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35주년에 공관 창가에 전자촛불도...동영상 올리며 "오늘 우리는 기억한다"
홍콩 시민들 양초 6.4달러 팔거나 '5월35일' 전시판...대만 집회엔 10년만 최대 6천여명 참석

중국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 35주년 추모를 원천 봉쇄한 가운데 홍콩에 주재하는 다수 서방 외교관과 공관이 보란 듯이 그에 맞섰다.

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따르면 톈안먼 민주화 시위 35주년 기념일인 전날 저녁 최소 5명의 홍콩 주재 서방 외교관들이 30여년간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 촛불 집회가 열렸던 빅토리아파크를 찾아 거닐었다.

빅토리아파크에서는 톈안먼 시위 이듬해인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6월 4일 저녁에 수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후 홍콩 당국은 해당 행사를 불허했고 행사 관계자들을 잡아들였다. 또 지난해부터는 6월 4일을 앞두고 친중 단체들이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빅토리아파크 사용권을 선점, 바자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홍콩에서 톈안먼 시위 추모 현장을 찾은 서방 외교관들

(홍콩에서 톈안먼 시위 추모 현장을 찾은 서방 외교관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홍콩 주재 유럽연합(EU) 사무소 부대표, 독일과 네덜란드 총영사가 함께 과거 촛불 집회가 열렸던 시간인 오후 7시30분께 빅토리아파크를 거닐었고 경찰은 곧바로 이들을 에워쌌다.

이들과 별도로 이날 밤 홍콩 주재 프랑스와 벨기에 총영사관 외교관도 함께 현장을 찾아 거닐었고, 일본 총영사는 자신이 빅토리아파크를 거닐고 있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SCMP는 "이들 서방 외교관이 과거 톈안먼 시위를 추모하던 촛불 집회 장소를 깜짝 방문했고 이러한 공개 행보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홍콩 주재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총영사관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톈안먼 시위 35주년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영국 총영사관은 1989년 6월 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1면이 서서히 백지로 바뀌는 영상을 올리고 "35년 전 톈안먼 광장과 주변에서 벌어졌던 평화 시위가 비극으로 끝났다. 일부는 이를 역사와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오늘 우리는 기억한다"고 썼다.

미국 총영사관과 EU 사무소는 사무실 창가에 전자 촛불을 밝혀놓기도 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성명을 통해 "국가안보, 공공 안전과 질서 수호를 위해 일부 권리와 자유는 법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서방 외교관의 '도발'이자 '빈약한 정치적 연극'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의 홍콩 사무소인 주홍콩 특파원공서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그같이 비판하며 "홍콩 주재 외국 공관의 일부 관리들이 기본 영사 윤리와 행동수칙을 무시하고 인권을 내세우고 이념적 침투의 구습을 활용해 정치 드라마를 연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콩을 흔들고 중국을 억누르려는 그들의 악의적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톈안먼 시위 언급이 아예 금지된 중국에 이어 홍콩에서도 더 이상 추모 행사는 열리지 못하게 됐지만 일부 시민은 여전히 개별적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일부 서점은 이날 양초를 6.4홍콩달러에 판매했고 '5월35일'이라는 전시판을 내걸었다. 5월35일은 중국 당국 검열을 피해 시민들이 6월4일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또 빅토리아파크 수영장을 찾은 한 여성은 HKFP에 "2020년까지 매년 촛불 집회에 참석했었다"면서 "오늘은 수영장에서 64번 사물함을 빌리고 수영 레인을 35바퀴 도는 방식으로 톈안먼 시위 35주년을 추모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 것은 가장 안전한 방식이다. 당국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추모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전날 밤 거리에서 선동적인 의도로 구호를 외치고 경찰관을 공격했다는 이유 등으로 4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또 빅토리아파크 인근인 코즈웨이베이 등에서 휴대전화 전등을 켜거나, 국가보안법 관련 책을 들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10여명을 연행했다. 이 중에는 현장을 촬영하던 스위스 사진가도 포함됐다.

홍콩 경찰은 코즈웨이베이 인근에 모여든 취재진에 대해서도 소속과 취재 목적을 물었고 현장에서 시민 대상 불심검문을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대만에서는 톈안먼 시위 추모 집회가 1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열렸다.

대만 중앙통신사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타이베이 장제스 기념관 앞 광장에는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톈안먼 시위 35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중앙통신사는 "대만에 대한 중국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10년 만에 최대 추모 인파가 몰렸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LED 촛불을 들어 올리며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추모 집회를 주최한 대만 민주 단체 화인민주서원(華人民主書院)의 쩡젠위안 국장은 중앙통신사에 올해 참석자가 증가한 것은 라이칭더 총통이 지난달 취임한 후 대만 주변에서 중국군의 기동이 늘어난 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대만 입법원(국회)에서 총통 권한을 축소하고 중국에 우호적인 법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들이 대만에 벌어진 것을 언급했다.

그는 "올해 추모 집회에 홍콩인들의 참석도 크게 늘어났다. 대만에 있는 홍콩인들에 더해 오로지 추모 집회에 참석하고자 홍콩에서 대만으로 날아온 이들도 있다"면서 "홍콩에는 더 이상 톈안먼 시위를 추모할 정치적 공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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