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이끄는 스페이스X(SpaceX)가 미국 군사·정보기관의 우주 전략에서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 보도했다.

빠른 위성 생산 능력과 로켓 발사 역량, 그리고 국방부와 정보기관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관계 구축이 맞물리면서 스페이스X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규 군사 계약을 잇달아 확보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미국 정부를 최대 단일 고객인 "고객 A(Customer A)"로 지칭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발생한 매출은 2025년 약 40억 달러에 달했으며, 향후 몇 년 동안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이스X는 현재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노스럽그러먼(Northrop Grumman) 같은 전통 방산 대기업보다 전체 규모는 작다. 그러나 군과 정보기관을 대상으로 한 우주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이들 방산업체의 우주 부문과 경쟁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군, 스페이스X에 65억 달러 규모 계약

미 우주군은 지난달 스페이스X에 두 건의 대형 계약을 부여했다. 하나는 전쟁 수행 시스템을 위한 위성 통신망 구축 계약으로 23억 달러 규모다. 다른 하나는 궤도에서 미사일과 항공기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위성망 구축 계약으로 42억 달러 규모다.

전쟁부 피트 헤그세스 장관과 스페이스 X 일론 머스크
(전쟁부 피트 헤그세스 장관과 스페이스 X 일론 머스크. US NAVY )

두 사업은 모두 국방부의 "기타 거래 권한(Other Transaction Authority)"을 통해 신속하게 추진됐다. 이 방식은 무기와 첨단기술을 도입할 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복잡한 조달 규정을 상당 부분 우회할 수 있어, 국방부가 빠르게 새로운 능력을 확보할 때 활용된다.

스페이스X가 국방부에 제시한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존 방산 조달 체계보다 훨씬 빠르게 기술을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미 보유한 로켓, 위성, 통신망 기술을 기반으로 군이 요구하는 기능을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저궤도 정부 작전의 backbone이 되려 한다"

우주산업 분석업체 퀼티스페이스(Quilty Space)의 킴벌리 버크(Kimberly Burke) 정부업무 담당 이사는 스페이스X가 "모든 열차가 달리는 철도"가 되려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스페이스X가 저궤도에서 정부 작전의 "중추(backbone)"가 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페이스X의 역할은 단순한 발사 서비스 제공을 넘어섰다. 과거에는 정부 위성을 궤도에 올려주는 로켓 회사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군사통신망, 정찰위성망, 미사일·항공기 추적 체계, 정보기관의 비밀 위성 프로그램까지 관여하는 기업으로 확대됐다.

머스크는 최근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과의 인터뷰에서 스페이스X가 미국 국가안보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용 위성통신망인 스타실드(Starshield)와 정부 정보기관의 기밀 프로그램을 언급했다.

스타링크에서 스타실드로

스페이스X의 민간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Starlink)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적 가치가 크게 부각됐다. 전쟁터에서 빠르게 배치할 수 있는 위성통신망은 기존 통신 인프라가 파괴되거나 교란될 때 대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스페이스X는 이를 군사용으로 확장한 스타실드를 통해 국방·정보기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스타실드는 군사 통신, 정찰, 감시, 데이터 전송 등 정부 전용 임무에 맞춘 위성 네트워크다.

미 해병대 훈련 현장에서는 스타실드 안테나가 사용되는 모습도 공개됐다. 이는 스페이스X 위성통신망이 단순한 상업 서비스가 아니라 실제 군사 훈련과 작전 체계에 통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사일·항공기 추적 사업도 확보

스페이스X는 항공기와 미사일을 우주에서 추적하는 사업에서도 빠르게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 사업은 항공 이동표적 표시(Airborne Moving Target Indicator)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국방부는 다양한 기술을 시험하고 있었지만, 군 관계자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실제 작전 가능한 시스템을 배치하는 데 2030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스페이스X가 더 빠른 일정으로 레이더 기반 위성 추적 시스템을 제안하자, 정부는 올해 2월 스페이스X의 역량과 매우 잘 맞는 형태의 요청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향후 다른 기업들도 미사일 추적 임무를 지원하는 계약을 따낼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계약은 스페이스X가 속도와 기존 기술 기반을 앞세워 군의 긴급 수요를 선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보기관과도 깊은 협력

스페이스X는 미 국가정찰국(NRO)과도 협력하고 있다. NRO는 미국의 기밀 정찰위성을 운용하는 정보기관이다. 보도에 따르면 NRO는 스페이스X와 함께 영상 정찰위성 네트워크와 지상 이동표적 추적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NRO는 성명에서 모든 조달은 법과 규정을 준수하는지 검토된다고 밝혔다. 또 200기 이상의 저궤도 위성으로 구성된 자체 시스템이 미국이 지금까지 구축한 가장 발전되고 강력한 정부 정보·감시·정찰 위성군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은 스페이스X가 단지 우주군이나 국방부의 공개 사업만 맡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보기관의 핵심 감시·정찰 인프라에도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방부, "스페이스X는 느린 조달 관행의 반대"

트럼프 행정부 국방부는 스페이스X를 관료주의를 줄이고 빠르게 군사 역량을 배치할 수 있는 민간기업의 대표 사례로 보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은 지난 1월 텍사스 스타베이스(Starbase)를 방문해 국방부가 오랫동안 느린 위원회와 끝없는 프로젝트에 시달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은 스페이스X와 정확히 반대되는 것처럼 들린다"고 밝혔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우주 군사력을 빠르게 확장하는 상황에서, 전통 방산 조달 절차만으로는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스페이스X는 이미 대량 위성 생산, 반복 발사, 재사용 로켓, 저궤도 위성망 운영 경험을 갖고 있어, 군이 원하는 속도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커지는 의존도와 경쟁 우려

하지만 스페이스X의 역할이 커질수록 경쟁과 의존도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군의 우주 포트폴리오에서 스페이스X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공군장관 트로이 마인크(Troy Meink)는 지난 5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일부 프로그램은 "속도에 대한 필요"가 있어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능력의 중대한 성격 때문에 지금 당장 생산 가능한 것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경쟁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스페이스X처럼 즉시 대규모로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머스크와 트럼프 갈등에도 계약 취소 어려웠다

스페이스X의 국가안보상 중요성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이 갈등을 빚었을 때도 백악관 관리들이 군사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스페이스X가 미국 군사·정보 체계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정 기업 최고경영자와 대통령의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이미 군사 작전에 필수적인 인프라가 된 기업과의 계약을 쉽게 끊기 어렵다는 의미다.

스타십도 군사 활용 논의

스페이스X가 개발 중인 대형 로켓 스타십(Starship)도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스타십은 더 큰 화물을 궤도에 올리고, 장기적으로는 심우주 임무까지 수행하도록 설계된 초대형 발사체다.

미 국방당국은 스타십을 이용해 대형 군사 장비나 위성을 더 빠르고 대량으로 우주에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해왔다. 지난해 11월 스페이스X는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인근 군 소유 발사대에서 연간 최대 76회의 스타십 발사를 수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이는 2022년 우주군 관계자들이 해당 발사장에서 예상했던 최대 발사 횟수의 거의 세 배에 달한다. 군 문서에 따르면 높은 발사 빈도는 공군과 우주군이 스타십의 능력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정부의 우주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경쟁 로켓 업체들은 우려

스페이스X의 발사장 확대 계획은 경쟁 업체들의 우려도 낳고 있다. 보잉(Boeing)과 록히드마틴이 공동 소유한 로켓 기업 유나이티드론치얼라이언스(United Launch Alliance)는 케이프커내버럴 일대에서 스타십이 발사될 경우 다른 로켓 운용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페이스X는 장기적으로 발사장을 공항처럼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러 발사 사업자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발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 발사를 드문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고빈도 인프라 산업으로 바꾸려는 스페이스X의 구상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전쟁 기계에 깊숙이 들어간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부상은 미국 군사력의 성격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군사 우주 사업은 록히드마틴, 노스럽그러먼, 보잉 같은 전통 방산업체가 주도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업 우주기업이 민간 기술을 바탕으로 군사·정보 인프라의 핵심을 맡고 있다.

스페이스X는 빠른 발사, 대량 위성 생산, 저궤도 네트워크, 민간 서비스의 군사 전환 능력을 결합해 국방부가 원하는 속도와 규모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스페이스X의 최대 고객이 됐고, 스페이스X는 미국 국가안보 체계에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질문도 낳는다. 미국 정부가 특정 민간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국방 조달에서 속도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경쟁과 감독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머스크 개인의 정치적 행보나 발언이 국가안보 인프라와 충돌할 경우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럼에도 현재 흐름은 분명하다. 스페이스X는 더 이상 민간 우주개발 기업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의 위성통신, 정찰, 미사일 추적, 군사 발사 체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미국 전쟁 수행 능력의 핵심 기반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