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으로 부채 갚고 일정 수준 인플레도 도움"...TIME 인터뷰서 밝혀
미국 국가부채 40조달러 돌파...트럼프 "연준 고금리가 부채감축 방해"
경제적으로 인플레는 기존 부채의 실질가치 낮추지만 명목부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냐

국채 투자자 물가 위험 반영해 금리 더 요구하면 정부 이자부담 오히려 커질 수도
같은 날 美 10년물 5.34%로 2002년 이후 최고...재정적자·인플레 우려와 맞물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미국의 막대한 국가부채를 빠르게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채권시장에 민감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TIME과의 인터뷰에서 연방준비제도(Fed)의 높은 금리가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 뒤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그 부채를 매우 빠르게 갚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TIME이 1일 공개한 인터뷰 전문에서도 해당 발언이 확인된다.

트럼프 영상 메시지
(트럼프 대통령. 자료화면)

트럼프는 동시에 미국 경제성장이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며 "성장이 부채를 갚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미국 국채 투자자들이 최근 가장 우려하고 있는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정부가 막대한 국가부채를 세금 인상이나 지출삭감으로 줄이기보다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해 기존 부채의 실질가치를 낮추려 할 수 있다는 이른바 '부채의 인플레이션화(inflating away the debt)'에 대한 우려다.

미국 국가부채 이미 40조달러 넘어

미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총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 8월 사상 처음 40조달러를 넘어섰다.

8월18일 기준 총부채는 약 40조470억달러로, 이 가운데 민간과 해외 투자자 등이 보유한 시장성 국채 등 일반 대중 보유 부채가 약 32조3천억달러, 정부 내부 계정이 보유한 부채가 약 7조8천억달러였다.

미국 국가부채는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취임한 2017년 약 19조9천억달러에서 10년이 채 되지 않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의 두 차례 대통령 임기 동안 지금까지 늘어난 국가부채는 약 11조6천억달러이고, 조 바이든(Joe Biden)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약 8조4천억달러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응과 감세, 사회보장 지출, 구조적인 재정적자가 함께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부채 못 줄인 이유는 높은 금리"

트럼프 대통령은 TIME 인터뷰에서 국가부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연준의 높은 금리를 지목했다.

TIME 기자가 미국 국가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섰다고 지적하자 트럼프는 연준이 높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막대한 이자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채를 줄이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공개하지 않겠다면서, 경제성장을 통해 부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어 연준이 경제지표가 좋아질 때 오히려 금리를 올리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연준이 경제에 인플레보다 더 큰 피해"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연준의 정책이 인플레이션 자체보다 미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신용도가 높은 국가인 만큼 오히려 가장 낮은 금리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TIME 기자가 연준이 경제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트럼프는 높은 금리가 미국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부채를 매우 빠르게 갚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 때문에 트럼프가 단순히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물가상승을 통해 국가부채의 실질부담을 낮추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두고 금융시장의 관심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으로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나

경제학적으로는 일정 부분 가능하다.

다만 정확하게 말하면 인플레이션이 40조달러라는 명목 국가부채 숫자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대신 과거에 발행된 고정금리 부채의 실질가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10년 만기 국채 1천달러를 발행했다고 가정해보자.

10년 뒤에도 정부가 갚아야 하는 원금은 1천달러다.

그러나 그동안 물가가 크게 상승했다면 10년 뒤의 1천달러는 처음 빌렸을 때의 1천달러보다 실제 구매력이 낮아진다.

정부 입장에서는 명목상 같은 돈을 갚더라도 경제 전체의 소득이나 세수에 비하면 부채 부담이 작아질 수 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인플레이션으로 부채를 녹인다'는 의미다.

명목 GDP가 부채보다 빨리 늘어나면 부담 감소

정부부채를 평가할 때 단순한 부채 총액보다 더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오르면 명목 GDP도 증가한다.

국가부채 증가속도보다 명목 GDP 증가속도가 빠르면 GDP 대비 부채비율은 내려갈 수 있다.

정부 세수 역시 임금과 기업매출, 명목소득이 올라가면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인터뷰에서 "성장이 부채를 갚는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논리와 연결된다.

즉 강한 실질성장과 어느 정도의 물가상승이 함께 나타나면서 세수는 늘고 기존 고정금리 부채의 실질가치는 낮아진다면 국가부채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국채 투자자도 알고 있다

문제는 국채를 사는 투자자들도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물가가 더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낮은 금리로 장기간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앞으로 물가가 연평균 4%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10년물 국채금리가 3%라면, 투자자는 실질적으로 구매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투자자는 5%, 6% 또는 그 이상의 수익률을 요구할 수 있다.

바로 이 현상이 현재 미국 채권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다.

10년물 국채금리 이날 5.34%

트럼프의 인터뷰가 공개된 1일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5.34%까지 상승했다.

이는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국채금리 상승에는 높은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계속 증가하는 국채발행 물량, AI 투자붐에 따른 자금수요 등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SBC의 프레드 노이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채권 투자자들이 물가뿐 아니라 대규모 정부 재정적자와 AI 산업의 막대한 자금수요까지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트럼프가 인플레이션이 국가부채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경계하는 채권 투자자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옛 부채 줄여도 새 부채 이자는 올라

여기에서 중요한 역설이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이 기존에 발행된 낮은 고정금리 국채의 실질가치를 줄이는 것은 정부에 유리하다.

하지만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새 국채로 차환하거나 추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국채를 발행할 때는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2% 금리로 발행했던 국채가 만기를 맞았는데 시장금리가 5%라면 정부는 새로 돈을 빌릴 때 훨씬 높은 이자를 부담한다.

미국처럼 부채규모가 40조달러가 넘고 매년 막대한 규모의 국채를 재발행해야 하는 국가에서는 이 효과가 매우 크다.

실제로 미국의 장기국채 금리 상승은 이미 연방정부의 이자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로이터는 높은 사회보장 지출과 이자비용이 재정압박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누가 더 빠른가'의 문제

인플레이션을 통한 부채감축 효과는 결국 두 가지 속도의 경쟁이다.

물가와 명목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해 기존 부채의 실질가치를 낮추느냐와, 금리상승으로 정부의 새로운 이자비용이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느냐의 경쟁이다.

명목 GDP와 세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국채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정부에는 유리할 수 있다.

반대로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국채금리를 급격하게 올린다면 효과가 반대가 될 수 있다.

기존 부채의 실질가치를 조금 줄이는 대신 새로 발행하는 수조달러 규모의 국채에 훨씬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손실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국가부채의 실질부담을 낮추는 정책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정부가 얻는 이익은 국채 보유자의 실질손실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연 3% 고정금리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물가가 연 5%씩 오른다면 명목상 이자를 받더라도 실제 구매력은 줄어든다.

국채뿐 아니라 현금과 은행예금을 보유한 가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높은 인플레이션은 때때로 명시적인 세금 인상 없이 정부부채의 실질가치를 줄인다는 의미에서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준은 오히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

트럼프의 발언은 현재 연준의 정책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9월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3.75~4.00%로 올렸다.

12명의 위원이 만장일치로 금리인상에 찬성했다.

연준은 미국 경제가 견조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국내 소비와 자본투자가 강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연준은 2% 물가목표로 보다 신속하게 돌아가기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연준은 일정 수준의 추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기보다는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리는 것을 공식 목표로 삼고 있다.

트럼프, 연준 이사진에 "적대적"

트럼프 대통령은 TIME 인터뷰에서 연준 이사진이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 이사들이 "Trump derangement syndrome" 때문에 금리를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자신의 지명자인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자신이라면 다른 이사들에게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라면서도 워시가 이사회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TIME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는 9월 금리결정을 앞두고 워시와 통화했으며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워시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금리인상 결정이 신중하고 책임 있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금리인상이 트럼프 주장처럼 국가부채를 악화시키는 측면도 있어

트럼프의 주장에도 경제적으로 근거가 있는 부분은 있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연방정부가 내야 하는 이자가 증가한다.

특히 현재처럼 40조달러가 넘는 국가부채를 가진 상황에서는 금리의 작은 변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정지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채금리가 2~3%였던 시기에 발행한 부채가 만기를 맞아 5%대 금리로 차환되면 정부의 이자지출은 크게 증가한다.

실제로 로이터는 사회보장·메디케어 지출과 함께 급증하는 이자비용이 미국 재정적자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금리를 낮추면 정부의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 자체는 방향성에서는 맞는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출 경우 채권시장이 오히려 더 높은 장기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준이 금리 내려도 10년물은 오를 수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주로 단기 기준금리다.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장기 국채시장에 중요한 10년물·30년물 금리는 시장 투자자들이 결정한다.

따라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투자자들이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억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면 1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추가 연준 금리인상 전망이 다소 낮아졌음에도 10년물 국채금리는 1일 5.34%까지 올라 2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이 단기 연준정책보다 장기적인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국채공급을 더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빚을 줄이겠다'는 신호로 해석되면 위험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국가부채 감축정책으로 공식 채택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아니다.

TIME 인터뷰에서도 그는 먼저 경제성장이 부채를 갚는 방법이라고 강조했고, 이후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 역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이번 발언을 곧바로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국가부채를 줄이겠다는 정책선언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서는 정책 자체만큼 정부의 의도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만약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가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려 한다고 판단하면 장기국채에 더 높은 인플레이션 보상과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 있다.

그 결과 국채금리가 오르고 정부의 이자비용이 증가한다면 부채를 줄이려던 효과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지금 시장에서 더 민감한 이유

이번 발언이 평상시보다 더 주목받는 이유는 발표 시점 때문이다.

바로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5.34%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일본 등 주요국 장기금리도 수십년 만의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면서 세계 채권시장이 동반 매도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각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증가가 장기금리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이 부채를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국채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문제를 직접 건드린 셈이다.

트럼프 발언의 경제적 의미는 '절반은 맞지만 조건이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경제 원리만 놓고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과거에 고정금리로 발행된 국가부채의 실질가치를 낮춘다.

명목 GDP와 세수가 빠르게 증가하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공짜로 국가부채를 없애는 방법은 아니다.

높은 물가는 소비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예금과 국채 보유자의 실질자산을 감소시킨다.

더 중요하게는 채권시장이 이를 예상하면 정부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미국처럼 40조달러가 넘는 국가부채를 지속적으로 차환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이자율 상승이 기존 부채의 실질가치 감소 효과를 빠르게 상쇄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부채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물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실질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재정적자를 통제하면서 정부의 이자비용보다 명목경제와 세수가 더 빠르게 성장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트럼프가 강조한 '성장으로 부채를 갚는다'는 주장이 성공하려면 바로 이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10년물 국채금리가 5.34%까지 치솟은 현재의 채권시장은 미국 정부가 그 조건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매우 높은 금리로 시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