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에 넘겨진 대통령 중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직접 출석해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탄핵소추 사유들을 부인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21일(현지시간)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열린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관련 의혹들을 부인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변론기일은 약 1시간 40여 분 만에 종료됐다.

BBC는 이날 헌재 주변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였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오후 2시 기준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경운동 노인복지센터 앞 자유통일당 집회에 4천 명, 안국역 주변에는 지지자 200여 명이 모였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헌재 앞에 경력 4000여 명을 배치해 지난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폭력 사태에 대비했다.

이날 대통령 변호인단은 포고령 1호의 작성 경위 등에 대해 진술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 출석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 출석. 연합뉴스 )

윤 대통령 측 차기환 변호사는 "포고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회해산권이 존재했던 군사정권 시절 계엄 예문을 그대로 필사해 작성한 것을 피청구인이 몇 자 수정한 것"이라며 포고령은 "계엄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일 뿐 실제로 집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포고령 1호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12월 3일 밤 11시쯤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발표됐지만, 누가 초안을 작성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은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포고령 작성 과정에서 관련 법전을 찾아봤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고령 1호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포고령을 위반한 사람은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당하고 처벌받을 수 있다.

윤 대통령 측은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 지시한 적도, 한동훈 당시 여당 대표 및 우원식 국회의장, 법조인 등을 체포하라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비상입법기구

헌재는 윤 대통령이 계엄 당시 비상입법기구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물었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담긴 쪽지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재부 장관에게 준 적 있나"라고 묻자 "준 적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러면 이걸(쪽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국방부 장관은 그때 구속이 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도 지난 1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하면서 비상입법기구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야당에서는 윤 대통령이 제5공화국 시절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처럼 국회를 대체할 입법 기구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를 두고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해산하고 거수기 노릇을 할 입법기구를 만들려 한 것"이라며 "쪽지가 아닌 폭탄의 내관이고, 내란죄 입증의 핵심 퍼즐"이라고 강조했다.

부정선거

윤 대통령 측은 이날 국회 측 대리인단이 헌재에 근거 없는 부정선거 주장을 제한해달라고 요청하자 이에 대해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0월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전산 장비 극히 일부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라며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부정선거 자체를 색출하라는 게 아니라 '선관위 전산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린(검사)할 수 있으면 해봐라'(라고 한 것)"이라며 "선거가 정부 부정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을 제기한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자는 차원이었음을 이해해달라"고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이후 헌재 변론기일에도 출석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예정된 변론기일은 23일, 다음달 4일과 6일, 11일, 13일 등이다.

이에 윤 대통령 측이 변론 준비와 변론기일 출석 등을 이유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1차 구속 기한은 오는 28일 끝나고, 법원이 구속기간 연장을 허가하면 2월 7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헌재 변론기일 진행 중에 구속기간이 끝나는 만큼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기 전 제대로 된 조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