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3.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전쟁 이후 휘발유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물가 전반에 뚜렷하게 반영되면서, 올해 초 시장이 기대했던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크게 후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미 노동부가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했다. 이는 전월의 3.3% 상승률을 웃도는 수치이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경제학자 전망치 3.7%도 상회했다. 4월 상승률은 최근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는 전년 대비 2.8% 올랐다. 이는 전문가 전망치 2.7%를 웃도는 수준이며, 전월의 2.6%보다 상승 폭이 확대된 것이다. 근원 물가는 일시적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 가격을 제외해 인플레이션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에너지 가격이 물가 상승 주도...휘발유 28% 급등
4월 물가 상승의 핵심 요인은 에너지 가격이었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 4월 소비자물가는 0.6% 상승했다. 이는 시장 전망과 일치했으며, 3월의 0.9% 상승률보다는 둔화된 수치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은 월간 물가 상승분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18% 상승했으며, 이 가운데 휘발유 가격은 28%, 난방유 가격은 54% 급등했다.
에너지 서비스를 제외한 서비스 가격은 전년 대비 3.3% 상승했다. 세부적으로 주거비는 3.3%, 운송 서비스는 4.3% 올랐다.
이란 전쟁과 관련해 지난달 불안정한 휴전이 발표됐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상업 운항은 여전히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월요일 이란이 제시한 종전 제안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면서, 현재의 교전 중단 상태가 "거대한 생명유지 장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연준, 금리 인하보다 인상 가능성까지 고민하는 국면
이번 4월 물가 보고서는 올해 초 시장이 기대했던 금리 인하가 더 이상 2026년의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연준의 핵심 고민은 흔들리는 노동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 낮춰야 하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최근 노동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정책 판단의 중심은 다시 인플레이션으로 옮겨갔다.
이제 연준 내부의 논의는 "언제 금리를 내릴 것인가"에서 "언제 금리 인상 가능성도 금리 인하 가능성만큼 열려 있다는 신호를 보낼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될 것으로 예상되는 케빈 워시(Kevin Warsh)에게도 부담스러운 과제가 될 전망이다. 그는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기대해 온 트럼프 대통령 아래에서 연준을 이끌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향후 물가 흐름의 상당 부분은 페르시아만을 통한 연료와 원자재 운송이 언제 정상화되느냐에 달려 있다. 해당 물류 흐름이 회복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2차 물가 파급과 제품 부족 우려는 빠르게 완화될 수 있다.
주식시장 하락 출발...다우 300포인트 이상 밀려
물가 지표 발표 이후 미국 증시는 오전 거래에서 하락세로 출발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300포인트 이상, 약 0.7%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정책 선택지를 제한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단순히 주유비 부담에 그치지 않고, 운송비·식품비·의류 가격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쟁발 에너지 충격, 식품·생활용품 가격까지 압박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앞으로 수개월 동안 다른 상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휘발유 가격 상승은 운송비를 끌어올리고, 이는 다시 식품과 의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도 이미 비료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는 향후 식품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립스틱, 골프공 등 다양한 제품도 생산 과정에서 석유 유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중동 지역 혼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 재상승이 노동자들의 주간 실질 소득을 더 갉아먹고, 결과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수요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유류세 일시 중단 지지...쇠고기 관세 완화는 연기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의 파급 효과로 인한 고물가 대응책으로 연방 휘발유세 일시 중단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AAA에 따르면 미국 전국 평균 일반 무연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약 4.50달러로, 1년 전 3.14달러보다 크게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쇠고기 수입 관세를 일시적으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공화당 의원들과 목축업계의 반발이 나오자, 행정부는 해당 계획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휘발유 가격 급등은 소비심리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주유소 가격표에서 체감되는 물가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