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하락 마감... AI 열풍과 거시경제 리스크에 밀린 크립토 시장

2025년 초 암호화폐 시장을 달궜던 축제 분위기는 연말로 갈수록 급격히 식었다. 최대 암호화폐인 Bitcoin은 연초 상승세와 달리 연말 8만8천 달러 아래에서 거래를 마치며, 10월 초 12만6천 달러를 넘겼던 고점 대비 30% 이상 후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 보도했다. 

WSJ 에 따르면, 이 기간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은 1조 달러를 웃돈다.

월가와의 괴리, 더 뚜렷해진 '온도차'

암호화폐의 4분기 급락은 2025년 한 해 동안 주요 지수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월가의 흐름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 괴리는 암호화폐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로 하여금 기존의 강세 전망을 접고 보다 신중한 시각으로 돌아서게 만들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사 인버전(Inversion)의 최고경영자 산티아고 로엘 산토스는 "펀드 매니저와 개인 투자자 전반에 걸쳐 심리가 상당히 비관적"이라며 "가격은 정체된 채 채택만 늘어나는, 가장 불편한 국면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정책·제도는 진전, 가격은 후퇴

일각에서는 가격만으로 2025년을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워싱턴은 과거 경계의 시선으로 보던 암호화폐 산업을 포용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친(親)암호화폐 성향의 규제 당국자들을 기용하며 성장 친화적 정책을 내놓았다. 대통령 일가가 밈코인 출시 등 자체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든 점도 상징적이다.

비트코인 기념주화
(비트코인 기념주화. 자료화면)

월가 역시 상장과 금융상품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 확대에 기여했다. 서클(Circle) 등 관련 기업의 기업공개(IPO)가 추진됐고, 디지털 자산은 점차 일반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됐다.

수요 둔화 신호... "약세장 진입" 경고

그러나 일부 분석가들은 이미 약세장이 시작됐다고 경고한다. 데이터업체 크립토퀀트(CryptoQuant)의 리서치 책임자 훌리오 모레노는 비트코인 수요 둔화로 가격이 향후 5만6천 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수치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연중 랠리를 이끌었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는 4분기 들어 순매도로 전환돼 10월 이후 약 7만3천 개의 비트코인을 처분했다. '비트코인 재무 기업'들도 공격적인 매입을 멈췄다. 대표적 강세론자로 꼽히는 마이클 세일러가 이끄는 스트래티지(Strategy) 역시 극단적 상황에서는 비트코인 매각 가능성을 시사했다.

AI에 밀린 크립토의 존재감

업계 관계자들은 2025년 암호화폐를 압도한 최대 변수로 인공지능(AI)을 꼽는다. 월가와 실리콘밸리는 AI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이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자금과 관심을 동시에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AI 열풍의 상징인 Nvidia 주가는 2025년 39% 상승한 반면, 비트코인은 연간 기준으로 6% 하락했다. 앤스로픽(Anthropic) 등 AI 기업들의 대형 IPO 기대감도 투자자 시선을 계속 붙잡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조차 생존 전략을 바꾸고 있다. 전력·부지·냉각 설비를 활용해 AI 모델을 호스팅하는 쪽이 채굴보다 수익성이 높아지면서, 사업 구조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6년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거시경제 환경도 부담이다. 고용시장이 약화되고 물가 압력이 완전히 꺼지지 않자, 투자자들은 암호화폐 같은 고위험 자산에서 자금을 빼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낙관론은 남아 있다.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암호화폐 법안인 '지니어스 법(Genius Act)' 통과로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여기에 보다 포괄적인 규제 틀을 제시할 '클래리티 법(Clarity Act)'이 2026년 통과될 경우, 대형 은행과 자산운용사의 본격 진입을 촉발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코인베이스 인스티튜셔널의 공동 CEO 브렛 테즈폴은 "그동안 암호화폐에는 인프라도, 실적도, 규제 체계도 부족했다"며 "이제 그 조건들이 갖춰졌고, 지금이야말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숙취 속에 맞은 2026년,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