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 노벨화학상 수상·알파폴드·알파고 성과에도

알파벳의 '즉각적인 이익'보다 장기 과학 연구·AGI에 방점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49)는 이제 구글의 최고 AI 책임자로 올라섰고, 2024년에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수억 달러의 부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모회사 알파벳에 돌아온 '가시적인' 사업 성과는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챗GPT에 뒤늦게 놀란 구글... "국대급 선수인데 우승은 못 하는 팀"

검색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구글은 AI 패권 경쟁에서 더 이상 압도적인 리더로 보이지 않는다고 로이터 통신이 13일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22년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으며, 전통적인 검색창 대신 대화형 AI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챗GPT의 기반 기술 중 핵심인 '트랜스포머(Transformer)'는 처음 구글 연구진이 개발한 것이다. 구글은 이를 논문으로 공개했지만, 자체 상용 서비스로 연결하는 데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미네애폴리스의 투자사 딥워터 애셋 매니지먼트의 진 먼스터 매니징 파트너는 알파벳을 두고 "모든 재능을 다 갖춘 팀인데 전국 챔피언십은 못 따는 팀 같다"고 비유했다. 이 회사는 급변하는 AI 시장에서 알파벳의 입지를 우려해 올해 알파벳 주식 약 1,400만 달러어치를 매도했다.

구글 측은 성명에서 자사의 "AI 리더십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과학 혁신에 대한 집요한 집중"을 강조하며, "AI 업계를 아는 누구나 이 연구가 기술적·상업적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돈보다 우주와 철학" - 노벨상까지 겨냥한 연구 목표

허사비스와 함께 일한 인사들에 따르면, 그에게 구글의 단기 수익은 여러 차례 뒷전으로 밀렸다. 그는 딥마인드의 사업 목표 중 하나로 노벨상을 노릴 만큼 '큰 문제'를 풀자는 방향을 제시했고, 실제로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AlphaFold)' 성과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거머쥐었다.

허사비스
(허사비스)

이러한 선택은 의도된 행보였다. 내부 사정을 아는 인사 3명에 따르면, 허사비스는 처음부터 "노벨상을 받을 만큼 중요한 과학 문제"를 딥마인드의 연구 타깃으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그의 AI 비전은 명백히 장기적이다. 해사비스는 2022년 한 팟캐스트에서 "내가 항상 꿈꿔온 것은 인류의 궁극적 번영, 즉 인간이 우주로 나가고,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외계 문명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더 발전하면 "급진적 풍요의 세계, 질병 정복, 인류가 가진 거대 난제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덧붙였다.

"오픈AI와 공동전선도, 금융거래 AI도 건너뛴 결정"

이런 철학은 여러 사업 기회를 흘려보낸 배경이 되기도 했다.오픈AI와의 합작 제안 거절

  • 2019년 전후, 오픈AI는 딥마인드 측에 "누가 먼저 인간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AGI)에 근접하더라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 시점부터는 함께 협력하자"는 취지의 공동 벤처를 제안했다는 증언이 네 명의 관계자에게서 나왔다. AI 안전을 이유로 한 '공동 관리' 제안이었지만, 해사비스는 딥마인드가 단독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블랙록과의 금융 AI 프로젝트 '딥틱(DeepTick)'
    2015년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함께 AI를 금융 거래에 적용하는 프로젝트 구상이 논의됐다. 당시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해사비스는 딥마인드를 "먼저 지능을 완전히 이해('solve'), 그다음 나머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아폴로 프로그램' 같은 존재"로 설명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그 '우주적인 비전'에 비하면 시장과 수익을 논하는 대화는 "갑자기 너무 세속적으로('grubby')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이후 양측은 '딥틱(DeepTick)'이라는 이름의 금융 트레이딩 AI 프로젝트를 검토했지만, 딥마인드는 결국 내부 단독 연구로 방향을 틀었고, 20여 명이 넘는 연구진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수년간 진행되다가 조용히 해산됐다.

알파고의 '신의 한 수'와 구글 재무팀을 긴장시킨 상금 100만 달러

딥마인드는 게임으로 유명해졌다. 2016년 서울에서 열린 바둑 대결에서, 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는 세계 최고 기사 이세돌 9단을 상대로 5국 중 4국을 승리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착오'라고 생각했던 한 수가 사실은 승부를 가른 명수로 판명되면서,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시 허사비스는 이벤트 홍보를 위해 이긴 쪽에 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는데, 문제는 이를 구글 최고 의사결정 라인에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부 재무 담당자들은 뒤늦게 돈을 송금하느라 허둥지둥했고, 상금 자체는 비영리단체에 기부되었지만,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거액 약속은 일부 알파벳 재무진의 불만을 샀다.

일부 투자자들은 "딥마인드는 놀라울 만큼 정교한 장난감('exquisite toys')을 만들 뿐, 그게 어떤 비즈니스로 이어지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며 알파고류의 성과를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딥마인드는 구글에서 떼어내야" - 독립 요구와 AI 안전 논쟁

구글이 2015년 알파벳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자, 해사비스는 딥마인드를 자율주행 업체 웨이모처럼 별도 회사로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루스 포랫 당시 CFO(현재 알파벳 사장 겸 CIO)를 포함한 최고경영진은 강하게 반대했다. AI는 구글 전략의 핵심이며, 딥마인드의 사실상 유일한 고객이 구글인 상황에서 분사는 "불가능한 옵션"이라는 판단이었다.

딥마인드 내부에서는 "오직 구글의 이윤 동기에서 떨어져 있어야 AI를 안전하게 개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다. 허사비스 역시,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을 얻고 제어 불능 상태가 되는) '디스토피아' 가능성을 누구보다 우려해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딥마인드 초기 투자자였지만, 이후 오픈AI를 지원하면서 2016년 이메일에서 딥마인드가 "세계를 지배할 하나의 정신(one mind to rule the world)을 만들려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딥마인드는 나에게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그들이 이기면 정말 나쁜 소식이 될 것"이라고 썼다. 현재 머스크는 또 다른 AI 회사 xAI를 운영 중이다.

98억 달러 태운 딥마인드... 매출은 '사내 정산' 78억 달러

영국 법인 공시에 따르면, 딥마인드는 2020~2024년 5년간 누적 매출이 약 78억 달러(7.8 billion 달러)를 넘었지만, 이는 전부 구글 및 알파벳 내부 다른 서비스에 기술을 제공한 대가일 뿐, 외부 고객으로부터 직접 벌어들인 수익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기간 딥마인드는 운영비로 약 96억 달러(9.6 billion 달러)를 썼다. 해사비스는 인간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AGI)을 목표로 연구 인력과 컴퓨팅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해 왔다.

딥마인드의 연구는 일부 단기 성과도 냈다.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 개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배터리 수명 연장 알고리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독립 사업부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수준의 신사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알파폴드와 이소모픽랩스 - "노벨상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는 구글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AlphaFold)'다. 수십 년간 과학계가 풀지 못한 단백질 접힘(folding) 문제를 AI로 돌파하며, 허사비스와 동료는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딥마인드는 알파폴드 기술을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에게 무료로 공개했다.

이를 토대로 알파벳은 신약 개발 회사 '이소모픽랩스(Isomorphic Labs)'를 설립했고, 허사비스가 CEO를 겸직하고 있다. 이 회사는 AI로 설계한 약물을 2025년 말까지 임상에 진입시킨다는 목표를 내걸었고, 특히 암(종양학)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다만 제약·바이오 산업 특성상 가시적 수익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구글은 성명에서 "노벨상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추구한 결과일 뿐"이라며 "이 상은 우리가 AI 최전선에서 이뤄낸 획기적 연구의 반영"이라고 밝혔다.

챗GPT 이후, 딥마인드와 구글 브레인 통합... '제미나이'와 '나노 바나나'

2022년 챗GPT가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자, 순다르 피차이 CEO는 미국의 AI 연구 조직 '구글 브레인'과 영국의 딥마인드를 통합해 '구글 딥마인드'로 재편했고, 허사비스를 전사(全社) AI 총책으로 앉혔다.

이후 허사비스 체제에서 구글은 대형 언어모델과 챗봇 '제미나이(Gemini)'를 출시해 검색과 다양한 서비스에 통합했다. 일부 벤치마크에서 업계 최고 성능을 기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여름에는 사진·그림·텍스트를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편집하는 AI 포토 에디터 '나노 바나나(Nano Banana)'를 제미나이 앱 안에 선보였다. 출시 나흘 만에 1,300만 명의 신규 사용자를 끌어들이며, 50억 건의 이미지 생성 요청을 처리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알파벳 주가는 이달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규제·경쟁·안전 리스크 속 "모두를 위한 만능 비서" 꿈꾼다

한편 알파벳은 미국과 유럽에서 반독점 조사를 받고 있고, 올해 4월에는 미국 연방법원이 구글이 온라인 광고 기술 시장의 일부를 불법적으로 지배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픈AI는 최근 구글 크롬에 도전하는 새로운 웹 브라우저 'ChatGPT Atlas'를 공개하며 구글의 핵심 사업을 정면 겨냥했다.

AI 안전 문제도 지속적인 도전 과제다. 로이터가 실험한 결과, 구글의 제미나이를 포함한 여러 챗봇은 고령층을 노린 피싱 메일 작성 등 악용 가능성을 드러냈고, 구글은 이후 추가 안전장치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런 환경에서도 허사비스는 장기 과학과 거대 프로젝트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최근 "뿌리(root node)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질병처럼 복잡한 시스템의 '뿌리'를 이해하면, 그 위에 얽힌 다양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컴퓨터 과학 개념이다. 알파폴드를 통한 단백질 구조 예측 역시, 생물학과 질병 이해의 '뿌리'를 건드린 성과로 본다.

차세대 프로젝트 '알파어시스트' - 아이언맨 '자비스' 같은 만능 도우미

허사비스가 특히 공들이는 차세대 프로젝트는 '알파어시스트(AlphaAssist)'라는 '범용 AI 비서' 구상이다. 사정을 아는 인사 5명에 따르면, 알파어시스트는 단순 질의응답을 넘어 사용자의 맥락과 상황을 깊이 이해해, 생산성과 삶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여주는 맞춤형 조언과 실행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글이 공개한 실시간 멀티모달 비서 '프로젝트 아스트라(Project Astra)'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알파어시스트라는 이름과 그 전체적인 비전이 외부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의 가상 비서들은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복잡한 연속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딥마인드는 알파어시스트가 이런 제약을 극복해, 마블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초지능 비서 '자비스(J.A.R.V.I.S.)'처럼 사용자 곁에서 끊임없이 상황을 읽고, 필요를 먼저 파악해 도와주는 존재가 되길 바라고 있다.

"과학자 먼저, 사업가는 그 다음"

허사비스는 자신을 "과학자가 먼저, 기업가는 그 다음"이라고 소개해 왔다. 어릴 적 영국 유소년 체스 대표로 활약했고, 10대에는 게임 회사에서 '테마 파크(Theme Park)'라는 거대 히트작을 만들며 산업에 입문했다. 케임브리지에서 컴퓨터공학 학위를 딴 뒤에는 신경과학 박사 학위까지 마쳤다.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셰인 레그와 함께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당신은 뇌를 만들고 싶은가(build brains)?"라고 묻던 초기 시절, 많은 투자자들은 "제품이 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해사비스는 당시를 떠올리며 "너무 상투적인 질문"이라며, 자신의 답은 언제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the most important thing of all time)"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이런 성향은, 어떤 이들에게는 "수익보다 이상을 좇는 위험한 낭만주의"로 보인다. 그러나 알파벳 안팎의 지지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구글이 여전히 가장 큰 꿈을 꾸는 회사로 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구글 수석부사장 제임스 마니야카는 "데미스는 언제나 가장 야심차고, 가장 미친 듯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는 사람"이라며 "그의 전형적인 반응은 '왜 모두에게 이걸 주지 말아야 하지? 왜 모든 문제를 다 풀지 말아야 하지?'라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AI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글과 딥마인드가 어떤 대가와 보상을 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해사비스가 쏘아 올린 '우주적 야심'은, 당장의 분기 실적과는 다른 차원에서 구글의 진로를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