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양적완화 정책을 시발점으로 세계경제가 환율전쟁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한국 통화당국이 '돈 풀기'의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놓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선진국이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돈을 시장에 풀고 각국 중앙은행이 비난을 무릅쓰고 깜짝 통화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는 그에 걸맞은 비상 대책을 동원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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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부동산 금융 규제 완화 이후 가계 부채 문제가 부각되고 있어 통화 완화 기조에 동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양적완화를 단행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이 본격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CB 는 지난달 22일 통화정책 회의 직후 다음달부터 최소 내년 9월까지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매달 600억유로(약 75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총 1조유로를 웃도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시장에 풀겠다는 의미다.
유럽의 정책금리는 현재 사실상 제로금리인 0.05%로, 정책금리를 낮추는 전통적인 방식이 불가능해지자 비전통적인 방식을 동원[003580]에 경기부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실제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작년 12월 -0.2%에 이어 1월 -0.6%를 보이면서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세계 경기의 회복이 부진한 상황에서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쳐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로 등장한 것이다.
ECB의 양적완화 결정은 각국의 통화완화 동참 행렬로 이어졌다.
루마니아·스위스·인도·페루·이집트·덴마크·터키·캐나다·러시아가 금리를 낮췄고,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달러 가치의 절상을 늦추는 방식으로 통화완화 대열에 합류했다.
이달 들어서는 호주도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했고 중국은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지급준비율을 인하해 통화 완화 대열에 참여했다.
일부 국가의 통화완화 정책은 시장이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데다 그 규모도 커서 '중앙은행의 배신'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시장과의 소통과 신뢰성을 추구해야 할 중앙은행이 불가피하게 '깜짝' 정책을 발표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다급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금리인하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금리정책보다는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시사한 바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인상보다는 경제가 안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통화 완화의 필요성에 소극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주열 총재 취임 이후 한국은행은 작년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는 했지만, 경기 회복세가 이미 한풀 꺾인 뒤여서 적절한 인하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업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금리 탓이 아니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향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리를 펴다가 뒤늦게 방향을 선회했던 것이다.
오 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금 각 나라들이 재정 부담으로 재정정책을 못 쓰다 보니 금리인하나 통화가치 절하 등 경기부양을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발버둥을 치는 형국"며 "한국은 세계경제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정책 엇박자로 실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지난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에 따른 가계 부채 급증 문제가 뒤섞이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열 총재도 지난달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작년 10월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높아져 금융안정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견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각국의 통화 완화기조가 확대될 경우 한국은행 역시 통화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압력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대우증권 윤여삼 연구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각국은 저마다 사상 최저금리 수준을 보이면서까지 통화 완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은도 통화정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