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현대∙기아그룹을 필두로 하는 국내 완성차 업계의 내수 고객 충성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작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의 골프가 현대의 i30를 누르고 준중형 해치백 차급에서 최대 판매모델에 오른 것이다. 비록 특정 차급이긴 하지만 수입차가 국산차 판매량을 뛰어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업계가 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골프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보다 24% 늘어난 7천238대로 집계됐다. 반면 동급 경쟁 차종인 i30는 6천644대 팔리는 데 그쳤다.
골프는 폴크스바겐에서 1974년에 출시한 이후 몇 번의 모델 체인지를 거쳐 7세대까지 생산된 모델이다. 훌륭한 가격대비 성능비를 장점삼아 모국인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18.9㎞/ℓ에 달하는 연비와 민첩한 주행성능이 입소문을 타 2005년 국내 시장에 처음 들어온 이래 빠르게 판매 대수를 늘려왔다. 대한민국 이상으로 자국 차에 대한 선호가 높은 일본에서도 '2013, 2014올해의 차'에 골프 7세대가 연달아 선정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의 i30는 현재 해치백 시장에서 유일하게 골프의 아성을 막아내고 있던 모델이다. 연비는 약 13.5㎞/ℓ로 골프에 비하면 밀리지만 유럽스타일의 디자인과 실용적인 공간활용,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 층의 인기를 얻어 해치백 차량이 인기가 없는 국내시장에서도 출시 초부터 안정적인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골프에 1위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것은 수입차의 대중화라는 국내 자동차 시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으로 평가된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입차인 골프가 토종 브랜드인 현대차
i30의 연간 판매량을 누른 것은 의미심장하다"며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수입차를 사면 매국노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세그먼트(차급) 최다 판매 차를 수입차가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해치백 시장이 틈새시장이긴 하지만 이 틈을 시작으로 국내 내수시장이 해외 차에 의해 한번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현대∙기아차 그룹의 내수시장 점유비율이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라 예측한다. 이미 현기차의 내수점유율은 70%이하로 떨어졌다. 수입차업계의 공세에 밀린 탓이 크다. 현대차는 올해 내수 시장 목표를 69만대, 기아차는 48만대다. 현대차의 지난해 내수 판매가 68만5천191대, 기아차가 46만5천200대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 성장'에 가깝다.
국산차 업계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도 내수점유율을 하락시키는데 크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보도된 국산 차의 치명적인 결함과 업체의 부적절한 대응, 내수제품이 해외판매 제품보다 가격은 비싸고 질은 떨어진다는 인식이 소비자를 분노하게 해 차량 구매에서 국산 차를 배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거기에 고질적인 노사문제도 현대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에 현대차 그룹은 '안티 현대차'바람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을 내리기도 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그룹인 피아트 역시 1984년 내수점유율만 64%가 넘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 점유율이 20%대로 급락하고, 2000냔엔 파산위기에 처하는 등 급격한 부침을 겪었다. 이유는 지금 국산차 시장이 처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고객서비스의 불만과 제품의 결함에 있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산차업계의 행보에 대해 "해외에서 아무리 장사를 잘하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룹 전체의 판매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되찾기 힘들다. 국산차업계가 과거의 '내수 충성도'를 되찾는 데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