자도 대체 원유 찾기 시작

이란산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일부 중국 구매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산 원유로 눈을 돌리고 있다.

걸프 에너지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란산 원유는 물량 부족 때문에 일부 정유업체에는 오히려 경쟁 원유보다 더 비싼 선택지가 되고 있다. 이라크는 일부 유종에 배럴당 30달러에 가까운 할인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약 97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이는 이란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과거에는 이란산 원유가 제재 리스크 때문에 큰 할인 폭을 제공하면서 중국 구매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봉쇄로 실제 인도 가능성이 낮아지면, 할인보다 공급 안정성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생산 감축 압박도 현실화

봉쇄는 이란의 생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케이플러의 호마윤 팔락샤히(Homayoun Falakshahi) 원유 분석 책임자는 이란의 원유 재고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며, 이란이 생산량을 국내 필요 수준에 가깝게 낮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문가들이 올해 봄 첫 봉쇄 때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출길이 막히면 저장탱크가 가득 차는 "탱크톱"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육상 수송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팔락샤히는 이란이 트럭으로 옮길 수 있는 원유가 하루 최대 4만배럴 수준에 불과하다고 봤다. 이는 전쟁 전 하루 200만배럴에 가까웠던 수출량과 비교하면 극히 작은 규모다.

석유화학 수출도 타격

압박은 원유에 그치지 않는다.

이란의 두 번째 외화 수입원인 석유화학 부문도 해상 수출 의존도가 높다. 케이플러는 8월 이란 석유화학 제품 선적량이 2026년 초보다 약 3분의 2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원유와 석유화학이 동시에 막히면 이란의 외화 수입 기반은 크게 약해진다. 이는 수입 물가 상승, 산업 생산 차질, 재정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걸프 산유국은 우회로 확보

반면 다른 걸프 산유국들은 충돌 속에서도 상당한 물량을 계속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호송을 지원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해협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일부 원유를 내보내고 있다. Reuters도 UAE의 원유 수출이 7~8월 하루 약 290만배럴 수준을 유지했다고 전했다.

이 구조는 이란에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란의 원유는 봉쇄에 막혀 있고, 걸프 경쟁국의 원유는 계속 시장에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압박이 자국에는 역효과로 돌아오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계산과 이란의 반발 가능성

워싱턴의 전략은 경제 고통을 키워 이란이 핵 프로그램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 양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걸프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경제 압박이 반드시 이란의 후퇴로 이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후세인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많은 것은 이란 정권이 군사·지정학적 목표를 위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고통을 감수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이란 전문가 엘리 게란마예(Ellie Geranmayeh)는 미국의 압박이 일반 이란 가계에는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란 정권이 협상장에서 굴복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증거로는 이란 정권이 저항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실제로 최근 이란은 미국 함정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미국은 이에 대응해 이란 유조선 3척을 타격했다.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경제 압박과 군사 충돌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이란 편이 아니다

이란은 여전히 비석유 상품을 수출하고 있고, 일부 무역은 그림자 회사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원유와 석유화학이라는 핵심 외화 수입원이 막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미국의 해상 봉쇄는 제재만으로는 막기 어려웠던 이란산 원유의 흐름을 실제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밖에 남아 있던 해상 비축 물량도 빠르게 줄고 있어, 테헤란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 압박이 곧바로 정치적 양보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이란은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군사적·지정학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이나 걸프 산유국, 미국 자산을 겨냥한 보복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태는 미·이란 충돌이 단순한 군사전이 아니라 에너지 수송로와 외화 수입, 달러 결제망을 둘러싼 경제전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유 수출이 말라붙는다면 이란 경제는 더 깊은 위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그 압박이 협상으로 이어질지, 더 위험한 군사적 반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