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중국, 위험·불법적 행동"...中 "미군이 남중국해 최대 불안 요인"
"중동 위기 등 이견 커 공동성명 불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 아시아·태평양 각국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미국이 일본·필리핀 등 동맹국과 합세해 남중국해·대만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을 압박했다.
아세안 회원국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8개국 정상·대표들은 11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열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미얀마 내전,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핵·미사일 개발 등에 대해 논의했다.
AP·AFP·교도 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아세안 정상회담 개회사에서 "우리는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중국이 점점 더 위험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아세안 국가 선박에 손해를 입히며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약속을 거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대신해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와 EAS에 참석한 블링컨 장관은 또 "대만 해협 양안 간 안정을 보호하겠다는 공동의 약속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인도·태평양에서 항해·비행의 자유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대만이 중국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발언을 중국이 비난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도발적인 행동의 구실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등을 놓고 분쟁 중인 다른 참가국 정상들도 중국 상대 압박에 가세했다.
최근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날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자국이 중국으로부터 "계속해서 괴롭힘과 위협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국가 간 충돌을 방지하는 남중국해 행동 강령을 마련하기 위한 아세안과 중국 간 협의를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아세안과 중국은 2026년까지 남중국해 행동 강령을 완성하기로 하고 강령 초안 작성을 위한 협의를 진행해왔지만, 강령의 구속력 여부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타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도 "남중국해는 생생하고 즉각적인 문제로, 사고가 물리적 충돌로 번질 위험이 실제로 있다"고 경고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이날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에서 "일본 주변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 활동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우려"를 거듭 나타냈다.
반면 리 총리는 전날 회의에서 미국과 일본 등을 겨냥해 "아시아에 블록 대결과 지정학적 충돌을 가져오려는 시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리 총리는 이날도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은 채 동남아 바깥의 국가들이 중국의 남중국해 평화 노력을 존중·지원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남중국해 행동 강령의 "조기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미국과 이 지역 바깥의 몇몇 다른 국가가 남중국해에서 군사력 배치·활동을 늘리면서 대립을 조장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최대 불안 요인"이라고 받아쳤다.
회의에서 아세안 회원국 중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무슬림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즉각 휴전을 거듭 촉구하면서 중동 위기 문제도 거론됐다.
이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확대한 데에는 명확하고 합법적인 이유가 있지만, 미국은 전쟁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군이 최근 레바논 지역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을 공격한 것과 관련해 모든 당사자가 민간인과 평화유지군을 보호해야 하며, 이번에 일어난 일은 분명히 비난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제 문제, 특히 중동 위기에 대한 주요 참여국 간의 큰 의견 차이로 인해 이날 지도자들이 정상회의 공동 성명에 합의할 수 없었다고 한 아시아 국가 외교관이 AFP에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아세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날 EAS 회의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참석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라브로프 장관과 아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한편, 미얀마 내전 문제와 관련해 블링컨 장관은 미얀마 군사정권이 정치범 석방 등 주요 문제를 다루기 전까지 국제사회가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미얀마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미얀마가 이 과정에서 고립되기보다는 교류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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