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불안이 확대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장중 5%를 넘어섰다. 인플레이션 재상승 우려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14일(월) 오전 장중 한때 5.012%까지 상승했다. 10년물 금리가 5%를 넘어선 것은 202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후 높은 금리에 매력을 느낀 채권 매수세가 유입되고 국제유가도 고점에서 다소 내려오면서 10년물 금리는 4.96% 안팎으로 다시 떨어졌다.

국채 금리 상승은 채권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최근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도하면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특히 10년물 국채 금리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과 기업 대출 등 미국 경제 전반의 장기 차입비용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5% 돌파가 이어질 경우 소비자와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미 국채
(미 국채. 자료화면)

이번 금리 급등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국제유가 상승이 꼽힌다.

국제유가의 기준인 브렌트유는 이날 배럴당 110달러에 근접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드론 공격으로 주요 송유관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East-West) 송유관은 홍해 연안의 얀부(Yanbu)항으로 원유를 운송하는 핵심 시설로,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커지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상태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송유관을 통한 수송 능력은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최대 약 4%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우디가 현재 보유한 재고를 이용해 단기적으로 수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송유관 가동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공급 부족 우려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 상승은 미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채권시장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 물가 지표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연준이 오는 16일(수)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을 약 90%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또 다른 악재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기업 경영진들이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잇따라 주장하면서 AI 관련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앤스로픽(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첨단 AI 모델의 능력이 지나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업계가 개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오픈AI(OpenAI)의 샘 올트먼(Sam Altman) CEO도 AI 안전 문제와 관련해 속도 조절 필요성에 공감하는 입장을 밝혔다.

AI 개발이 실제로 둔화될 경우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메모리, 서버 등 AI 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투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증시에 반영됐다.

특히 엔비디아(Nvidia)는 장중 3% 이상 하락했고 인텔(Intel), AMD, 마벨테크놀로지(Marvell Technology)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도 5~6%대의 낙폭을 기록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장중 약 6% 급락하며 기술주 약세를 주도했다.

나스닥종합지수는 장 초반 1% 넘게 떨어졌다가 낙폭을 줄였으며, 정오 무렵에는 약 0.4% 하락세를 보였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약 0.1% 하락했다.

반면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업종으로 이동하면서 헬스케어와 필수소비재 등 방어주 일부는 상승세를 나타냈다.

이날 금융시장에서는 두 가지 위험 요인이 동시에 부각됐다.

중동 불안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증시 상승을 주도해온 AI 산업에서도 안전 문제를 둘러싼 개발 속도 조절론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연준이 다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차입비용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AI 개발 속도 조절 논의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 감소로 이어질지 여부도 향후 기술주와 증시 전반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