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마두로 축출 이후... 트럼프 행정부, 하바나 내부 인사 접촉 모색

미국이 연말까지 쿠바의 공산 정권을 종식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 지도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축출한 이후, 쿠바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보도했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 정부 내부에서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인사를 찾기 위해 물밑 접촉을 진행 중이다. 목표는 수십 년간 지속돼 온 공산 통치를 연말까지 끝내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쿠바 경제가 사실상 붕괴 직전 상태에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핵심 후원자였던 마두로 정권이 무너진 이후 쿠바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쿠바 공산 정권을 즉각 종식시킬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지만, 미 당국자들은 마두로 체포 작전과 이후 그의 측근들이 보인 양보를 쿠바에 대한 '전례이자 경고'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쿠바를 향해 "I strongly suggest they make a deal. BEFORE IT IS TOO LATE"("너무 늦기 전에 협상에 나설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라고 밝히며, 쿠바에 더 이상 "NO MORE OIL OR MONEY"가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마이애미와 워싱턴에서 열린 쿠바 망명 인사 및 시민단체와의 회동에서, 현 정권 내부에서 '상황의 변화를 인식하고 거래에 나설 인물'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일 진행된 마두로 체포 작전은 베네수엘라 지도부 내부 협력자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카라카스에서 벌어진 미군 작전으로 마두로 경호를 담당하던 쿠바 군인과 정보 요원 32명이 사망했다고 미 행정부는 밝혔다.

미국은 쿠바에 대해 군사력 사용을 공개적으로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는 마두로를 전격적으로 체포한 과감한 작전 자체가 하바나에 대한 '암묵적 위협'으로 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보당국의 평가에 따르면 쿠바 경제는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의약품 결핍, 잦은 정전에 시달리고 있다. 쿠바 경제는 1999년 우고 차베스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의 보조금 성격의 석유 공급에 크게 의존해 왔으며, 미국은 이를 차단해 정권을 압박할 방침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쿠바가 수주 내 석유가 고갈돼 경제가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한 쿠바의 해외 의료 파견 프로그램을 겨냥해, 이를 가능하게 한 쿠바 및 외국 정부 관계자들에 대해 비자 제재를 가하는 등 외화 수입원 차단에도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쿠바 공산 정권의 붕괴를 미주 지역 질서 재편을 위한 국가안보 전략의 결정적 시험대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의 결과를 성공 사례로 평가하며, 임시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는 델시 로드리게스의 협력을 미국이 조건을 주도할 수 있는 증거로 들고 있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쿠바의 통치자들은 무능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며, 자신들이 떠받쳐 온 마두로 정권의 붕괴로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쿠바가 "make a deal before it's too late"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쿠바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미국의 적대국 군사·정보 시설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로 운영되는 것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과거의 전통적인 '정권 교체 전략'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압박을 강화하면서도 협상 출구를 열어두는 방식이 베네수엘라에서와 유사하게 쿠바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상당수는 쿠바 공산 체제의 종말을 당연한 목표로 보고 있지만, 재정난에 빠진 정부의 붕괴가 베네수엘라에서처럼 혼란과 인도적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쿠바 정권은 1961년 피그스만 침공과 1962년 이후 이어진 미국의 강력한 제재 등 수십 년간의 압박을 견뎌왔다. 1959년 피델·라울 카스트로 형제가 집권한 이후, 쿠바는 단 한 번도 정치 체제 변화를 놓고 실질적인 협상에 나선 적이 없다.

쿠바의 일상
(하루 0.5달러의 급여로 배급을 위해 휘발유를 위해 줄을 서야하는 쿠바인들의 일상. 레딧)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쿠바 관계 정상화를 이끌었던 리카르도 수니가 전 미 국무부 관리는 "쿠바는 훨씬 더 다루기 어려운 상대"라며 "미국 편에 설 유인이 있는 인물이 사실상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스트로 체제를 끝내는 것이 자신의 역사적 유산을 공고히 하고,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일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쿠바 이민자의 아들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오랜 목표이기도 하다.

한편 하바나 정부는 미국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최근 군복 차림으로 열린 추모식에서 "항복이나 굴복, 강압과 협박에 기초한 어떤 이해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쿠바는 현재도 1,000명 이상의 정치범을 수감하고 있는 것으로 인권단체들은 추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 국민 전쟁'을 가정한 국가 방위 훈련을 실시하며, 대외 긴장 고조에 대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밤마다 정전과 연료 부족으로 어둠에 잠긴 하바나 거리에서는, 주민들이 냄비를 두드리는 익명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한 주민은 "누가 하는지 알 수 없고, 소리만 난다. 모두가 밀고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