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수) 파리 주택가에서 고문 흔적이 있는 12세 소녀의 시신이 버려진 여행가방에서 발견돼 프랑스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용의자가 추방 명령을 받은 불법 체류자인 이주민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우파 정치인들은 느슨한 이민정책이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정부에 대한 비판 공세에 나서면서 이민정책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프랑스 이민자에 피살된 룰라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은 지난 14일 파리 19구의 한 아파트 단지의 뜰에서 수습된 12세 소녀 '롤라'를 살해한 혐의로 24세의 알제리 여성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이 여성은 당일 오후 아파트의 입구(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롤라와 함께 있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몇시간 뒤 시신이 들어있던 여행가방을 비롯해 무거운 짐을 나르는 모습이 또다시 CCTV에 포착돼 용의자로 특정됐다.

이 알제리 여성은 현재 살인, 성폭행, 고문 등의 혐의로 파리 남부 교도소에 구금돼 있다.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남성도 함께 체포되었다.

조사 당국에 따르면, 롤라의 사인이 경부압박 등에 따른 질식사로, 부검 결과 소녀의 얼굴과 등, 목 등 신체 곳곳에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끔찍하고 슬픈 사건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사건 현장에 꽃과 양초를 놓으며 숨진 소녀 룰라를 추모했다. 

룰라 추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소녀의 부모를 엘리제궁으로 불러 위로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다흐비아 B'로 알려진 알제리 여성인 용의자가 추방 명령을 받은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이민정책에 논란에 불을 지폈다. 

6년 전 프랑스에 합법적 신분(학생)으로 입국한 용의자는 체류증이 만료된 것이 적발돼 지난 8월 프랑스의 한 공항에서 출국이 제지된 뒤 1개월 내 프랑스를 떠나라는 'OQTF (obligation de quitter le territoire français)'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고 BBC는 전했다.

그는 전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덕분에 즉각적인 출국조치 대신 1개월의 유예기간이 있는 'OQTF'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명령은 10건 중 1건만 지켜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우파 진영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이 정부의 느슨한 이민 정책과 치안력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프랑스의 대표적 우파 인사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는 "이런 야만적인 짓을 한 용의자를 프랑스에 둬서는 안됐다. 너무나 많은 범죄가 불법 이주민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며 "통제받지 않고, 은밀히 이뤄지는 이주를 왜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느냐"고 정부를 성토했다.

지난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우파 인사 에리크 제무르 역시 이번 사건을 '프랑스인 살해'로 규정하며 정부가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반이민 정서를 선동하려는 우파 인사들의 언행을 경계했다

한편, 검찰은 숨진 소녀의 발에는 0과 1이라는 의문의 숫자가 적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와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용의자의 범행 동기를 둘러싼 소문도 현지에서 무성하다고 BBC는 전했다.

용의자의 변호사는 현지에 떠도는 범행동기를 둘러싼 미스테리와 각종 루머를 규탄했다. 

BBC는 잠재적 동기중에 하나로 용의자와 룰라의 어미니 사이의 분쟁을 꼽았다. 용의자는 룰라가 살고 있는 아파트 블록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요구했을때 룰라의 어머니가 거절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