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갈등 심화로 글로벌 안보와 경제 안정 위협
수십 년간 베이징과 워싱턴 간 관계가 오르내리더라도 무역과 투자는 양국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양국 간 경제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무역을 넘어 심화되는 갈등과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냉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시나리오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임기 당시, 양국은 깊은 경제적 얽힘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데 주저했다. 당시 2년에 걸친 무역전쟁은 빈번한 협상과 양측의 확전 우려 속에서 전개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양국은 불과 3개월 만에 사실상 상호 무역 금수 조치를 취하며 경제 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수년간 글로벌 안보와 경제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중국센터를 이끄는 릭 워터스 전 미국 고위 외교관은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 디커플링 상태에 있으며, 무역 갈등이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신냉전에 들어섰다고 부정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의 전방위 대응과 중국의 보복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이는 전면적인 대응이 필요한 순간이다. 시 주석과 측근들은 트럼프 첫 임기 이후 이 상황을 대비해왔다. 트럼프의 최근 관세 공세에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으나, 중국은 이제 전면 보복 모드에 돌입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대응 도구는 보복 관세, 미국 기업 블랙리스트, 핵심 광물 수출 제한 등 경제적 무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관리들과 협의한 소식통에 따르면, 베이징은 최근 상호 관세 대응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비경제적 수단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양국은 서로를 상대로 점점 대담해지는 사이버 공격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소식통은 중국이 미국 항만, 수도 시설, 공항 등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수년간 침투해 수집한 데이터, 통화 기록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초, 지난해 12월 제네바에서 열린 비밀 회담에서 중국 관리들이 미국의 대만 지원을 이유로 미국 인프라에 대한 일련의 사이버 공격을 연계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파트너들에 대한 전략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지역 안보 공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가속화될 수 있다.
안보 위협 고조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는 최근 관세 공세 이전부터 미국 정치·군사계에서 높아져 왔다. 지난 4월 10일 상원 청문회에서 샘 파파로 인도·태평양 미군 사령관은 중국의 대만 인근 군사 활동 증가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경제적 양보 없이는 미국의 안보 보장을 철회할 수 있다고 시사하며, 동맹국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무역 갈등이 안보 영역으로 확대될 위험은 양국 고위 관리 간 소통 부재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처음에는 대화를 희망했으나, 형식적 외교 프로토콜을 고집하며 트럼프 팀과 엇갈렸다. 트럼프 팀은 시 주석의 최측근인 차이치 수석비서관(사이버 안보 담당)과의 대화만 원했다.
트럼프의 관세 공세에 직면한 중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시 주석이 직접 전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관리들은 왕이 외교부장에게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접촉할 것을 제안했으나,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중국은 정치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싱가포르 전 총리 리셴룽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같은 중재자를 검토 중이나, 양측 모두 협상에 급할 이유가 없어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목요일 "중국과 거래를 성사시킬 것"이라며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블록 구축과 동맹 경쟁
소통 교착 상태가 이어지며 양국은 동맹을 끌어들이며 세력 구축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수십 개국과 협력을 모색 중이며, 시 주석과 고위 관리들은 미국의 무역 파트너를 끌어들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관세 감면을 대가로 70개국 이상에 중국 상품의 미국 시장 우회 수출 금지, 중국 투자 제한, 저가 중국 제품 유입 방지를 압박할 계획이다. 트럼프는 지난주 스페인어 방송 '폭스 노티시아스'에서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측 모두 동맹 구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의 과잉 생산은 많은 국가를 자극했지만, 중국을 주요 무역·투자 파트너로 삼는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으로 완전히 전환하기 어렵다.
시 주석의 최근 동남아 순방은 이 지역이 미·중 경쟁의 핵심 전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주석의 베트남 방문 직전, 베트남 지도자 토람은 트럼프와 전화로 관세 철폐 협상을 논의하며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을 불쾌하게 했다.
시 주석의 방문 후 중국과 베트남은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약속했으나, 구체적 내용은 없어 베트남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유연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은 유럽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전쟁 처리 방식에 경악한 유럽을 겨냥해, 중국은 최근 4년간 세계무역기구(WTO) 대표를 지낸 리청강을 수석 무역 협상가로 임명했다. 이는 트럼프가 미국을 희생해 중국이 글로벌 무역 규범의 혜택을 봤다고 비판하는 상황에서, 유럽과 공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리청강은 미국을 "일방적 괴롭힘"이라고 비판해온 강경 인사다.
경제 전쟁의 파급 효과
미·중 간 소통 부재가 지속되면서 미국은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 접근을 추가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 조지타운대 라이언 페다시우크 교수는 상무부가 중국 기업의 자회사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며 수출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경제 전쟁이 가속화되면 양측이 사용할 도구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팀슨센터 중국 프로그램 디렉터 윤선은 "현재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무역전쟁을 목격하고 있다"며 "무역전쟁이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위험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