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까보전, 고무통, 중력절, 운지… 이 생소한 단어들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까보전’은 '까고보니 전라도’의 준말이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욕하고 나서 나중에 알아보니 전라도 사람이란 의미다.
‘고무통’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뜻한다. 보통 그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중력절’은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하여 자살한 5월 23일을 가리키는 말이며, 운지는 그의 투신 행위를 뜻한다. 역시 냉소가 서려 있는 단어다.

위 은어들의 설명을 듣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한 사람의 죽음을 우스갯소리로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저런 말을 만들고 사용할까 싶지만 이미 100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것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 (이하 일베)”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일베’란 이름은 어느 샌가부터 우리 사이에 비난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규모는 큰 편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이 방문하는 커뮤니티던 이곳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신은미 토크 콘서트 테러사건’과 올해 초 ‘단원고 세월호 사건 어묵 조롱 사건’, ‘청와대 폭파 위협범 일베 인증 사건’ 등이 큰 파장을 몰면서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 되었다.

◎ 제한 없는 표현의 자유… 권위에 대한 부정

이 커뮤니티는 종합 사이트를 표방하지만 ‘인터넷 유머’의 기능이 가장 비중이 크다. 그리고 이 사이트만의 독특한 문화로 인해 유머 역시 커뮤니티 지향적인 특성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유머를 이해하려면 우선 ‘일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

일베는 보수우익을 표방한다. 때문에 박정희, 이승만, 이명박 등 보수 세력 정치인에 대한 조롱은 용인되지 않으며, 경상도에 호의적이다. 대북관에 있어서도 매우 강경하다. 단 반대로 야당의 정치인, 전라도에 대해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최대한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기 때문에 완전한 익명성이 보장되며 특정 닉네임이 유명해지면 닉네임을 변경할 것을 요구한다. 이용자들 사이엔 반말이 보편화 되며 욕설의 사용도 자유롭다. 사이트 운영진이 권위를 가지는 것도 경계해 운영진과도 욕설을 주고받는다. 이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조롱과 비하가 ‘트렌드’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트렌드는 대개 매우 시니컬하다. 특유의 탈권위적인 성향으로 특정 인물이나 단체, 사상이 지지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학적이고 자기비하적인 유머는 물론, 인명사고의 유가족이나 사망자 등에 모욕적인 조롱을 하는것까지 용납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롱이 커뮤니티 내에서 인정받는 행위되며, 더질이 나쁜 반사회적 행동을 한 사람은 영웅처럼 대접받기도 한다.


▲ '일베 손인증'논란을 일으킨 청와대 폭파 위협범
▲ '일베 손인증'논란을 일으킨 청와대 폭파 위협범


◎ 일베의 대척점인 오늘의 유머, 하지만 공통점이 더 많다

일베의 ‘대척점’에 있는 사이트는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다 이 사이트는 진보세력을 지지하며 역시 정치색이 매우 짙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유 역시 비난 세력에 대한 과격한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커뮤니티 내부에서 대구 지하철 사건을 언급하며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다”며 경상도를 비하하거나, 노인의 보수성향을 조롱해 “노인들 투표하러 못가게 해야 한다”는 공론을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 두 사이트는 정치 성향만 제외하면 공통점이 더 많다. ‘과격성' 외 다른 한 가지 큰 공통점은 두 사이트 모두 ‘콘텐츠 생산력’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온라인을 돌아다니는 유머자료 중 대부분은 일베와 오유에서 생산한 것이다. 합성사진, 동영상, 만화, 음악 등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하다. ‘엽기’사이트들이 생산하던 90년대 초반의 어설픈 실력이 아닌, 전문가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한 솜씨와 유머감각으로 상당한 호응을 받는 유머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커뮤니티의 파급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커뮤니티들이 ‘잠재적 위험’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 파급력 때문이다. 이들의 유머 코드는 한국 유머의 전통으로 꼽히던 ‘해학과 풍자’가 아니라 단순한 ‘파괴’에 가깝다. 소중한것으로 여겨지던 가치를 파괴해서 나타나는 사회적 파장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는 더 큰 관심을 받기 위해 반사회적인 주제가 담긴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포한다. 그리고 그 콘텐츠에 이끌린 사람들이 커뮤니티로 끊임없이 유입한다.

결국, 그들에게 정치란 말초적 재미와 관심을 얻기 위한 편 가르기일 뿐이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정치’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 온라인상의 홍위병, 현실로 걸어나오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만 머물던 이들의 존재는 점차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가 특정 정당에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2012년 11월, 18대 대선이 진행되던 와중엔 오늘의 유머가 이정희 대통령 후보를 위해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획이 제기되었다. 당시 통합진보당의 전북도당이 당원들에게 정치적 선동 문구가 담긴 게시물로 여론을 조작하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지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베 회원들의 행동은 좀 더 직접적이다. 신은미 토크 콘서트 폭탄테러는 명백한 ‘백색테러’로 분류되었으며,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투쟁현장 앞에서 치킨을 먹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이 사태는 일베가 단체명을 걸로 한 첫 대외적 시위로 진보세력이 일베의 현실 세력화를 우려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행동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문화 대혁명 당시 조직한 ‘홍위병’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윤리에 대한 숙고 없이 마오쩌둥의 사상만을 숭배했으며, 그의 정적과 ‘구시대적’, ‘브루주아적’인것에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파괴하는 급진성을 보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파괴행위로 인해 중국의 전통문화는 원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그들이 사회에 남긴 충격과 반인륜적인 행위는 중국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온라인상의 닉네임 뒤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언제고 우리의 바로 앞까지 걸어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