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억 달러 규모의 사모대출 펀드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하나의 블랙박스를 열었는데 그 안에 또 수천 개의 블랙박스가 들어 있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구조적 불투명성이 최근 투자자 자금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칼럼에 따르면 최근 투자자들은 클리프워터 코퍼레이트 렌딩 펀드(Cliffwater Corporate Lending Fund)에서 빠르게 자금을 빼고 있다. 이 펀드는 약 420억 달러 규모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사모대출 인터벌 펀드 가운데 최대 규모다.
투자자들이 이 펀드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펀드가 발표하는 순자산가치(NAV)가 실제보다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지분을 매도하려 하면서 환매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
3600개 투자 자산... 무엇을 보유했는지 알기 어려운 구조
클리프워터 펀드의 가장 최근 분기 보고서에는 3600개가 넘는 개별 투자 자산이 나열돼 있다. 여기에는 중견기업에 대한 직접 대출뿐 아니라 다른 사모대출 펀드 지분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투자 대상 기업이 일반 투자자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기업 이름에는 아코디언 파트너스(Accordion Partners), ALKU 인터미디어트 홀딩스(ALKU Intermediate Holdings), ZB 홀드코(ZB Holdco) 등이 포함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펀드는 약 1000개 차입자에게 총 69억 달러 규모의 미집행 대출 약정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차입자가 요청할 경우 펀드가 언제든지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금액이다.
청산 예정 펀드가 계속 존재한 사례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키운 사례 가운데 하나는 아레스 커머셜 파이낸스(Ares Commercial Finance)에 대한 투자다.
클리프워터 펀드는 2021년 이 사모대출 펀드에 처음 투자했다. 이후 수년 동안 투자자들에게 해당 펀드가 2025년 6월 30일 청산될 예정이라고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날짜가 지나도 해당 펀드는 여전히 존재했고, 클리프워터는 계속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그 가치도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2025년 9월 30일 기준 보고서에서는 이 투자에서 1100만 달러의 미실현 이익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당시 공정가치는 6490만 달러, 취득 원가는 5380만 달러로 표시됐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의 '펀드 기간(fund term)' 항목에는 여전히 "2025년 6월 30일 최종 청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3개월 뒤 보고서에서는 투자 원가가 9860만 달러로 늘어났고, 평가액은 1억1150만 달러로 증가했다. 미실현 이익도 1280만 달러로 늘어났다. 그러나 왜 청산 예정이던 펀드가 계속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클리프워터 측은 이후 "2025년 3분기에 해당 펀드가 영구형 펀드(evergreen fund)로 전환됐지만 보고서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오류였다"고 해명했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레벨3 자산'
이 펀드 투자 구조의 또 다른 핵심 문제는 자산 가치평가의 불투명성이다.
2025년 12월 31일 기준 보고서에 따르면 펀드 투자 자산의 71%에 해당하는 297억 달러가 '레벨3(Level 3)' 자산으로 분류됐다.
레벨3 자산은 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존재하지 않아 평가 모델과 가정에 의존해 가격을 산정하는 자산을 의미한다. 즉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가격을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펀드 자산의 약 28%인 116억 달러는 다른 사모투자 펀드 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경우 클리프워터는 자체적으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해당 펀드 운용사가 제시한 순자산가치를 그대로 사용한다.
결국 투자자들은 클리프워터의 평가뿐 아니라 다른 운용사의 평가까지 믿어야 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를 "블랙박스 위에 또 다른 블랙박스를 쌓은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환매 요청 급증... 펀드가 제한 조치
클리프워터 펀드는 인터벌 펀드 구조를 갖고 있어 투자자들이 언제든지 환매할 수 없다. 정해진 기간에만 환매 신청을 할 수 있으며 펀드는 일정 비율까지만 지분을 되사들인다.
일반적으로 이 펀드는 분기마다 전체 지분의 5%까지만 환매를 허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환매 요청은 전체 지분의 14%에 달했다. 펀드는 결국 7%만 환매를 승인했다.
'안정적 NAV'가 오히려 위험 요인
클리프워터 펀드의 순자산가치는 수년 동안 거의 변동이 없었다. 2019년 펀드 출범 당시 10달러였던 NAV는 현재 약 10.52달러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낮은 변동성이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문제로 지적된다.
NAV가 높게 유지될수록 투자자들에게는 "지금 팔면 유리하다"는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모대출 펀드의 구조적 문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펀드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기 유동성을 약속하면서 장기적이고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보유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구할 경우 펀드는 자산을 급히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불리한 가격으로 매각이 이뤄질 경우 남아 있는 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최근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 사모대출 펀드에서 자금 이탈이 확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