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억달러 규모 미국 주식 매각 성공...외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 시가총액 1조2천억달러 기록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 데뷔 첫날 급등하며 인공지능(AI) 반도체 투자 열기를 다시 끌어올렸다.

10일(금)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미국예탁증권(ADR)은 10일 첫 거래에서 13% 상승했다. 이번 상장은 265억달러 규모의 미국 주식 매각으로,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진행한 주식 매각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SK하이닉스는 첫 거래일을 마치며 시가총액 1조2,00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와 AMD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sk 하이닉스
(SK 하이닉스. 자료화면)

이번 상장은 최근 변동성이 커진 글로벌 증시에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투자자들은 AI 관련 기술주 랠리가 지나치게 과열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강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인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을 해왔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교전 재개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면서 시장은 한 주 내내 큰 폭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SK하이닉스의 성공적인 미국 데뷔는 AI 인프라 투자와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기대를 다시 키웠다.

대형 기술투자자들, 최대 70억달러 매입 의향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에는 대형 기술주 투자자들이 대거 관심을 보였다.

회사 측이 상장 전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베일리 기포드(Baillie Gifford), 코튜 매니지먼트(Coatue Management),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 파트너스(Situational Awareness Partners) 등 주요 투자회사들은 합산 최대 70억달러 규모의 주식 매입 의향을 표시했다.

가벨리 펀드의 헨디 수산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메모리 반도체 업종의 장기성과 경기순환성에 대해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아 있다면서도, 2026년과 2027년 사업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2028년 전망에 대해서도 주요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AI 메모리 수요 기대가 상장 흥행 이끌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Nvidia)와 AMD 등 AI 반도체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핵심 공급업체다.

AI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언어모델 개발 경쟁이 이어지면서 HBM은 가장 중요한 반도체 부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AI 칩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SK하이닉스를 AI 인프라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주로 보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 초기에는 엔비디아 같은 GPU 기업이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메모리와 전력, 냉각, 데이터센터 설비 등으로 투자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

미국은행 자산운용의 롭 하워스 선임 투자전략가는 SK하이닉스의 한국 상장 주식이 이미 큰 폭으로 상승했고, 미국 상장에도 상당한 열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투자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지만, 앞으로 수혜 업종은 산업재와 유틸리티 등 다른 분야로도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 상승 주도한 SK하이닉스·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한국 코스피 지수에서 약 5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증시는 최근 큰 조정을 겪었음에도 올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주요 증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AI 반도체 기대감이 한국 증시 전체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투자자들은 그동안 한국 대형 기술주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미국예탁증권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 투자자들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라운드힐 메모리 ETF(Roundhill Memory ETF)로 몰렸다. 지난 4월 출시된 이 ETF는 사상 가장 빠르게 운용자산 200억달러를 돌파한 ETF로 기록됐다.

SK하이닉스의 이번 미국 상장은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 대표 AI 메모리 기업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 증시도 소폭 상승

SK하이닉스 상장 흥행은 미국 증시의 투자심리 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10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엔비디아, 인텔,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주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0.1% 미만 상승에 그쳤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0.3%, S&P500지수는 0.4% 올랐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50포인트, 0.3% 상승했다.

주간 기준으로 S&P500은 1.2%, 나스닥은 1.7% 상승했다. 반면 다우지수는 0.5% 하락하며 4주 연속 상승세를 마감했다.

시장은 최근 AI 투자 열기가 지속 가능한지를 두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동 지역 교전 재개로 유가와 물가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진 점도 투자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의 상장 성공은 AI 관련 핵심 부품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한국 개인투자자들, 변동성에도 장기 낙관

한국 개인투자자들도 올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서울의 33세 직장인 민동건 씨는 최근 주가 급락에도 AI가 이끄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번 주 초 글로벌 기술주 매도세 속에서 화요일 6%, 수요일에도 6% 추가 하락했다. AI 붐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진 영향이었다.

그러나 목요일에는 5% 반등했고, 미국 데뷔를 앞둔 금요일 한국 시장에서는 큰 변동 없이 거래를 마쳤다.

민 씨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일 시장 변동이나 조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며, 현재 반도체 사이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SK하이닉스 ADR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미국 상장은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 할인 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신규 주식 발행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은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달 자금, 한국 내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에 사용

SK하이닉스는 이번 공모로 조달한 자금을 한국 내 신규 메모리 반도체 생산 클러스터와 첨단 반도체 패키징 시설 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일부 자금은 차세대 반도체 제조장비 구매에도 투입된다.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SK하이닉스는 생산능력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고성능 메모리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고객사들은 더 많은 물량을 요구하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CNBC 인터뷰에서 향후 5년 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객사들이 이 계획조차 충분하지 않다며 더 많은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상장, 밸류에이션 재평가 계기 될까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평가를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주목받고 있다.

대만 TSMC는 오래전부터 미국 시장에 상장돼 있으며, 이 덕분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높고 이익 대비 주가도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분야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한국 시장 중심으로 거래되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아왔다.

이번 ADR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에 대한 미국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기존의 밸류에이션 할인도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경기순환성이 강하고 공급과잉 우려가 반복되는 업종이다. AI 수요가 계속 확대되더라도 어느 시점에는 생산능력 확대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데뷔 흥행은 현재 시장이 AI 인프라 투자와 고성능 메모리 수요를 여전히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상장은 SK하이닉스가 한국 증시의 대표 반도체주를 넘어 글로벌 AI 투자자들이 직접 거래하는 핵심 종목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