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에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프랑스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물에 들어갔다가 최근 며칠 사이 40명이 익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는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를 넘거나 이에 근접하면서 학교와 교통망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관광명소가 문을 닫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세바스티앵 르코르뉘(Sébastien Lecornu) 프랑스 총리는 23일 폭염 대책 긴급회의를 앞두고 지난 18일 이후 익사 사망자가 40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고온 날씨
(프랑스의 고온 날씨. AP)

르코르뉘 총리는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젊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전역에서는 폭염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운하와 강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허가되지 않았거나 위험한 장소에서 수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마리나 페라리(Marina Ferrari) 체육장관은 더위를 피하고 싶은 시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물놀이는 위험하다고 밝혔다.

프랑스 서부·중부 기온 40도 안팎

프랑스 기상청 메테오프랑스(Météo-France)에 따르면 서부와 중부 지역의 기온은 약 40도까지 올라갔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 43도가 예상됐다.

프랑스는 22일 194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더운 오후와 밤을 기록했다.

전국 54개 데파르트망에는 최고 수준인 적색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메테오프랑스는 이를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적색경보 지역은 24일 북부 4개 지역이 추가되면서 58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기상청은 25일에도 기온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26일부터 대서양 연안을 시작으로 기온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가족 차량에서 어린이 2명 숨져

프랑스 남동부 카르팡트라스에서는 22일 2세와 4세 어린이가 집 밖에 세워진 가족 차량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현지 검찰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어머니가 이들을 발견했으며, 출동한 구조대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두 어린이는 숨졌다.

당국은 구체적인 사망 경위와 차량 안에 머문 시간 등을 조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폭염 기간 어린이와 노인, 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메가 블로킹'이 뜨거운 공기 가둬

이번 폭염은 '오메가 블로킹(Omega block)'으로 불리는 기상현상에 의해 장기화하고 있다.

이 현상은 기압 배치가 그리스 문자 오메가(Ω)와 비슷한 형태를 이루면서, 고온의 공기가 양쪽의 차가운 기압계 사이에 갇히는 것을 말한다.

뜨거운 공기가 한 지역에 장기간 머물면서 기온이 날마다 상승하고 폭염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메테오프랑스는 이번 기상 상황이 2003년 8월 유럽 폭염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2003년 폭염은 16일 동안 이어졌으며 유럽 전역에서 평년보다 약 8만 명이 더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폭염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유럽,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유럽은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온난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간 이어지는 폭염과 기록적인 고온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폭염뿐 아니라 폭우와 강풍, 우박을 동반하는 강한 폭풍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강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폭염은 열사병과 탈수, 심혈관질환 등 신체 건강뿐 아니라 수면장애와 불안 등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탈리아 15개 도시에 최고 폭염경보

이탈리아 보건부는 전국 15개 도시에 최고 단계의 폭염경보를 내렸다.

이탈리아 당국은 야외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일부 업종의 작업시간과 업무를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알프스와 아펜니노산맥 일대에서는 폭염과 함께 강한 폭풍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부 지역에는 폭우와 돌풍, 우박이 예보됐다.

고온으로 가열된 대기와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충돌하면서 국지적으로 강한 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기상당국은 설명했다.

영국 남부 최고 37도... 6월 기록 경신 가능성

영국 기상청은 23일 잉글랜드 남부의 기온이 최고 37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했다.

이는 영국의 6월 최고기온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이다.

기온은 24일과 25일에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

폭염으로 학생들의 건강과 교실 온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수십 개 학교가 수업을 조기에 마칠 계획을 세웠다.

유럽 각국의 철도망도 폭염의 영향을 받았다. 일부 열차 운행이 취소됐고 선로와 전력설비 보호를 위해 열차 운행속도가 낮아졌다.

스페인 일부 지역 최고 44도 예상

스페인 기상청은 일부 지역에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기온이 최고 44도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페인 북부의 수십 개 지방자치단체는 산불 위험이 커지자 전통적인 모닥불 행사를 취소했다.

고온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마드리드시는 노숙자와 취약계층이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기후 대피소를 개방했다.

마드리드의 사회복지기관인 사무르 소시알(Samur Social)의 후안 카를로스 아레야노(Juan Carlos Arellano)는 대피소가 냉방공간과 기본적인 음식, 샤워시설, 휴식공간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벨기에 학교, 교회에서 기말시험

벨기에에서는 브뤼셀 인근 한 초등학교가 폭염으로 교실 사용이 어려워지자 기말시험 장소를 인근 교회로 옮겼다.

스위스 북동부 장크트갈렌주는 강과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고 수온이 상승하자 물 사용을 제한했다.

당국은 농업과 산업용수 확보, 수생 생태계 보호를 위해 강과 호수에서 물을 끌어가는 행위를 규제했다.

유럽 각국에서는 에어컨과 선풍기 판매도 급증했다.

파리의 한 매장에서는 문을 연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선풍기가 모두 판매된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 공원 야간 개방 확대

프랑스 당국은 시민들이 밤에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많은 공원을 야간에 개방했다.

파리 뷔트쇼몽 공원에서는 시민들이 낮보다 선선한 밤 시간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교육 프로그램 안내자인 줄리 모랭(Julie Morin)은 가족과 반려견과 함께 공원에서 월드컵 프랑스·이라크전을 시청하며 더위를 피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몸을 식힐 예정"이라며 "공원 야간 개방 덕분에 밖으로 나와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펠탑 오후 4시 조기 폐장

파리의 대표 관광명소인 에펠탑은 폭염으로 22일 오후 4시에 문을 닫았다.

기록적인 고온이 이어지는 남유럽과 달리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북유럽 지역을 찾는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쿨케이션(coolcation)'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서늘한 지역을 여행하는 휴가 형태를 뜻한다.

독일인 관광객 카타리나 렉싱(Katharina Rexing)은 크로아티아 여행을 검토했지만 더 시원한 스웨덴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의 기온은 22도였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30도를 기록했다.

폭염 속 물놀이 안전사고 주의

프랑스에서 발생한 익사 사망은 폭염을 피하기 위한 물놀이가 새로운 안전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익사자 40명 모두가 같은 장소나 동일한 사고로 숨진 것은 아니며, 프랑스 정부가 지난 18일 이후 전국에서 집계한 수치다.

당국은 수영이 허가된 장소를 이용하고, 급류와 수심을 알 수 없는 강·운하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린이의 경우 보호자가 잠시도 시선을 떼지 말고, 술을 마신 뒤에는 수영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각국은 기온이 내려갈 때까지 학교 운영과 교통, 야외작업, 관광시설, 취약계층 보호 조치를 계속 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