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의 롯데그룹이 지난 10일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번 수사는 비자금 의혹에 촛점이 맞춰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당연히 그룹 회장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온갖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어,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갖가지 문제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그룹 차원에서 검찰의 수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롯데그룹이 그동안 정권의 비호를 받아왔을 수도 있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롯데그룹은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자산과 계열사 수가 2배 넘게 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는 지난 10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와 호텔롯데, 롯데홈쇼핑 등 계열사 핵심 임원자택 등에 수사관 200여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인 롯데호텔 34층과 신회장의 서울 평창동 자택도 포함됐다.

그룹의 2인자 격인 이인원 부회장 등 주요 간부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도 취해졌다.

검찰 측에 따르면, '롯데 비리'는 크게 계열사 인수·합병(M&A)과 지분 매매 과정, 오너 일가·계열사 간 부동산 거래, '일감 몰아주기' 형태의 부당 거래 과정에서 빚어진 것들로, 검찰은 이들 모두에서 비자금 조성(횡령)과 배임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주요 임원의 횡령과 배임도 사건의 핵심이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 핵심 계열사인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이뤄진 자산 거래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 해 말부터 롯데그룹의 비리 의혹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왔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브릭 대표의 로비를 받아 롯데면세점에 입점시켜준 혐의로 신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방학재단 이사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된 지 몇일 지나지 않아 오너가 전체로 수사가 확대됐다.

그룹 안팎의 악재와 맞물려 창립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번 수사가 연이어 터진 계열사들의 문제 수습과 핵심 사업 추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사망자까지 나온 자체 제작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전 롯데마트 대표)를 비롯한 관련자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이들에 대한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올 해 말로 예정 돼 있는 제2롯데월드 완공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제2롯데월드는 그동안 특혜 시비와 크고 작은 사고로 안전성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건물 인허가 과정의 로비 여부 등이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롯데면세점의 추가 특허권 확보에도 그늘이 드리웠다. 잠실 월드타워점 재개장을 위해선 연말쯤 확정될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특허권을 따내야 한다.

그러나 이달 말 문을 닫게 된 월드타워점이 지난 해 특허 심사에서 떨어진 이유가 경영권 분쟁으로 악화된 여론 탓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수사가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내달 진행되기로 했던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 일정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비자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상장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를 받는 롯데그룹은 인도·파키스탄 등 범 인도권에서 추진하는 복합쇼핑몰 개발 사업을 비롯해 해외에서 추진 중인 다양한 해외 사업까지 타격을 받게 됐다.

롯데그룹은 범 인도권은 인구가 16억명에 달하는데다 14세 이하 어린이 비중이 높아 충성고객층을 선점하기 쉬운 시장이어서 범 인도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신동빈 회장이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3차례나 만나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1990년대 말 과자 수출로 인도권에 진출한 이후 2004년에는 현지 유명 제과업체 패리스를, 2010년에는 현지 2위 제과업체 콜손을 인수했다.

또 2010년과 2015년 각각 첸나이와 뉴델리에 초코파이 공장을 지었으며, 올해에는 펩시의 파키스탄 병입 기업인 라호르 펩시코 지분 인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번 수사로 인해 범 인도권 사업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베트남 호찌민 투티엠 지구의 랜드마크로 키울 예정이었던 에코스마트시티,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건립할 복합상업단지인 '롯데월드 청두'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롯데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유통·휴양시설 건립에 차질이 불가피한 것은 검찰이 그룹 컨트롤타워 전체를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에서 롯데그룹 22층과 24∼26층 정책본부 사무실은 물론 정책본부 주요 임원을 출국 금지하고 일부 임원 자택도 압수수색,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그룹의 의사결정 체계가 마비됐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검찰 수사로 인한 임원들의 공백상태로 인해 추진 사업을 모두 스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 상장 철회로 사업 자금의 확보가 어려워진 점도 롯데로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이 과거 여러 대기업이 저지른 각종 불법 행위들을 답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롯데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관계자는 13일 "그동안 롯데가 한 번도 수사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에 과거 한국 대기업들이 보였던 구태가 많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롯데는 대기업 집단(재벌)들 가운데 가장 많은 93개 계열사를 선단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롯데는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서 지난 10년간 35건의 M&A를 성사시켰고, 거래 규모는 무려 13조82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최근 5년 만에 자산과 계열사 숫자를 2배 이상으로 늘렸는데, 이명박 대통령 집권 전 40조 원에 불과하던 롯데그룹 자산 총액은 5년 만에 83조 원으로 2배 이상 늘었고, 46곳이던 계열사도 79곳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롯데그룹의 성장에는 MB정부의 각종 특혜가 있었다는 뒷말이 무성한 상황이다.

게다가 계열사들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머드급 정책본부(구조조정본부 격)를 두고 있는 모습 등이 IMF 사태 이전 우리 재벌들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검찰은 현재 5~6건가량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헐값 매각 또는 고의적인 거래 가격 부풀리기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해외 업체를 사들여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흔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1월 롯데쇼핑은 보유 중이던 롯데알미늄 주식 12만5천16주(12.05%)를 호텔롯데에 839억9천900만원을 받고 매각했다.

주당 가격이 67만원가량인데, 증권업계에선 롯데알미늄이 자산 규모만 2조원에 가까운 알짜배기 회사로 주당 가격이 100만원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롯데쇼핑이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롯데쇼핑이 지난 2010년 5월 신 총괄회장이 스위스에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로베스트아게'로부터 롯데물산 주식 64만여주를 취득하면서 주당 가격을 2배 이상 부풀려 신 전 총괄회장에게 140억원가량의 부당 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있다.

롯데 계열사들이 오너 일가의 부동산을 비싸게 사준 의혹도 받고 있는데, 검찰은 신 총괄회장 등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수십년 보유하던 경기 오산의 물류센터 부지와 인천 계양구의 골프장 건설 추진 부지를 2007~2008년 롯데쇼핑과 롯데상사가 당초 매입 추진 가격이나 공시지가보다 수백억원씩 비싸게 산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또 부산 롯데월드와 서울 서초동의 롯데칠성음료 부지 개발 과정과 이를 둘러싼 특혜 시비 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의 노른자위 땅(4만여㎡ 규모)인 롯데칠성 부지는 1970년대 초 롯데칠성이 매입했는데, 롯데그룹은 47층 높이의 복합 문화 시설 건설을 추진 중이다. 2008년 서울시가 상업용으로 용도 변경 결정 직전에 롯데가 주변 토지를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옛 부산 시청 부지에 세워지는 부산 롯데월드 건설 과정에서도 롯데가 주변 공공 용지를 특혜 매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롯데 계열사들은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들에 일감을 몰아줘 부당 이득을 주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비정상적 특혜 구조를 통한 배임"이라고 밝혔다.

롯데쇼핑은 2013년까지 신 총괄회장의 자녀와 배우자가 주주로 있는 유원실업과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 3개 업체에 영화관 내 매장을 싼값에 임대해주고 식·음료 매장 사업을 독점 운영하도록 해줬고, 이를 통해 1000억원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롯데피에스넷이 현금인출기(ATM) 구매 사업을 하면서 롯데알미늄에 40억원을 부당 지원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롯데의 '국부 유출' 논란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롯데의 다른 계열사 자산이나 이익을 호텔롯데로 몰아준 뒤 이 회사를 상장하려던 롯데의 계획에 대해 필요할 경우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호텔롯데의 대주주인 롯데홀딩스나 광윤사 등 일본 쪽 계열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롯데쇼핑 등이 국내 금융사를 놔두고 높은 금리로 일본 롯데 계열사 쪽에서 1조원이 넘는 대출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매년 막대한 이자 비용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이 같은 해외 거래 과정에서 배임이나 비자금 조성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신 회장은 외국 출장으로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측에 따르면, 신 회장은 아직 영장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고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이 검찰의 대대적 수사를 미리 인지하고 사전에 비자금과 관련 자료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롯데그룹 본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사전에 인지·대비했음을 보여주는 '검찰 수사 대비 방안'등의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은 롯데 측이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롯데홈쇼그룹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에서 주요 자료가 파기되거나 다른 곳으로 빼돌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개인 금고를 각각 롯데호텔과 자택에서 압수했지만 메모 수준의 문서들만 있을 뿐 비자금 수사의 단서가 될 만한 자료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롯데가 사전에 수사를 미리 인지했으며 조직적으로 자료 은폐를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일 압수수색 하루 전 신 총괄회장이 고열 증세로 입원한 것도 압수수색을 피한 사전 조치로 보고 있으며, 특히 압수수색 당일 롯데 정책본부에 다수의 변호사가 입실해 있던 정황으로 볼 때 롯데의 사전 인지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은 우선 검찰 내부에서 정보가 흘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롯데와 연결된 내부자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롯데는 지난 해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SDJ 회장(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차남 신 회장이 '형제의 난'으로 불린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내홍에 시달렸다. 6개월간 이어진 이 분쟁은 신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