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뉴섬(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산불 연기로 손상된 주택을 검사·복구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보험사에 관련 비용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LA타임스는 15일(화) 보도했다. 미국에서 이런 기준이 법제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섬 주지사는 이날 앨터디나(Altadena) 지역 산불 생존자와 활동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안 서명식을 열고 "캘리포니아는 생존자들이 홀로 복구 과정을 헤쳐나가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새 보호 조치들은 보험사의 의무를 더 명확히 하고, 주택 소유자들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재정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서부 지역의 산불 시즌이 연중 상시화되고 있는 만큼, 캘리포니아의 복구 의지도 그만큼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2025년 1월 발생한 이튼(Eaton) 산불과 팰리세이즈(Palisades) 산불의 여파에서 비롯됐다. 두 산불은 캘리포니아 주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산불로 꼽히며, 합쳐서 1만6000채 이상의 구조물을 태우고 3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산불로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수천 명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주택 소유자들도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주택 자체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독성 짙은 연기와 재가 스며들어 안전하지 않은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염 사실을 입증하고 정화 비용과 추가 생활비 지원을 받기 위해 보험사를 상대로 오랜 다툼을 벌여야 했다.
이번에 서명된 법안(AB 1642)은 존 하라베디언(John Harabedian, 민주당·패서디나)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이 발의했다. 하라베디언 의원은 산불로 인해 주택 안팎에 석면, 납, 각종 독성 물질이 뒤섞인 재가 겹겹이 쌓여 있다는 우려를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전해 들은 뒤 법안을 마련했다고 전해졌다. 법안은 주정부가 '안전한 주택'의 기준이 되는 과학적 지침을 마련하고, 주택을 어떻게 적절히 복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 통과를 이끈 단체는 '이튼 화재 주민 연대(Eaton Fire Residents United·EFRU)'다. 창립자 제인 로턴 포텔(Jane Lawton Potelle)은 산불 발생 20개월 만에 뉴섬 주지사 옆에서 법안 서명을 지켜봤다. 그는 앨터디나의 자택이 독성 연기로 오염된 채 방치돼 있던 당시, 이미 기침과 흉통에 시달리며 친구 집 차고에 앉아 있던 상황을 떠올렸다.
포텔은 이웃들이 페이스북에 우려스러운 검사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 EFRU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 기관과 보험사들은 서로 엇갈린 지침을 내놓으면서 지원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초기에는 우리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하며 "이 법안이 서명됐다는 것은 집이 그대로 서 있고 겉보기에 멀쩡해도 실제로는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EFRU가 산불 발생 이후 수개월간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검사한 주택의 대다수에서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허용 가능하다고 보는 수준을 넘어서는 납 농도가 검출됐다. 명확한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업체들이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진행한 정화 작업으로 인해, 주택 10채 중 6채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뉴섬 주지사는 같은 날 AB 1642와 짝을 이루는 법안인 AB 1795에도 서명했다.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 보험국(California Department of Insurance) 산하 태스크포스에서 마련한 것으로, 보험사가 보험금 청구 처리 과정에서 AB 1642가 정한 기준을 준수하고 이를 신속하게 이행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텔은 이번 법이 이튼 산불 발생 당시부터 시행되고 있었다면 "우리 모두 지금쯤 이미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포텔의 집을 포함한 많은 주택은 여전히 오염된 상태로 남아 있다. 보험사와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텔의 집에는 2024년에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직도 그대로 세워져 있다고 한다.
하라베디언 의원은 성명을 통해 "앞으로는 한 가족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여부가 보험사의 임의적 판단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해 결정돼야 한다"며 "가족들이 필요한 검사를 받기 위해 싸우거나, 자신의 집이 안전한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보험국 추산에 따르면, 이번 산불 이후 접수된 보험 청구 중 1만3000건 이상이 화염이 아닌 연기로 인한 주택 피해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LA 카운티 산불 이후 연기 피해 주택 생존자들에 대한 보험사들의 대응은 여러 소송으로 이어졌다.
2025년 6월에는 LA 카운티 법원 판사가 캘리포니아의 최후 수단 주택보험사인 FAIR 플랜(FAIR Plan)이 보험 가입자에게 재산상 '영구적인 물리적 변화'를 입증하도록 요구한 것이 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에도 해당 보험사는 연기 피해 청구를 계속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에는 LA 카운티가 스테이트팜(State Farm)을 상대로 연기 피해 청구를 억압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이름이 오른 여러 가족들은 해당 보험사가 자택의 오염 물질 검사 자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활동가들은 검사 결과가 없으면 어떤 복구 조치가 필요한지 알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 재산손해보험협회(American Property Casualty Insurance Assn.) 부회장 캐런 콜린스(Karen Collins)는 이번 두 법안이 "연기 피해 청구에 대한 더 명확한 지침을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을 나타낸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 보험국 태스크포스에 참여해 이번 입법을 이끌었다고 밝히며 "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준이 신뢰할 수 있는 과학, 타당한 방법론, 최고 수준의 기술 전문성에 근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공통된 목표는 소비자에게 명확한 답을 제공하고, 효과적인 복구를 지원하며, 장기적으로 일관되고 지속가능하게 시행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섬 주지사는 이날 하라베디언 의원이 발의한 또 다른 법안에도 서명했다. 이 법안은 산불이나 다른 재난의 영향으로 주택이 거주 불가능해진 경우 주택 소유자가 앞으로 최대 1년간 주택담보대출 상환 유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팰리세이즈·이튼 산불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구제 조치를 1년 더 연장하는 법안도 함께 서명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