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0일 발표한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 방향'을 통해 16년간 금융감독 관행의 일대 변화를 예고했다. 

그동안 '끝장검사', '진돗개식 검사', '담임선생님식 감독'으로 대변되는 채찍 중심의 검사·감독시스템을 금융사의 자율 규제, 시장 규제 위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검사·감독 관행이 '당장 지적사항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보수적이고 보신주의적인 금융관리 행태로 이어져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IT 융합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금융권은 이러한 금감원의 변화 노력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금감원의 쇄신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에따른 건전성 감독 소홀 등이 나타나지 않도록 모니터링 시스템을 꼼꼼히 점검할 것을 주문했다.'

◇금융사 경영자율 존중…배당·이자율 정책도 간여 최소화
금감원은 금융사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검사와 감독의 부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사사건건식 개입, 잦은 검사, 고무줄식 유권해석은 그동안 금융사를 괴롭혀온 관행이었고 정권교체기 마음에 들지 않는 금융사 CEO들을 교체하는 '무기'였다.
지난 3일 '범금융 대토론회'에서도 대부분의 금융사 수장이 이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을 정도다.

또 배당이나 이자율 결정 등이 금융사의 고유 권한임에도 불구, 금감원은 법적 근거없이 '건전성 감독'이라는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매년 우회적으로 금융사들의 결정에 개입하는 '관치'를 해왔던 게 사실이다.

금감원은 앞으로 배당, 이자율, 수수료, 증자, 신상품 출시 등에 대해 국제적 기준을 고려한 최소한의 준수기준만 제시하고 그 범위내에서 금융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진 웅섭 원장은 "배당과 관련해선 바젤 등 국제기준이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반영해 국제적 기준에 정합하게 지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불합리하고 부당한 가격, 배당 등에 대해선 필요하면 내부적으로 고민하겠다"고 말해 과도한 배당 등까지 용인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했다.

건전성이 양호하고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금융사에 일부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형 금융회사에 대해서 공시기준, 보고서 제출주기를 줄여주기로 했다.

금융위기때에 만들어진 과도한 영업용 순자본비율(NCR·영업용 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값을 백분율로 표시한 것) 규제를 완화해 숨통을 터주고 민원이 많은 금융사에 붙이던 '빨간딱지'도 없앤다.

2~3년주기로 진행되던 금융사의 관행적인 종합검사는 2017년에 사라진다. 부문검사 목적의 현장검사도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실시키로 했다.

대신, 검사축소로 인한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선진국형 경영실태평가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사전예방금융감독시스템(FREIS)'으로 상시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검사자료를 줄이고 부실여신 면책제도를 활성화하는 한편 임직원 개인에 대한 신분상의 제재를 대폭 축소하고 과징금 제재를 늘리기로 했다.

중대한 위규사항이 다수 발견되거나 반복되면 일벌 백계차원에서 엄중 제재하겠다는 게 금감원의 방침이다.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등을 제외하고 거의 사례가 없던 '영업정지', '정직', '임원 해임권고' 등 제도적으로 보장된 '제재 수단'을 적극적으로 쓰겠다는 뜻이다.'

핀테크·소비자권익 지원 강화…조직개편도
금감원은 금융시장의 역동성을 높이고 안정성 강화, 불법금융행위 대응에 감독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특히, 금융권 화두로 떠오른 핀테크 산업에 금융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진반포럼, 자율협의체 등으로 접목의 장을 확대하고 핀테크 기업 육성 프로그램으로 지분투자, 대출, 업무제휴 등이 활성화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해외진출 금융사의 경영실태평가를 유예하는 등 해외 신시장 개척과 규제개혁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시장 안정성 확보차원에서는 가계부채,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기업구조조정 등 잠재적 위험요인에 대한 모니터링과 경보기능을 강화한다.

개별기업의 문제가 산업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상화 가능 기업에는 적기에 충분한 자금 공급을 유도하고 약정체결계열 등에 대한 부당한 여신회수가 없도록 변동내용을 월별로 점검키로 했다.

정보 접근성이 높은 기관투자자 및 경영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테마감리, 회계감리를 철저히 실시해 자본시장의 질서문란행위도 발본색원한다는 방침이다.

보이스피싱, 불법 사금융, 불법 채권추심, 꺾기, 보험사기 등을 5대 민생침해 불법 금융행위로 규정하고 금감원내 대응협의체를 운영하면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비리와 사고의 원인이 되는 대포통장 근절 차원에서는 금융사의 통장남발 행위를 쇄신하고 장기미사용 통장 정리, 대포통장 양도행위및 통장매매를 위한 광고행위의 처벌근거 신설 등을 추진키로 했다.

금융권의 고질적인 정실인사관행 타파에도 나선다. 금감원부터 솔선해 능력과 평판, 도덕성을 우선하는 인사를 단행하고 능력있는 직원이 중용되는 인사문화 확산에 힘을 기울일 방침이다.

경영실적과 무관한 과도한 보수지급 관행, 증권사 자기매매 관련 성과보상체계, 부당한 임직원 저리대출 관행 등도 쇄신 대상에 올렸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금융권에 누적된 폐해를 과감히 청산함으로써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제고하고 금융이 실물경제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다짐했다.

금감원은 이를 위해 조직도 정비한다. 최수현 전 원장이 금감원의 중수부 역할을 기대하며 만들었던 기획검사국을 1년만에 폐지하고 금융적폐를 해소하기 위한 금융혁신국을 신설키로 했다.

금융혁신국은 금융사의 보신적 대출행태, 소비자권익 침해 등 잘못된 관행을 찾아 없애는 역할을 맡게 돼 향후 막강한 힘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금융사 자율규제를 폭넓게 인정하는데 따른 상시감시기능, 금융상황 모니터링 등 기능은 강화하고 금융사의 애로를 청취하는 금융애로팀을 감독총괄국 산하에 신설키로 했다.

태스크포스(TF) 형태인 핀테크 지원은 정부가 추진중인 혁신지원센터랑 연계될 수 있도록 하고 금감원내 소비자보호처 조직도 강화키로 했다.'

◇금융사·전문가 "환영"…"시스템 재점검해 감독소홀 없어야"
금융사들은 이러한 금감원의 쇄신계획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감독당국이 검사 한 번 나오면 기간이 길고 요구하는 게 많아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며 "의미를 부여할만한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 관계자는 "현장에 나온 검사인력 입장에서 검사를 나오면 건수를 하나 올려야 하다 보니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며 "금감원의 쇄신책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 시각도 긍정적이다.

오 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금융당국이 관행적으로 해왔던 검사를 안 한다는 것은 전향적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며 "감독당국이 관행적으로 검사에 나서 금융사의 과거 잘못을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쇄신노력이 또다른 금융분야의 감독소홀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니터링 시스템의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금융감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실 여신을 미리 예방해서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데 있다"며 "금융사의 건전성 지표를 늘 체크하면서 사전에 적기시정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