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자사주 매입 한도 1,500억달러 추가...남은 승인액 총 2,350억달러
애플의 1,100억달러 기록 넘어...2028 회계연도까지 매입 계획
AI 붐으로 분기 매출 962억달러...투자 확대하면서도 주주환원 여력 과시
스타트업·데이터센터 금융지원도 급증...AI 생태계 '돈줄' 역할 확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Nvidia)가 1,5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한도를 추가 승인하며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주식 환매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엔비디아는 28일 이사회가 기존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에 1,500억달러를 추가하기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가 앞으로 매입할 수 있는 남은 자사주 승인액은 총 2,350억달러로 늘었다. 회사는 이를 2028 회계연도까지 집행할 계획이다.
이번 1,500억달러 추가 승인은 애플이 2024년 발표한 1,100억달러 규모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넘어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자사주 매입 승인이다.
4개월 만에 다시 1,500억달러 추가
엔비디아가 자사주 매입 규모를 대폭 늘린 것은 불과 넉 달 만이다.
회사는 지난 5월에도 자사주 매입 한도를 800억달러 늘렸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1,500억달러를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자사주 매입 한도는 2,350억달러까지 늘어났다.
이는 상당수 대형 상장기업의 기업가치보다 큰 규모다.
LSEG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새로 추가된 1,500억달러 자체가 S&P500 기업 약 84%의 시가총액보다 크다.
황 CEO "AI는 한 세대에 한 번 오는 플랫폼 전환"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AI가 가져오고 있는 구조적인 산업변화를 들었다.
황 CEO는 AI와 가속컴퓨팅으로의 전환을 **"한 세대에 한 번 일어나는 플랫폼 변화"**라고 평가하면서 회사가 창출하는 현금이 AI 기술에 계속 투자하는 동시에 주주들에게 자본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엔비디아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AI 인프라 투자를 줄여 남는 돈으로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AI 투자와 주주환원을 동시에 할 만큼 현금창출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분기 매출 962억달러...1년 만에 두 배 이상
실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7월26일 끝난 2027 회계연도 2분기에 962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분기보다 18%, 전년 동기보다 무려 106% 증가한 사상 최대 규모다.
GAAP 기준 매출총이익률도 75%에 달했다.
엔비디아는 최근 2028 회계연도 매출도 약 7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투자 붐이 이미 수년간 이어졌음에도 회사는 아직 성장률이 급격하게 둔화할 조짐을 예상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7월 말 현금만 224억달러
엔비디아는 7월 분기 말 기준 224억4천만달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보유현금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현금흐름이다.
AI 학습뿐 아니라 추론용 GPU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계속 현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앞으로 투자에서 발생하는 잉여현금흐름을 자사주 매입과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환원한다는 방침이다.
자사주 매입이 주주에게 어떤 의미인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든다.
기업의 순이익이 그대로라면 주식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이익이 100달러이고 주식이 100주라면 주당순이익은 1달러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식 수가 90주로 줄면 같은 100달러의 이익으로도 주당순이익은 약 1.11달러로 상승한다.
따라서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일반적으로 회사가 자신의 주식가치와 미래 현금흐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2,350억달러가 즉시 시장에서 사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이사회가 허용한 최대 매입한도이며 엔비디아는 시장상황과 주가 등을 고려해 2028 회계연도까지 단계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흥미롭게도 엔비디아 주가는 과거보다 '싸졌다'
이번 결정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엔비디아 주가의 절대가격이 아니라 이익 대비 밸류에이션이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5조달러를 넘어 세계 최대 수준이지만 향후 12개월 예상이익을 기준으로 한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16.5배까지 내려왔다.
LSEG에 따르면 이는 2015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지난 15년 평균인 약 30배보다 크게 낮다.
주가가 싸졌다는 뜻을 절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기업이익 증가속도가 워낙 빠르면서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이익 대비 주가수준은 낮아진 것이다.
반대로 시장이 향후 엔비디아의 이익 증가속도가 지금보다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I 수요가 상당 기간 지속된다는 자신감"
eMarketer의 제이컵 본(Jacob Bourne) 애널리스트는 현재와 같은 AI 인프라 구축 속도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자사주 매입은 엔비디아가 자사 하드웨어와 서비스 수요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엔비디아의 현금창출력이 본업에 막대한 투자를 계속하면서도 동시에 주주들에게 자본을 돌려줄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 AI 회사에 직접 투자도 확대
그러나 엔비디아가 벌어들인 현금을 자사주 매입에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AI 산업 전반에 대한 직접투자도 빠르게 늘리고 있다.
WSJ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현재 상장기업 13곳과 비상장기업 229곳이 포함돼 있다.
투자대상에는 새로운 클라우드컴퓨팅 기업뿐 아니라 OpenAI와 같은 AI 모델 개발업체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전략적 이해관계도 있다.
클라우드 기업이나 AI 모델 회사가 성장하면 이들이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게 되고 결국 엔비디아 GPU와 네트워킹 장비 수요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기업의 성장이 다시 엔비디아의 매출 증가로 연결되는 구조다.
데이터센터 금융지원까지...AI 생태계의 '자금 공급자'
엔비디아의 역할은 이제 단순한 GPU 판매회사에서 더 확대되고 있다.
회사는 지난달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과 협력해 고객들이 엔비디아 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수 있도록 최대 5,00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금융에 일부 보증을 제공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WSJ은 전했다.
OpenAI가 오하이오에서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엔비디아가 금융지원 장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AI 회사들이 엔비디아 GPU를 사고 싶어도 수십억~수백억달러 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콜레트 크레스(Colette Kress)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AI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엔비디아가 이 같은 '플라이휠(flywheel)'을 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기 데이터센터 임대계약도 200억달러
엔비디아는 AI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 약 200억달러 규모의 장기 데이터센터 임대계약에도 서명했다.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공간을 우선 확보하고 이후 고객이나 파트너 기업에 계약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회사 측은 궁극적으로 이 임대계약들을 다른 기업에 재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GPU 생산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부지와 자금까지 지원하면서 AI 인프라 확장을 직접 촉진하려는 전략이다.
동시에 제기되는 '순환금융' 우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커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가 AI 회사에 투자하거나 데이터센터 금융을 지원하고, 지원받은 회사가 다시 그 자금으로 엔비디아 GPU를 구입하면 결과적으로 엔비디아가 자신의 고객에게 자금을 공급해 자신의 제품 판매를 촉진하는 형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WSJ은 엔비디아가 최대 5,000억달러 규모 데이터센터 금융의 일부를 보증하기로 하면서 이른바 **'순환금융(circular financing)'**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구조 자체가 불법이거나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AI 기업의 실제 최종수요와 엔비디아가 금융지원을 통해 만들어내는 수요를 투자자들이 어느 정도 구분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2,350억달러 자사주 매입은 반대 메시지도
이런 점에서 이번 자사주 매입 발표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엔비디아가 스타트업과 클라우드회사, 데이터센터 사업에 막대한 돈을 넣으면서도 동시에 2,350억달러의 자사주 매입 여력을 확보했다는 것은 회사가 현재의 투자규모를 감당하고도 상당한 현금이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다.
즉 엔비디아 경영진은 AI 생태계 투자로 회사의 재무상태가 과도하게 압박받을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에 대해 이번 자사주 매입으로 일종의 반대 신호를 보낸 셈이다.
자사주 매입 발표에 주가 상승
투자자들도 일단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28일 오전 엔비디아 주가는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약 2~3% 상승했다. 올해 들어 지난주 말까지 주가는 이미 20% 이상 올랐다.
이날 전체 뉴욕증시는 이란 평화협상 불확실성과 유가 상승으로 약세를 보였기 때문에 엔비디아의 상승은 더욱 두드러졌다.
같은 날 AI 에이전트 안전 플랫폼도 발표
엔비디아는 이날 자사주 매입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AI 발표도 내놨다.
회사는 NVIDIA Open Agent Safety Platform을 공개했다.
AI 에이전트가 실제 시스템에서 작동할 때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거나 데이터와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위험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개방형 소프트웨어·시스템 플랫폼이다.
최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AI 에이전트의 안전문제가 AI 산업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자 엔비디아도 칩과 컴퓨팅 인프라뿐 아니라 AI 안전관리 소프트웨어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제 '칩 회사' 이상의 역할
이번 1,500억달러 자사주 매입 발표가 보여주는 가장 큰 변화는 엔비디아의 위치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세계 최대 AI GPU 공급업체지만 이제는 단순히 반도체를 판매하는 회사에 머물지 않는다.
AI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고, 신생 클라우드 기업에 자금을 넣고, 데이터센터 금융을 보증하고, 장기 임대계약까지 체결하면서 AI 산업 전체의 투자자이자 금융지원자 역할까지 확대하고 있다.
동시에 AI 에이전트 안전 플랫폼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도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할 정도로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결국 2,350억달러라는 자사주 매입 한도는 단순한 주주환원 규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 붐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경영진이 현재의 AI 수요와 회사의 향후 현금창출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신호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