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국 투자 약속으로 대체...미국은 이란 항구 해상봉쇄 예정대로 재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업용 선박에 20%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중동 지도자들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눈 결과, 20% 미국 보상 수수료를 걸프 국가들이 미국에 하게 될 무역·투자 합의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며, 이 해협을 지나는 화물에 대해 20%의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그러나 이 발표는 백악관과 관계 부처 내부에서도 혼선을 불러일으켰고, 국제법적 논란 가능성도 제기됐다.
"사우디·UAE·카타르·쿠웨이트가 미국에 더 투자 원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이라크 총리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여러 국가 정상들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등과 이야기했다"며 "그들은 미국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국가의 대미 투자 확대를 대가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계획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방식이면 수수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해협 통항 비용을 직접 선박이나 화물에 부과하는 대신, 걸프 국가들의 대미 투자와 무역 합의를 통해 미국의 안보 부담을 보전받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 기준 불명확해 혼선
트럼프 대통령의 전날 발표는 처음부터 불명확한 부분이 많았다.
그는 "운송되는 모든 화물에 대해 20% 비율로 보상받겠다"고 밝혔지만, 이 20%가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산정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20%가 화물 전체 가치의 20%인지, 운송비의 20%인지, 보험료나 안보 비용의 20%인지 불분명했다. 또 실제 징수 주체가 재무부인지, 에너지부인지, 국방부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의 발표 이후 백악관 참모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누가 수수료 징수를 주도할지 급히 검토해야 했다. 일부는 재무부가 맡아야 한다고 봤고, 다른 일부는 호르무즈 해협이 원유 수송로라는 점에서 에너지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계자들은 향후 며칠 안에 백악관 참모들과 회의를 열어 세부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계획을 철회하면서 이 구상은 사실상 중단됐다.
해상봉쇄는 예정대로 재개
그러나 20% 통행료 계획 철회와 별개로,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는 예정대로 재개됐다.
미군은 14일 오후 4시(미 동부시간)부터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다시 시행했다.
이번 봉쇄는 지난달 미국과 이란이 휴전 합의를 맺으면서 해제됐던 조치를 재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양국이 다시 군사 충돌에 들어가면서 휴전은 사실상 무너졌다.
미국은 이란 항구로 들어가거나 이란 항구에서 나오는 선박을 차단해 이란의 수출입을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란과 관련 없는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계속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 통행료 계획을 철회하면서도 이란 항구 봉쇄는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봉쇄 직전 추가 공습도 단행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해상봉쇄 재개를 앞두고 14일 오후 3시부터 이란에 대한 추가 공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CENTCOM은 이번 공습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업용 선박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이란의 능력을 계속 약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최근 이란이 오만 해안 가까이 이동하는 선박을 향해 발포하고, 미국이 지정한 항로를 이용하는 유조선의 통항을 방해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군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 이란 목표물을 상대로 사흘간 공습을 이어왔다.
유가, 24시간 동안 11% 상승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 재개,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국제유가를 다시 끌어올렸다.
WSJ에 따르면 최근 24시간 동안 유가는 11% 상승했다. 전날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10% 급등했다. 이는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침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던 2020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계획을 철회한 뒤에도 원유 가격은 추가로 1% 올랐다. 투자자들은 해협 통항이 전쟁 이전의 정상 상태로 빠르게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통로다. 이 지역에서 선박 통항이 제한되거나 군사 충돌이 이어질 경우, 유가와 운송비, 보험료가 모두 상승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내 휘발유 가격과 물류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11월 의회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반복되는 봉쇄 전략, 효과는 불확실
미국은 전쟁 초기에도 이란 항구 봉쇄를 시행했다.
해당 봉쇄는 지난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이어졌고, 이란 경제에 일부 타격을 줬다. 그러나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거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내려놓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같은 전략을 다시 사용하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댄 샤피로(Dan Shapiro)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는 이전 봉쇄가 이란의 입장을 크게 바꾸지 못했다며, 이번 봉쇄가 전과 다른 결과를 낼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란도 여전히 반격 수단을 갖고 있다며, 이번 조치가 "씻고 다시 반복하는" 식의 순환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란 수입 압박은 클 수 있어
다만 봉쇄가 이란의 수입에는 더 빠르고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재무부 출신인 미아드 말레키(Miad Maleki)는 새 봉쇄의 가장 강력한 효과가 이란의 일부 수입, 특히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휘발유를 차단하는 데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이란 정부는 휘발유 배급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반면 이란의 원유 생산과 수출에 대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은 이미 많은 원유를 해상에 옮겨 저장해둔 상태이며, 이를 통해 중국 등으로의 원유 공급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키는 이란이 카르그 섬에서 빈 유조선에 원유를 계속 실어 육상 저장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서도, 봉쇄는 그 원유가 바다 위에 머물도록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우리가 해협의 수호자"
트럼프 대통령의 20% 통행료 구상은 이란의 조롱을 받았다.
압바스 아락치(Abbas Araghchi) 이란 외무장관은 X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가 "전적으로 옳다"고 비꼬았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상업용 선박의 안전하고 보안이 유지된 통항을 제공하는 자는 그 서비스에 대해 보상받아야 한다"며 "이란은 언제나 해협의 수호자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이 스스로를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라고 부른 데 대한 맞대응이다.
미국은 이란이 해협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이란은 오히려 자신들이 오랫동안 해협의 안전을 관리해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통행료 철회에도 긴장은 계속
트럼프 대통령이 20% 통행료 계획을 철회하면서 즉각적인 국제법 논란은 일단 완화됐다.
그러나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와 추가 공습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한 발표를 한 뒤, 걸프 국가들의 투자 약속을 명분으로 이를 빠르게 조정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제 직접 통행료 대신 걸프 국가들의 대미 투자 확대를 통해 해협 안보 비용을 보전받겠다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란 항구 봉쇄가 재개되고 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앞으로도 에너지 시장과 세계 경제의 핵심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