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코로나19 지원 종료 영향 커...높은 에너지 비용도 부담
EU, 올 9월까지 8년 만에 최고 수준...日, 19개월 연속 증가
지난달 말 자산 가치가 38조원대에 이르는 오스트리아의 거대 부동산 기업 시그나그룹의 지주사가 법원에 파산신청을 내 유럽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시그나그룹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이고 유럽권 유력 은행들과 거래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기업 파산이 크게 늘고 있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고 코로나19에 따른 대규모 지원이 종료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좀비 기업을 위주로 속속 무너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과 경제 매체 벤징가,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18일(월) 보도했다.
미국 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감소세를 보인 미국 기업 파산 건수는 지난 9월까지 12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르타(Carta)는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543개 스타트업이 파산이나 해산으로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전체의 467개를 넘었다.
카르타는 또 자사 플랫폼에서 최소 1천만달러(130억원)를 모금한 스타트업 중 87개가 올해 들어 10월까지 문을 닫았다며, 이는 지난해 전체의 배 규모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방송 등 미국 주요 언론들도 최근 주목을 받던 기술 스타트업들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신생기업)에서 좀비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유럽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럽 전역에 걸쳐 기업 도산은 지난 9월까지 9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해 8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역내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올 1월부터 9월까지 파산이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독일 통계청 데스타티스(Destatis)는 지난 6월 이후 월별 기업 파산의 경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이 지속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도 지난 10월 파산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했고,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도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파산이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일본에서도 기업 파산 건수는 지난 달까지 19개월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데이코쿠 데이터뱅크(Teikoku Databank)는 최근 보고서에서 총 773개 일본 기업이 11월에 법적 청산 절차를 시작했다며, 2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최소 30% 늘었다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7개 업종 중 6개에서 전년 대비 증가했는데, 서비스업이 196개로 가장 많았고, 소매업 170개, 건설업 141개 순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를 포함한 일부 국가의 기업 파산 비율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기업 파산은 주로 높은 금리와 코로나19 지원 종료에 더해 특히 에너지 집약적 산업 분야의 높은 에너지 비용에서 비롯됐으며, 운송과 숙박 분야의 타격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과 건설 등 금리에 더 민감한 산업에도 부담이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최근 연속 동결하면서 금리가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전망되지만, 많은 기업이 앞으로 더 높은 금리로 재융자를 받아야 하는 만큼 파산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글로벌 투기 등급 채권의 부도율이 지난 10월까지 12개월 동안 4.5%에 도달한 데 이어 내년에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부도율은 집계 이래 평균이 4.1%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미국과 독일 등 주요 경제권의 파산 건수가 집계 이래 기준에 비하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에너지 보조금과 함께 많은 기업의 저금리 시절 자금 확보가 파산 쇄도를 막을 요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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