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원유 수출로 잇따라 압박...중동 불안 확산에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긴장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남단의 전략 요충지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 핵심 지역을 장악하면서 중동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미·이란 충돌로 이미 제한을 받는 가운데, 사우디 원유 수출의 또 다른 통로였던 홍해·바브엘만데브 항로까지 후티의 압박권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후티의 예멘 공세가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촉발된 중동 불안의 또 다른 확산 사례라며, 이번 사태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험을 키우고 외교적 해법 모색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티는 지난주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의 핵심 지역을 빠르게 장악했다.

예멘 후티반군의 홍해봉쇄
(후티반군의  바브엘만데브 해볗 시도. 자료화면 )

AP통신도 후티가 목요일 홍해 항구도시 모카(Mokha)를 점령한 데 이어 금요일에는 마윤섬, 즉 페림섬(Perim Island)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페림섬은 바브엘만데브 해협 한가운데 위치해 홍해로 들어가거나 빠져나가는 선박 흐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점이다.

두 개의 에너지 병목이 동시에 흔들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중동의 두 주요 에너지 병목이 동시에 불안정해졌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 산유국 원유가 인도양으로 나가는 관문이다. 미국은 이란 항구 봉쇄와 상선 호송을 통해 해협 통행을 관리하고 있고, 이란은 선박 공격과 제한구역 선언으로 미국의 통제를 흔들려 하고 있다.

반면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통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 해협이 위험해지자 일부 원유를 홍해 방향으로 돌려 수출해왔다. 그러나 후티가 모카와 페림섬을 장악하면서 이 대체 항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가 커졌다.

AP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호르무즈 위협 이후 사우디 원유를 아시아로 보내는 중요한 통로였지만, 후티의 사우디 유조선 공격으로 이 "안전판"도 약화됐다고 전했다.

사우디, 안전한 수출 경로 줄어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핵심 산유국이자 미국의 주요 중동 동맹국이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의 원유 수출 경로는 잇따라 압박을 받고 있다.

WSJ에 따르면 후티 공격이 확대되기 전에도 사우디는 홍해에서 후티의 선박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위험한 수출 경로를 번갈아 사용해야 했다. 사우디의 주요 홍해 항구를 통한 원유 수출은 7월 하루 460만배럴에서 8월 하루 약 250만배럴로 줄었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밝혔다. 사우디 원유 생산량도 지난해 평균 하루 940만배럴에서 8월에는 하루 600만배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WSJ는 전했다.

여기에 사우디가 페르시아만과 홍해 사이에서 원유를 옮기는 데 사용하는 동서 파이프라인도 공격을 받은 뒤 폐쇄됐다. AP는 사우디가 드론 공격 이후 주요 송유관을 중단했으며, 이는 이란 전쟁의 새 전선이 열렸다는 신호라고 보도했다.

미국, 직접 공격은 피하고 정보·자문 지원

사우디는 후티 대응을 위해 미국의 더 깊은 개입을 원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후티와의 싸움에 미국이 관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도울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정보와 표적 선정 지원을 제공하고, 수십 명의 군사고문을 파견한 것으로 보도됐다. 미 중부사령부를 지휘하는 브래드 쿠퍼 제독도 사우디를 방문해 지지를 표시했다. 다만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 호르무즈 봉쇄, 미사일 요격체계 소모 부담 속에서 예멘을 두 번째 전선으로 확대하는 것은 피하려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토요일 기자들에게 후티가 미국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며, 상황은 해결될 것이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후티, 휴전 이후에도 전력 축적

후티는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와 UAE의 개입을 상대로 장기간 버텨온 조직이다. 2022년 휴전 이후에도 군사적·이념적 동원과 병력 모집을 계속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예멘 휴전이 대체로 유지되다가, 지난 7월 사우디와 연계된 세력이 후티 통제 수도 사나에 이란 항공기가 착륙하지 못하도록 활주로를 폭격하면서 다시 흔들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후티는 홍해에서 사우디 선박에 대한 해상봉쇄를 발표하고, 사우디 주도 항공봉쇄 해제를 요구했다.

지난달부터 후티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따라 영토 장악 작전을 강화했다. 수천 명의 전투원을 모카 주변에 배치했고, 결국 모카와 페림섬을 장악했다. 해운 정보업체 Windward도 후티가 9월 10일 예멘 서해안 남부와 모카를 장악한 데 이어 11일 페림섬까지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통신 감청이 진격에 도움

후티의 빠른 진격에는 통신 감청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후티가 사우디 지원 세력의 통신을 가로챌 수 있었고, 포로로 잡힌 전투원들의 휴대전화에도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후티는 상대 지휘관들의 통화를 들으며 작전 계획을 파악했고, 현장 전투원들에게 직접 연락해 항복을 권유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관계자들은 이런 전술이 전장에서 혼란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이는 후티가 단순한 지역 반군 수준을 넘어, 통신망과 정보전을 활용해 전투를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가와 해운시장에 추가 압박

후티의 바브엘만데브 진격은 이미 불안한 국제 에너지 시장에 추가 압박을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