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진규 기자] = 업계 안팎에서 한전부지 낙찰 가격을 4조∼5조원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현대차그룹은 처음부터 이를 뛰어넘는 ‘통 큰’ 가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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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한전부지 인수를 지시한 것은 지난 4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전부지 일대를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직후이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뚝섬에 110층짜리 신사옥을 짓는 계획이 서울시의 층수 규제로 무산되자 대안부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당시 정 회장이 한전부지 인수는 부동산이나 가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비전이 달린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청사진부터 만들어 외부에 정확하게 알리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인수를 시도해서 '안 되면 말고 식'이 아니라 가격에 신경 쓰지 말고 반드시 인수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외부기관의 컨설팅과 내부 회의를 거쳐 그룹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필승' 할 수 있는 가격을 썼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막판까지 삼성전자의 참여를 확신하지 못했다. 현대차는 한전부지에 신사옥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만약 삼성이 입찰에 참여해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 경우 결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참여가 가시화하자 인수금액을 높이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무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연막작전' 을 폈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수많은 인수합병(M&A) 등에서 실패한 전례가 거의 없는 ‘강적' 이다. 2007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입찰 때도 당시 삼성물산 컨소시엄은 감정가(3조8천억원)의 배 이상에 달하는 8조원을 써내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제치고 개발 사업자로 선정됐다.

한전부지 입찰에서 삼성전자가 얼마를 써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현대차그룹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대차 내부에서는 "삼성도 만만치 않은 금액을 써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신사옥 건립을 그룹 제2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제조사 상위 5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만큼, 자동차 1천만대 판매 시대를 맞아 이제는 질적성장에 더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정회장이 지난달 미국 방문에서 향후 10년 과제로 '소비자 최고 선호 브랜드로의 도약'을 제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는 독일 폴크스바겐 본사와 출고장을 겸하고 있는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처럼 한전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할 경우 브랜드 이미지가 한층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이 한국전력 본사 부지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돼 한전 부지를 포함한 동남권을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조성하겠다는 서울시 구상도 구체화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한전 부지 매각으로 수천억원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부지가 매각되면 신규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4%, 지방교육세 0.4%를 거둬들인다.

현대차그룹이 10조 5천500억원에 부지를 사들이면 여기서 공공기여분을 뺀 나머지에 대해서 세금을 매기게 되는데, 현대차그룹이 현재 예상하는 공공기여 액수인 1조 3천억원을 적용하면 세금은 4070억원 가량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