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한 흑해곡물협정의 사실상 종료를 발표했다. 다만, 자국 요구(농산물과 비료 수출 보장)가 수용될 경우 협정에 즉각 복귀할 것이라며 협상을 위한 여지도 남겼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흑해곡물협정은 오늘부터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앞서 밝힌 대로 협정의 데드라인은 17일(오늘)"이라며 "불행히도 러시아 관련 사항이 아직 이행되지 않았고, 따라서 협정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협정이 중단됐지만, 러시아 관련 사항이 이행되는 즉시 러시아는 협정 이행에 복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점령 중인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크림대교 공격은 이번 협정 종료와 무관하다며 푸틴 대통령이 이 협정에 대한 입장을 이미 이전에 발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7월 전쟁 중에도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흑해에서 곡물 수출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 농산물과 비료의 수출을 보장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협정을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해왔으며, 협정 이행여부를 문제삼아 여러차례 협정을 중단시킨바 있다. 

흑해 곡물 수송

이 같은 러시아의 요구는 자국산 상품의 수출 장애물을 제거하라는 것으로 그 핵심은 무역을 위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재가입 시켜달라는 것이다.

금융결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무역(수출)이 원활하게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후 서방이 가한 금융재제를 풀어달라는 것으로 유엔(UN)과 유럽연합(EU)은 농산물 무역을 담당하는 은행(농업은행)이 자회사를 만들어 재제를 회피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수 개월이 걸린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SWIFT 네트워크 재가입은 몇 분만에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의 농산물 품목에 대해 예외규정을 두고 허용한 바 있으나, 러시아가 지속적인 자국산 농산물 수출 보장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서방에서는 러시아의 농산물 수출에 장애가 있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품고 있으며, 러시아가 긍국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농산물과 비료 수출 이상의 그 무엇(SWIFT 제재 해제 등)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협정 참여 중단이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타격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농업은 우크라이나 최대 산업 중 하나로,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수출되는 곡물의 75%가 흑해를 통해 운송됐다. 

지난해 전쟁 이후 해상 수송로가 막힌 우크라이나가 유럽 육로와 강을 통해 곡물 운송을 추진했으나 기존에 비해 운송량은 크게 줄어들었고, 수출 과정에서 주변 유럽 국가들과의 무역 분쟁까지 벌어진 바 있다. 

이뿐 아니라 흑해 운송로가 막힐 경우, 전세계적인 곡물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상황이 악화될 수록 러시아로서는 협상력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러시아가 저개발 국가의 생명줄인 식량을 볼모로 협상을 하려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