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새 결의안에 전투 '중단' 대신 '보류' 문구 조정 요구
단칼 거부→찬성·기권 가능성..."아랍권, 미 변화에 고무"
미, '글로벌 왕따' 취급·국내 지지층 이탈 등에 압박 느낀듯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을 두고 공회전을 거듭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드디어 작동 가능성이 감지됐다.
AP통신,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안보리는 18일(월) 오후 예정된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연기했다.
이는 미국이 자국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문구를 조정하자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결의안에서 전투의 '중단'(cessation)에 반대하지만 '보류'(suspension)는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그간 단적인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의 휴전 촉구 결의안을 좌절시켜온 미국의 태도가 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번 안을 제출한 아랍권은 휴전 촉구 결의안이 가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된 것으로 전해진다.
AP통신은 미국이 이번 결의안에 찬성하거나 기권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미국은 하마스 규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을 지난 10월 18일과 12월 9일 두 차례 거부한 바 있다.
안보리 결의안이 가결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P5)이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결의안은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시급히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전투를 멈추자는 게 골자다.
결의안은 가자지구 주민이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실태를 인정하고 교전 때문에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이 위험에 빠졌다는 우려도 강조한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가자지구 내 민간인 참상이 점점 악화하면서 싸늘해진 국내외 여론 때문으로 관측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행정부는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방어권 보장을 들어 가자지구 침공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
격전지로 돌변한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지구에서는 지난 10월 7일 개전 이후 사망자가 2만명까지 육박했다. 인구 220만명 중 대다수가 전투, 굶주림, 전염병 위험에 노출되는 피란민으로 전락했다.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과도하게 지원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여당 민주당 지지층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국제사회에서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국)의 불편한 심기 속에 미국이 '글로벌 왕따'로 취급받는 듯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유엔 총회에서 이달 12일 표결에 부쳐진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에는 무려 153개국이 찬성해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반대는 미국을 비롯한 10개국이었고 미국의 눈치를 보는 기권도 23개국에 불과했다.
유엔 총회 결의는 안보리 결의와 달리 구속력을 갖지 않아 묵살되기 쉽지만 국제사회 여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향계로 간주된다.
미국이 이번 유엔 총회에서 받은 싸늘한 시선은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뒤에 유엔 총회에서 받은 냉대와 유사한 면이 있다.
가디언은 "미국 행정부 내 견해차가 커지고 있다"며 "일부 관리는 자국에 대한 글로벌 사우스의 환멸을 미국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위선적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면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학살은 정당화할 이유는 무더기로 찾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라고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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