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Jeffrey Epstein) 관련 하원 조사와 관련해 증언 녹취에 응하겠다고 제안했다. 미 하원이 의회 모독(contempt of Congress)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제안이다.

클린턴 부부의 변호인단은 3일(화)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House Committee on Oversight and Government Reform) 위원장인 제임스 코머(James Comer·공화·켄터키)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상호 합의 가능한 날짜에 증언 녹취에 출석하겠다"며 의회 모독 절차를 진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자료화면)

코머 위원장은 이 제안이 소환장 요건을 충족해 모독 위협을 해소하기에 충분한지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그는 클린턴 측이 "조건에 동의한다고 말했지만, 그 조건이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사안에 정통한 인사는 위원회가 이달 중 시간 제한 없는 서면·영상 녹취 증언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분명히 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조건·형식 놓고 공방

클린턴 대변인 엔젤 우레냐(Angel Ureña)는 코머를 겨냥해 X에 올린 성명에서 "클린턴 부부는 성실하게 협상했다.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도 "전 대통령과 전 국무장관은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제안은 이르면 수요일 하원 본회의에서 클린턴 부부에 대한 의회 모독 표결이 이뤄질 수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감독·정부개혁위원회는 지난달 두 사람 모두에 대한 모독 결의안을 상정하기로 의결했으며,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이에 동참했다. 본회의에서 모독이 확정되면, 의회는 검찰에 회부하거나 법원을 통한 강제 집행을 추진할 수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드물지만 형사 처벌로 이어진 전례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과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는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태 관련 하원 조사에 불응해 의회 모독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엡스타인 관련성 부인...위원회는 범위 확대 요구

클린턴 부부는 엡스타인의 범죄 행위에 대해 개인적 지식이 없다고 밝혀왔다. 빌 클린턴은 재단 업무로 엡스타인의 전용기에 탑승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엡스타인의 개인 섬을 방문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소환장이 입법 목적을 결여했고 클린턴 부부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반박해 왔다. 지지자들은 서면 진술 제출과 비공식 인터뷰 협의 등 협조가 이미 이뤄졌다고 말한다.

위원회는 앞서 토요일 제시된 대안-빌 클린턴에 대한 조건부 인터뷰와 힐러리 클린턴의 선서 진술서 제출-을 "특혜를 요구하는 불합리한 제안"이라며 거부했다.

1월 31일자 서한에서 빌 클린턴 측은 뉴욕에서 4시간으로 제한된 자발적 서면 녹취 인터뷰를 제안했고, 범위를 "엡스타인 수사·기소와 관련된 사안"으로 한정하자고 했다. 공식 속기사는 위원회가 지정하되, 클린턴 측도 별도 전사자를 둘 수 있도록 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법무부의 엡스타인 수사 처리에 관여한 바가 없다며 선서 진술서로 갈음하자고 제안했고, 대면 증언이 불가피하다면 남편과 유사하되 지식 범위를 반영한 형식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코머 위원장은 주말 제안을 "사실 규명을 저해할 제한을 부과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는 빌 클린턴을 "말이 많은 인물"이라고 표현하며, 제안된 범위 제한으로는 "질문에 거의 답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위원회는 엡스타인 및 그의 측근 기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과의 개인적 관계, 영향력 행사나 불리한 정보 은폐 시도 여부까지 폭넓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선서 하의 증언이 아닌 자발적 인터뷰 형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럴 경우 헌법상 특권을 주장하지 않고도 답변을 거부할 수 있어 조사력이 약화된다는 이유에서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도 선서 진술서는 불가하며 대면 증언을 요구했다.

자료 공개와 정치적 공방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는 빌 클린턴의 사진 여러 장이 포함돼 있으나, 언급 자체가 불법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엡스타인의 2003년 50세 생일 앨범 목차에는 빌 클린턴이 '친구'로 기재돼 있고, 그의 서명이 담긴 자필 메모에는 엡스타인의 "아이 같은 호기심과 변화를 만들려는 의지"를 칭찬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민주당은 코머 위원장과 공화당이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관계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트럼프와 엡스타인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플로리다 팜비치의 이웃으로 교류했으나, 트럼프는 2006년 엡스타인 체포 이전에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해 왔다. 2003년 생일 앨범에는 트럼프의 서명이 있는 편지와 나체 여성 그림이 함께 실렸지만, 트럼프는 위조라며 작성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