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주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고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TechCrunch)가 15일(수) 보도했다. 특히 과거 대규모 정유·중공업 시설로 환경 피해를 겪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매체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지역사회에 들어설 경우 삶이 어떻게 바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기업과 관련 고객사들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다수의 미국인은 환경·에너지 문제를 우려하며 지역 내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웨스트버지니아에 위치한 데이터 센터. 자료화면)


정유공장 옆에서 자란 활동가, "이제는 데이터센터가 걱정"

필라델피아 남서부 그레이스 페리(Grays Ferry) 지역에서 평생을 살아온 활동가 쇼마 피츠(Shawmar Pitts)는 이러한 우려가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미국 동부 최대 규모였던 정유공장 인근에서 성장했다. 이 정유공장은 2019년 폭발 사고 이후 문을 닫았다.

피츠는 주변 친구와 가족들이 만성 질환을 앓는 것을 보면서도 원인을 알지 못하다가, 2018년 정유공장 증설 계획에 반대하며 동네에서 활동하던 환경정의 단체 '필리 스라이브(Philly Thrive)'를 만나면서 상황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정유공장 인근에 사는 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를 읽으면서 목록에 적힌 질병들을 하나씩 살펴봤는데, '어머니는 이 병, 여동생은 저 병, 옆집 이웃은 이 병을 앓고 있다'는 식으로 모든 집마다 목록에 있는 질환자가 있었다"며 "그때부터 완전히 이 활동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 스라이브의 공동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피츠는 필라델피아 내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정 기간 금지하는 '모라토리엄' 도입 운동을 주도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아직 공식적인 건설 제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시 당국은 필라델피아 북동부와 피츠가 거주하는 그레이스 페리 지역 두 곳을 잠재적 부지로 지목한 상태다.

 

 "오염이 남편을 죽였다"…시청 앞 집회서 터져 나온 분노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주민 반발은 필라델피아만의 현상은 아니다. 테크크런치는 자원이 한정된 도시와 마을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 유사한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과거 대규모 산업 시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지역에서 그 반발이 특히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4일 필라델피아 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필리 스라이브 이사회 의장 소냐 샌더스(Sonya Sanders)는 "우리는 데이터센터를 원하지 않는다"며 "오염도, 소음도 원하지 않고, 그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 페리에 거주했던 샌더스의 남편은 2020년 희귀 골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샌더스는 남편이 흡연이나 음주를 하지 않았다며, 정유공장에서 나온 배출물이 남편의 병을 유발했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집회에서 "내 눈에는 그들이 남편을 죽인 것"이라며 "오염이 그를 죽였다. 이윤 추구가 그를 조용히 살해하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필라델피아 내 데이터센터 반대(No Data Centers in Philly)' 캠페인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100명 넘는 인원이 모였으며, 참석자들은 시청 안에 있는 시의원들에게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필라델피아 주민 도나 그린버그(Donna Greenberg)는 테크크런치에 "오염이 걱정된다"며 "그들이 알아서는 안 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감시 문제도 걱정되고, 정작 그 자원이 필요한 주민과 동네에서 물과 전기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2035년 美 데이터센터, 獨·日 합친 것보다 많은 천연가스 소비 전망

필라델피아 데이터센터가 하루 최대 33만5000배럴의 원유를 처리했던 옛 필라델피아 에너지 솔루션스(Philadelphia Energy Solutions) 정유공장만큼 심각한 환경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수 있다고 테크크런치는 짚었다. 그러나 AI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국제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BloombergNEF)는 2035년까지 미국 데이터센터가 독일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천연가스를 소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9개월 전 같은 업체가 내놓았던 전망치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천연가스는 석유 등 다른 화석연료보다 훨씬 깨끗하게 연소되지만 결코 무해하지 않다. 천연가스 1세제곱피트를 연소하면 이산화탄소 60그램에 해당하는 배출이 발생하며,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인해 하루에 추가로 100만 미터톤의 온실가스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2021년 화석연료로 인한 대기오염이 전 세계 사망자 5명 중 1명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는데,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수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회에 참석한 환경단체 클린에어카운슬(Clean Air Council) 소속 변호사 애니 폭스(Annie Fox)는 "펜실베이니아에서 계획 중인 전형적인 데이터센터에는 대기오염을 배출하는 디젤 엔진 수백 대가 설치돼 있다"며 "이 엔진들이 비상용으로만 쓰인다고 해도, 정부는 이미 폭염 시기 과부하된 전력망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대신 데이터센터가 이 디젤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고 밝힌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화석연료를 탐하는 데이터센터는 기후변화를 악화시켜 폭염을 더 자주, 더 심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덴버 등 곳곳서 모라토리엄…"원하는 곳에만 지어야"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전국 각지의 우려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실제로 지역 공직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주에서는 캐시 호컬(Kathy Hochul) 주지사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신규 허가 승인을 한시적으로 막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호컬 주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발전이 더 비싼 공공요금 고지서나 고갈된 수도 공급, 소음 공해와 함께 찾아와서는 안 된다"며 "이런 데이터센터는 원하는 지역에서만 지어질 수 있고, 또 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덴버, 인디애나폴리스, 애슈빌, 샬럿, 리노 등 다수의 미국 도시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모라토리엄이 이미 승인된 상태다. 이러한 모라토리엄의 목적은 대체로 시 당국이 데이터센터 건설이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한 정보를 더 수집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매체는 설명했다.

피츠는 이번 집회와 관련해 "우리 공동체가 일어나 맞서 싸우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노력과 많은 사람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