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시설·전자상거래 물류센터·곡물 수출항·공항 압박...전쟁 비용 러시아 내부로 확산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습이 러시아 경제의 전략 부문에 본격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정유시설, 해운 터미널, 전자상거래 물류창고, 곡물 수출 인프라, 공항 주변까지 공격 범위가 넓어지면서 전쟁의 충격이 러시아 일반 국민과 기업 활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에서 더 큰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경제 기반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습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원유 정제 능력을 떨어뜨리고, 온라인 유통망을 흔들며, 곡물 수출과 민간항공까지 압박해 모스크바가 전쟁을 지속하는 비용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우크라전에서 사용된 FPV 드론
(우크라전에 사용중인 드론.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러시아의 군사 목표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도시와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드론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전은 그동안 전쟁의 직접 충격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던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유시설 타격으로 연료난 확산

가장 큰 피해가 나타난 분야는 에너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을 반복적으로 공격해 여름 동안 연료 부족과 배급 조치를 유발했다. 러시아에서는 운전자들이 연료가 남아 있는 주유소를 찾기 위해 이용하는 크라우드소싱 스마트폰 앱이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다.

에너지 분석업체 에너지 애스펙츠(Energy Aspects)에 따르면 러시아 정유업계는 8월 하루 38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하루 500만 배럴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러시아는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세계 주요 산유국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인도처럼 먼 나라에서 휘발유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또 구소련 시절 지어진 2급 정유시설에서 더 많은 연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연료 품질 기준을 완화했고, 디젤 수출도 금지했다.

러시아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은 올해 19% 올랐다. 8월 한때 주춤했던 가격은 최근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노력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러시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약 6%로, 중앙은행 목표치인 4%를 웃돌고 있다.

전자상거래 물류망도 공격 대상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대표 전자상거래 기업인 와일드베리스(Wildberries)와 오존(Ozon)이 사용하는 물류 허브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7월 이후 이들 물류 거점에 30차례 넘는 공격을 가했다. 일부 물류창고 단지에서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해당 플랫폼에서 상품을 판매하던 수천 명의 제3자 판매자들이 재고 손실을 입었다.

러시아 소상공인들은 불에 탄 재고를 보여주며 도움을 호소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모스크바 소재 리서치업체 데이터 인사이트(Data Insight)는 이 공격으로 인프라와 상품에 100억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고, 향후 12개월 동안 최소 120억달러의 매출 손실이 생길 것으로 추산했다.

푸틴 대통령은 와일드베리스 판매자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경제 인프라 공격으로 인한 러시아의 전체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1%, 약 250억달러에 달한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이런 비용이 러시아에 "치명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으로 번지는 우려

전자상거래 부문 타격은 금융권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국영은행 VTB는 와일드베리스와 해당 플랫폼 판매자들에게 주요 대출을 제공한 은행이다. 분석가들은 와일드베리스가 VTB에 60억~70억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규모가 VTB 전체 대출 장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와일드베리스를 둘러싼 불안은 모스크바 거래소에서 VTB 주가 매도세를 키웠다. VTB 주가는 올해 25% 넘게 하락했고, 8월 말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인들의 현금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2분기 개인들은 은행에 예금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인출했다. 이는 과거 흐름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중앙은행은 이런 변화가 모바일 인터넷 장애로 온라인 결제가 흔들린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많은 인터넷 장애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드론 침투가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드론 공격에 대비해 예방 차원에서 모바일 인터넷을 차단하는 경우가 잦았다.

곡물 수출도 급감

농업 부문도 타격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7월부터 흑해와 아조프해의 수출 터미널과 화물선을 공격해 러시아의 밀, 보리 등 곡물 수출 주요 통로를 사실상 차단했다.

농업 컨설팅업체 소브에콘(SovEcon)에 따르면 러시아의 8월 밀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 넘게 감소했다.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수출길이 막히면서 러시아 내부에는 곡물이 쌓이고 있다. 국내 공급 과잉은 러시아 농민들이 받는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반면 국제 밀 가격은 3년 만의 고점 부근에 있다.

러시아의 곡창지대로 꼽히는 로스토프 지역 주지사는 8월 말 지역 농업 차질을 이유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소브에콘의 안드레이 시조프(Andrey Sizov) 대표는 현재 상황을 "전례 없는 시나리오"라고 표현했다. 그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러시아 농가 파산이 잇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간항공 차질도 일상화

러시아를 자주 오가는 여행객들은 민간항공 차질을 우크라이나 드론 작전의 가장 체감되는 결과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러시아 공항들은 드론이 인근에서 탐지될 때마다 수 시간씩 폐쇄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항공편 지연과 취소가 반복되고 있다.

항공보안업체 오스프리 플라이트 솔루션스(Osprey Flight Solutions)에 따르면 8월 한 달 동안 러시아 전역에서 공항 폐쇄는 993건 발생했다. 이는 반년 전보다 약 5배 늘어난 규모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민간항공에 대한 압박을 더 키울 수 있음을 시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영공이 드론 활동으로 인해 "사실상 닫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여전히 러시아 공항을 운항하는 비서방권 항공사와 보험사들을 향한 경고로 해석된다.

전쟁 부담을 러시아 내부로 끌어들이는 전략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은 단순한 보복 차원을 넘어 러시아 경제의 주요 연결고리를 겨냥하고 있다.

정유시설 공격은 연료 부족과 물가 압력을 만들고 있다. 물류센터 공격은 전자상거래 업체와 소상공인, 은행권으로 파장을 넓히고 있다. 곡물 수출항 공격은 농민과 지역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공항 주변 드론 활동은 항공 운항과 여행, 보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이는 전쟁의 비용을 러시아 군부나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 소비자, 농민, 여행객 모두가 느끼도록 만드는 압박 전략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통해 러시아 내부의 피로감을 키우고, 모스크바가 전쟁을 계속하는 데 더 큰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공습 확대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말 이후 우크라이나 도시와 에너지 인프라, 주요 산업 부문을 겨냥한 전략폭격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제트 추진 드론과 각종 탄약을 동원해 키이우와 다른 도시들을 공격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경제 인프라 공격에도 군사 목표를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전쟁 손실을 인정하면서도 러시아에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이미 전시 호황 이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이 정유, 물류, 농업, 항공, 금융 부문을 동시에 압박하면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드론전, 전장 밖 경제전으로 확대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전은 전쟁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전선에서의 군사 충돌을 넘어, 러시아의 경제 인프라와 민간 생활을 겨냥한 압박전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유시설 타격은 러시아를 연료 수입국처럼 움직이게 만들었고, 전자상거래 물류센터 공격은 온라인 소비경제와 소상공인 생계를 흔들고 있다. 곡물 수출 차질은 농민과 지역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공항 폐쇄는 러시아 민간항공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공격이 전쟁 목표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전략은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할수록 더 많은 경제 부문이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데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드론은 단순한 군사 무기를 넘어 경제를 마비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작은 군사력을 장거리 드론과 정밀 타격으로 보완하며, 러시아 경제의 취약한 지점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향후 관건은 이 압박이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과 국내 여론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느냐다. 지금까지 푸틴은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은 러시아가 더 이상 전쟁의 경제적 충격을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