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 수순에 돌입하면서, 3년 넘게 이어진 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신규로 4조5천억 원이라는 금액을 지원받았음에도 STX는 일어서지 못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은 경영진부터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하지 못한 채권금융기관과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해 지원을 거듭하게 만든 정부와 정치권까지, STX조선의 사례는 현재 화두로 떠오른 한국의 취약업종 구조조정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채권단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불과 5개월새 실사 결과도 정반대
STX조선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돌입한 것은 2013년 4월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 때 수주 잔량 기준으로 세계 4위까지 올라섰던 STX조선은 해외 투자와 관련한 대규모 손실과 무리한 저가 수주,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강덕수 전 회장 등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로 위기를 맞았다.
STX대련 건설, STX유럽 인수 등에 3조5천억원을 투자했으나 대부분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고, 단기 유동성을 해결하기 위해 저가로 선박을 수주하다가 건조 과정에서도 손실을 초래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2013년 자율협약을 신청했을 때 STX조선은 이미 유동성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율협약에 들어간 이후 3년이 지났지만, STX조선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채권단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지원을 계속했다.
채권단이 공동관리 이후 지원한 신규 자금만 4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 밖에도 자율협약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은 2조원을 출자전환했고, 기존 채권 4조원에 대해서도 상환을 유예해줬다. 수입 원자재에 대한 지급보증(L/C) 규모도 3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런 지원에도 STX조선은 지난해 1천820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말 정기 실사를 진행한 채권단은 12월에 4천억원 규모의 추가 지원을 하면서 건조능력과 선종을 줄여 중소형 조선사로 특화시키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추가 리스크 부담 없이 회사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다"며 "2016년 하반기까지 추가 신규자금 지원 없이 정상 운영되고 2017년부터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화 중소형 조선사로 규모를 줄임에 따라 매출액이 기존의 2조2천억원 수준에서 1조2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이후 점차 증가하는 형태가 되리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 됐다.
예정보다 앞당겨 재실사를 진행한 결과, 25일 내놓은 처리방안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자율협약 개시 당시 예상한 것보다 수주가 크게 감소했고, 특히 2015년 연말 이후 신규 수주가 전무한 데다 전례 없는 시황 악화로 현재의 경영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수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추가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율협약을 지속할 경제적 명분과 실익이 없으며, 회사도 회생절차 신청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동성 부족이 심화돼 이달 말 부도 발생이 불가피하다며 자율협약을 중단하고 법정관리에 돌입하는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불과 5개월 사이에 완전히 다른 실사 결과가 나온 셈이다.
시황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지난해 말이면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을 거치며 세계 조선 경기의 하강 우려가 고조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채권단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 채권단도 "무리한 지원" 의견 나왔지만… 정치권 압력에 지원 이어가
거듭된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은 STX조선이 자율협약에 돌입하던 시기부터 채권단 내부에서도 있어 왔다.
실제로 지난해 4천억원의 추가 지원이 이뤄질 때 우리·KEB하나·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탈퇴했다. 그 결과, 채권단에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 등 국책·특수은행만 남았다.
금융권에서도 무리한 지원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국책은행에서도 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처음 STX조선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 직후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이 당국에 손실보전과 면책 보장을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보전하거나,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기업 특혜 논란과 감사원 감사 등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책은행에서도 국가 경제 위기를 이유로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등을 떠밀려 대규모 지원에 나서지만, 상황 자체는 부정적으로 관측하고 있었던 셈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STX조선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작될 때부터 내부적으로는 더 강도 높은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지역 경제와 고용 등을 우려한 정치권의 압력이 이어지면서 지원이 계속됐다"며 "지금 주요 업종의 구조조정이 꼬이게 된 출발도 사실상 STX조선이었다고 봐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이 STX조선에서 줄줄이 발을 뺄 때에도 지역 경제 등을 이유로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유·무형의 압박은 계속됐다.
경남 창원시는 지난해 11월 안상수 시장 명의로 STX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청와대와 금융위원회 등 관련 정부기관에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