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의 항공모함 '샤를 드골 호'가 파리 연쇄 테러의 배후인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이슬람 국가)에 공격을 개시했으며, 러시아는 이미 시리아를 통해 IS와 시리아 내 반군을 공격하고 있고, 영국도 시리아 내 IS 공습에 나설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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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IS 탄생의 원인이 된 중동 분쟁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방 국가들에 의한 잘못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해체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들 세 국가의 과거의 야욕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동 분쟁의 불씨로 작용한 것이다.
이 세 국가는 과거 오스만투르크 영토 내 석유산업을 확보하기 위해 임의로 국경선을 그어 민족, 종교 간 갈등을 초래했으며, 이후 냉전 시기에 미국과 러시아가 중동 정세에 개입하며 중동 내 분쟁은 더욱 심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현대에 들어선 미국, 러시아, 중국이 '파워 게임'을 하는 무대로 전락한 탓에, 향후 중동 정세가 안정화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1차 세계대전, 중동 분쟁의 단초>
1차 세계대전 이전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모두 관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은 중동을 하나의 사막 덩어리로 인지하고, 역사, 문화, 종교, 민족에 대한 고려 없이 경계선을 마음대로 결정지었다. 이는 석유 사업과 이권에 필요한 지역을 유리하게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국가와 국경이 만들어지고, 민족은 갈라서게 되었으며, 라이벌 부족이 한 나라에 편성되는 등 전례 없는 극도의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몇 천 년 동안 존재하지 않던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부활했고, 쿠르드 족은 이라크, 터키, 이란에 흩어지는 등 전례 없는 일이 발생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다. 이에 무슬림의 거대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는 이라크에서 패권을 다투게 되었다.
특히 석유 매장량이 많은 이라크의 바쿠, 모술, 키르쿠크 지역은 토착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술수로 인해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서방 국가들은 혼란을 틈타 석유 매장 지역을 본격적으로 획득했다.
<냉전 시기, 중동을 휘젖는 미국과 러시아>
이스라엘과 중동국가 간 끊임없는 전쟁은, 미국과 소련 간의 대리전쟁 양상으로 나타났다.
1956년, 2차 중동전쟁인 수에즈 운하 전쟁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발발했다. 이 때 미국과 소련은 영국과 프랑스를 중동지역에서 견제하기 위해 한시적인 동맹관계를 맺으며 중동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은 사우디의 석유 금수 조치가 원인이 되었다. 세계 석유 위기로 에너지 안보 개념이 실질화되는 틈을 타, 미국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이에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 독트린'을 선포해 중동 지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했다. 이는 중동 지역과 터키에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주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원조 공여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중동 석유산업 접근을 최대한 막고, 미국의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한 외교 정책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1920년대부터 미국 석유기업을 중동에 진출시켰다. 1928년엔 이라크 서유 자원 채굴권을 획득하며 중동 지역 실력자로 부상했고, 이란의 팔레비 정권도 자신의 꼭두각시를 만들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에 진출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이라크 등에 IT 및 군수산업을 적극적으로 진출시키고, 러시아와 동맹관계에 있는 시아파(시리아, 알제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에 대적하기 위해 과격 수니파 단체에 재정 지원을 하기도 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탈레반을 통해 반 소련 세력을 형성하려고 했다. 탈레반이 알카에다 테러그룹과 연계해 반미 세력으로 고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전략이었다.
<현재, 중국 개입, 3자간 파워 게임>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사우디 간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재정 악화에 시달리던 사우디 정부가 미국에 금융지원과 유가 인상을 요청했으나, 클린턴 정부는 오히려 전략 비축유를 방출해 사우디의 석유 수출에 지장을 주었고, 이로 인해 두 국가 간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9.11 테러 당시 항공기 납치에 가담했던 알카에다 조직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을 보유했을 정도로, 사우디 내 반미 감정은 극에 달했다.
한편 미국은 국내 석유와 가스의 생산이 늘어나고, 아프리카 옵션도 생겨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낮아졌다. 또한 이란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며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좋은 입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번엔 시아파를 이용해 사우디 등 수니파 정부를 압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시리아와 이란 문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양보하지 않고 있다. 2013년 경 이란이 친미로 돌아서자 위기의식을 느껴, 오히려 시리아 내전이나 IS 문제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반미 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이 계획하는 '중동 에너지 벨트' 전선 구축을 절대적으로 저지하는 것이 러시아의 대 중동 전략의 기초다.
중국은 경제 둔화에 대한 대안으로 전 세계적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으며, 특히 이라크, 사우디, 이란 등지에서 전방위 에너지 외교를 펼치고 있다. 2011년부턴 사우디 내 유전 개발권을 취득하는 등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9.11 테러로 인해 소원해진 미국-사우디 관계의 공백을 치고 들어간 것이다. 현재 중국은 사우디에 집중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경제 사절단 교류와 산학협력, 정상회담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란 내 반미 감정을 이용해,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에 많은 수의 미사일과 순찰선 20여 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과 중국 간 심각한 외교 마찰을 일으켰으며,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방산 업체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국의 중동 투자는 미국에 공세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미국의 역량이나 중동 영향력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향후 전망>
이 같은 강대국의 중동 내 '파워 게임' 양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IS 격퇴를 배경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이 공조하는 모습을 취하고는 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여지는 충분하다. 강대국이 힘을 모으면 테러 집단 따위 금방 처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이 어떻게 흐를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전쟁엔 항상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에 대한 보복은 그저 명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