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증시는 '아메리칸 예외주의'가 핵심 투자 전략으로 부상했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점차 미국 외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가 23일(일) 보도했다.
이 매체가 보도한 캐나다 출신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아일랜드 국적을 가진 키스 모팻(Keith Moffat)은 최근까지도 미국 주식에 대부분의 자산을 투자하고 있었다. 한때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몇 주 동안 그는 모든 미국 주식을 처분하고 유럽 및 기타 국제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유럽 방산주에 집중 투자했다.
그는 "미국 시장은 과대평가됐다"고 말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언급한 발언이 투자 결정을 더욱 가속화했다고 밝혔다. "그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실망한 유럽 투자자들이 많다. 왜 우리의 돈을 미국에 묶어두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유럽 증시, 투자자들의 관심 집중
JP모건체이스가 불과 두 달 전 '아메리칸 예외주의'를 2025년의 핵심 투자 테마로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은 미국 시장에서 점차 발을 빼고 있다. 미국의 경제 우위보다는 무역 전쟁과 외교 정책 변화가 가져올 위험 요소를 고려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최근 몇 달간 중국과 유럽 시장은 예상보다 강한 흐름을 보였다.
특히 독일 정부가 1조 유로(약 1조9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승인하면서 유럽 증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은 방위 산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독일 DAX 지수는 올해 들어 약 15% 상승했으며, 투자자들은 대규모 정부 지출이 독일 경제를 침체에서 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고립주의적 외교 정책 기조가 강화되면서 유럽 각국은 자국 방위력 강화를 위해 국방 예산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 방산업체들의 주가는 급등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출신으로 마이애미에서 활동하는 트레이더 리아 홀름그렌(Lia Holmgren)은 "유럽 증시는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DAX 지수와 유럽 은행들이 반등 신호를 보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유럽 기업들로 하여금 더욱 공격적으로 변화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지난 2월 일부 단기 자산을 미국에서 유럽 방산주로 이동시켰다.
홀름그렌은 "모든 투자자가 미국 주식을 선호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기업 가치가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며 "엔비디아(Nvidia)가 다시 10배 성장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투자자들이 다른 시장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증시 성장 둔화...유럽·중국 시장 약진
올해 첫 두 달 동안 유럽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미국 ETF에는 20억 달러 이상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85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갔던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반면, 미국 주식 ETF로 유입되는 자금 흐름은 지난해 말보다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S&P 500 지수는 3.6% 하락한 반면, 유럽 Stoxx 600 지수는 8.3% 상승했다. 이번 주에는 미국 경제의 생산자물가지수(PPI), 내구재 주문, 신규 주택 판매 및 소비자 신뢰도 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으로, 미국 경제의 방향성을 가늠할 또 다른 기회가 될 전망이다.
미국 주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유지하는 투자자들도 여전히 많다. 인공지능(AI)의 성장세에 힘입어 미국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최근 나타난 경제적 균열을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 신뢰지수 하락, 끈질긴 인플레이션, 소비 둔화 등이 미국 경제의 불안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증시가 미국 대비 저평가되어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1년간 Stoxx Europe 6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8.7배 수준인 반면, S&P 500은 24.6배에 달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13배 미만으로 더욱 낮다.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관계 악화...해외 투자 가속
일부 해외 거주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의 관계 악화 가능성을 이유로 미국 내 자산 비중을 줄이고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41세의 미국인 피터 스턴(Peter Stern)은 과거 포트폴리오의 70%를 미국 주식에 투자했지만, 최근 일부 자금을 유럽으로 이동했다.
그는 "나는 유로화를 벌고 유로화를 쓰는데, 내 돈 대부분이 미국에 묶여 있다"며 "미국과 유럽 간 정책 갈등이 심화되면 직장뿐만 아니라 내 자산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턴은 미국 국채 투자에서 손을 떼고 유럽 주식과 채권으로 갈아타면서 유럽의 안보 강화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서양을 건너는 자본 이동에는 높은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미국 주식 일부는 그대로 보유 중이다.
해외 시장 투자, 신중한 접근 필요
오하이오에 거주하는 34세 기업가 토마스 쿠퍼(Thomas Cooper)는 매일 거래하는 주식 투자자로서 최근 금 투자를 늘렸다. 하지만 해외 시장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은 신중히 고려 중이다.
그는 "나는 유럽과 중국, 신흥 시장에서의 투자 우위를 확보할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미국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시장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에 거주하는 앤드류 바넷(Andrew Barnett)은 미국 정책이 경제 성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을 해외 주식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LVMH와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면서도 미국 주식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그는 "유럽에는 27개국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문화, 언어, 은퇴 연령이 있다"며 "장기적으로 미국이 유럽을 능가할 것이라 믿지만, 현재와 같은 시기에는 해외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