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 투명성 감시단체 '미국공공신뢰(Americans for Public Trust)'가 미국 내 정치성향 비영리단체로 흘러든 외국 자금 50억달러 이상을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공개했다고 폭스뉴스(FOX)가 지난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이런 형태로는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523개 단체와 관련된 1만2090건의 외국 기부 기록을 검색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해당 비영리단체들은 1969년 세제개혁법(Tax Reform Act of 1969)에서 비롯된 현행법에 따라 기부자 명단을 공개할 의무가 없는 곳들이다.

이번 데이터베이스는 이러한 외국 자금이 미국 여론 형성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일부 의원들의 경고를 뒷받침하는 자료로도 주목받고 있다.

◇ "비영리단체가 외국 선전의 은신처로 악용" 의회 지적

앞서 올해 초 열린 관련 청문회에서 하원 세입세출위원회(House Ways and Means Committee) 위원장 제이슨 스미스(Jason Smith·공화·미주리) 의원은 비영리단체들이 누리는 특혜가 남용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스미스 위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현 상태는 명백히 용납할 수 없다. 비과세 지위는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며,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정당한 자선·교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 외국의 선전이나 선거 개입, 국익을 훼손하는 활동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미스 위원장은 이번 데이터베이스가 단체들 간의 관계를 밝혀낼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 데이터베이스는 세입세출위원회가 수개월간 밝혀온 사실, 즉 외국 자금이 실제 출처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와 중개 조직을 통해 미국 비과세 부문으로 흘러들어와 미국의 정책 결정과 공론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며 "미국공공신뢰가 밝혀낸 문제의 규모와 범위는 우려스러우며, 이는 이러한 허점을 영구적으로 없애기 위한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다시금 부각시킨다"고 강조했다.

다만 폭스뉴스는 법무부(DOJ)가 이번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된 단체들을 상대로 형사 수사를 진행하거나 기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 "법 자체를 바꿔야"…감시단체 "허점 메워야"

미국공공신뢰의 케이틀린 서덜랜드(Caitlin Sutherland) 상임이사는 형사 처벌 여부와 별개로 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덜랜드 이사는 "바로 그것이 문제다. 외국의 영향력이 우리 정치 시스템에 스며드는 것은 불법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 데이터베이스는 이들이 이런 허점을 파악하고 영구적으로 없앨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이용자가 특정 단체와 그 단체가 받은 기부금을 검색할 수 있게 해주며, 자금이 미국 정치 무대에 유입된 시점에 대한 타임라인도 제공한다. 일부 기록은 지난 대선 주기만큼 최근의 것이고, 다른 기록은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지금까지 이런 도구가 없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서덜랜드 이사는 '비영리'라는 용어 자체가 실제 유입되는 자금 규모를 가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영리라는 단어는 노숙자에게 수프를 주고 고아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비영리라는 용어가 반드시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미국에서 비영리단체들은 실제로 로비와 공공정책에 관여하는 거대 조직으로 변모해왔다. 오늘날의 비영리단체는 수십 년 전 우리가 봐온 그런 단체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덜랜드 이사는 또 비영리단체 자격 요건에 대한 정의가 워낙 폭넓다 보니, 단체들이 그 자금을 어디에 쓸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재량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자금은 투표 독려 운동에 쓰일 수 있고, 우편투표 수거(ballot harvesting)에 쓰일 수도 있으며, 주민발의 캠페인이나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시위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 반대 측 "기부자 신상 공개는 협박으로 이어질 수도"

반면 현행 제도를 지지하는 측은 기부자 명단이 공개되면 기부자들이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시장과 작은 정부, 연방주의를 지향하는 주(州) 단위 싱크탱크인 미국입법교류협의회(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 ALEC)가 이런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ALEC은 홈페이지를 통해 "기부자 공개와 기부자 프라이버시는 모두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면서도 "안타깝게도 정부 투명성과 개인 프라이버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기부자 공개를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미국인들의 이름과 자택 주소 같은 개인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으며, 이는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대의에 기부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보호하지만, 많은 기부자 공개 법안은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단체나 사상과 연대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해 설계돼 있다"고 주장했다.

◇ "유권자가 일일이 뒤져서 알 필요 없어야"

그럼에도 서덜랜드 이사는 유권자들이 기존 보도 자료를 일일이 뒤져가며 외국 자금의 행방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 기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나라마다 제각각이라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일 자체가 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덜랜드 이사는 "이는 우리가 미국에서 굳이 자금 내역을 보고할 필요가 없는 다른 나라의 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돈을 받는 단체 목록이 있어도, 외국 자선단체들은 반드시 같은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 자선단체를 위한 중앙 유럽 등록소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외국 자선단체들의 연례 보고서와 보조금 데이터베이스에 의존해 정보를 조각조각 모을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정보 확인 과정은 원래 간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