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항모 한 척 본국 철수...이스라엘은 가자서 병력 2만명 빼
전문가들 "전쟁 끝 멀었다"...하마스도 로켓 쏘아올리며 역량 과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 이스라엘군이 병력 일부를 철수시키면서 이번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도 이스라엘 인근에 출동시켰던 2개 항모전단 중 하나를 철수시키는 등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쟁 종식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면서 '저강도의 장기전'을 예상했다.
이스라엘군은 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작년 10월부터 투입돼 지상전을 벌여 온 병력 중 5개 여단을 향후 몇주에 걸쳐 철수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예비군으로 구성된 2개 여단은 해산시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3개 여단은 이스라엘에서 평시업무에 종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 1개 여단이 약 4천명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자지구에서 빠지는 병력은 2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 당국자도 "이는 우리(미국)가 장려해온 대로, 가자지구 북부에서 저강도 작전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에서는 이미 일부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탱크를 물리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가자시티 세이크 라드완 지역 주민인 나세르는 그전까지는 "(이스라엘군) 탱크가 정말 가까이 있었다. 집 밖에서 볼 수 있을 정도여서 물을 길으러 나가지조차 못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알미나와 알하와 등 가자시티 내 여타 지역에서도 이스라엘군 탱크가 철수했으나 교외와 주요 해안도로에는 여전히 일부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36만명에 이르는 예비군을 소집한 이스라엘이 가자 지상전에 얼마나 많은 병력을 투입했는지 공개하지 않은 상태라 5개 여단 철수 이후 가자지구에 남는 병력의 규모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 해군이 작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한 직후 동지중해와 아덴만에 급파했던 항공모함 두 척 중 하나인 제럴드 포드호를 철수시킨다는 계획을 밝힌 것과맞물려 진행됐다.
미국은 이달 5일께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이스라엘에 다시 파견, 이번 전쟁과 관련해 추가적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스라엘군은 병력 철수 등과 무관하게 전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이스라엘군이 저강도 작전으로 이행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진단했다.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미국의 안보협력에 관여했던 마크 슈워츠 전 미군 특수전사령관은 NYT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병력의) 철수는 이 싸움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이며, 이는 미국이 요구해 왔던 것과 결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마스 지휘부와 대원들을 겨냥한 더 많은 정밀폭격과 표적 작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믹 멀로이 전 미국 국방부 중동담당 부차관보도 "(병력 철수는) 이번 전쟁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한데는 미국의 압박 외에도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작년 4분기 경제성장률이 -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예비군 소집을 일부나마 해제해 국가경제에 걸리는 부담을 완화해야 하고, 하마스의 편을 들어 이번 전쟁에 개입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싸움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에 대비해 예비병력을 남겨둬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가자지구 전역에 거미줄처럼 뻗친 땅굴 네트워크에 숨어 게릴라전으로 일관하는 하마스를 상대하려면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와 공병 위주의 전술이 더 유효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의 오페르 셸라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일단 진격을 멈추고 기반시설을 장악 혹은 파괴했다면, 그곳에 그렇게 많은 병력을 그대로 놓아두는 건 게릴라 세력이 원하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전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하마스의 기습을 막지 못한 책임론에 시달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필두로 한 이스라엘 현 정부의 존립과도 직결돼 있다.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는 전쟁이 끝나는 대로 총리를 교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3달 가까이 전쟁을 벌이고서도 하마스의 군사역량 파괴라는 핵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다, 여전히 100명이 넘는 인질이 가자지구 곳곳에 억류된 상황도 당분간 전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는 와중에도 가자지구 곳곳에선 총성과 폭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가자지구 중부 알부레이지에는 이스라엘군 탱크가 진입했고, 알누세이라트와 알마가지, 남부 중심도시 칸유니스 등지에는 폭격이 가해졌다. 가자시티 투파 지역에선 하마스가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이스라엘군 병사 15명이 숨졌다는 주장도 전해졌다.
하마스는 1일 새벽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겨냥해 다수의 로켓을 발사하기도 했다.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인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 등 1천200여명을 살해하고 240여명을 가자지구로 납치해 전쟁을 촉발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후 현재까지 2만1천978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으며, 사망자 대다수는 여성과 미성년자라고 밝혔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주민 대다수는 추위와 굶주림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유엔은 1일 기준으로 가자지구 전체 인구(약 220만명)의 40%가 기아 위험에 놓였으며, 특히 5세 이하 어린이 33만5천명은 심각한 영양실조 위험이 큰 실정이라고 전했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해 가자지구 남부 라파 시내 동물원에서 굶주린 짐승들이 갇힌 우리 사이 천막에서 머무는 11살 어린이 라얀 하라라는 로이터 통신에 "2024년 내 소원은 죽지 않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가자 지상전이 시작된 이래 이스라엘군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173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29명은 아군오사 등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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