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경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파장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와 경쟁 관계에 있는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후보들은 물론 공화당 지도부까지 트럼프를 비판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고, 백악관은 대선레이스 퇴출까지 거론했다. 유엔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도 트럼프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동안 각종 기행과 막말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한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던 트럼프는 이번에도 자신을 향한 거센 비판 여론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며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최근 여론 조사가 미국인을 향한 더 많은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슬림의 증오를 잘 보여준다면서 미국 의회가 행동에 나설 때까지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완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다양한 여론 조사를 보지 않더라도, 증오심은 이해 수준을 넘었다"며 "미국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지하드(聖戰) 신봉자들의 참혹한 공격의 희생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지 대상으로 삼은 무슬림은 이민자와 여행객을 포함한 모든 입국자다.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도 성명 발표 소식을 전하며 "우리는 바짝 경계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은 8일 트럼프를 향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의 선거운동이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저질이며 그의 발언도 모욕적 언사와 독설들"이라며 "다른 공화당 주자들은 트럼프가 만약 후보로 지명되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을 당장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백악관이 공화당 특정 후보를 겨냥해 대선 레이스에서의 '퇴출'을 주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제이 존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이날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주장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무책임할 뿐 아니라, 무슬림을 비방해 무슬림사회와의 연대를 저해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반한다"고 밝혔다.

피터 국 국방부 대변인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의 주장을 지지하거나 미국을 무슬림의 신념과 맞서게 하는 어떤 것도 명백히 미국의 가치에 반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도 반한다"고 말했다.

또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 중인 존 케리 국무장관도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의 발언이 "건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경선 대표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트위터에 트럼프의 생각이 "부끄럽고 편견에 사로잡힌 분열적인" 사고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은 "우리가 모든 무슬림을 싫어하는 것을 트럼프는 원한다"며 "미국은 함께 할 때 위대한 국가가 되며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증은 약한 나라를 만든다"고 말했다.

공화당 지도부와 공화당 대선후보들도 사태 진화를 위해 트럼프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은 이날 오전 열린 비공개 의원모임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와 미국 태생 또는 귀화 여부에 관계없이 시민권의 적법한 절차를 보장하는 제14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무슬림 입국금지)은 우리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 당으로서도 그렇고 국가로서도 마찬가지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졸리(공화·플로리다) 하원의원은 아예 "트럼프가 이제는 경선을 그만둘 때"라며 그의 경선 포기를 압박했다.

대선경쟁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는 미쳤다"며 "그의 '정책' 제안들은 진지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제치고 1위에 나선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 역시 트럼프의 생각이 "내 정책은 아니다"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도 트럼프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멜리사 플레밍 대변인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대선 유세 중 나온 (트럼프의) 발언이 가장 취약하고 전쟁의 희생자인 난민들의 미국 재정착 프로그램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의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은 종교와 관계없이 가장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트럼프의 발언은 분열적이고 완전히 틀린 것이다. 그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트위터에 "트럼프가 다른 누군가들처럼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적은 급진 이슬람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 CNN 방송 전화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공화당 지도부까지 비난하고 나섰다'고 물은 데 대해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개의치 않는다"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특히 2001년 '9·11 테러' 때 무너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거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테러를 당할) 더 많은 세계무역센터가 나오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조치가 테러 예방을 위한 조치임을 항변했다.

트럼프는 또 ABC 방송 인터뷰에서도 "우리 건물과 도시를 폭파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은 FDR(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