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27일(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 시민권 제한 정책과 관련된 판결에서 대통령에게 중대한 승리를 안겼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대법원은 하급심 판사들이 대통령 정책에 대해 전국적 효력을 가진 '전면적 금지명령(universal injunction)'을 쉽게 내리지 못하도록 판결함으로써, 대통령과 사법부 간 권력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작성한 6대 3 판결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이 즉시 시행될 수 있도록 허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해당 명령의 효력을 전국적으로 차단한 하급심 법원들의 판단 범위를 재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판결은 이 정책의 합법성 자체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

(연방 대법원)

이번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법원에 의해 전국적 시행이 금지됐던 여러 정책들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됐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추진하려던 많은 정책들이 부당하게 막혀 있었다"며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워싱턴주 등지의 연방판사들이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전국적으로 중단시킨 세 건의 명령에 대해 그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내려졌다. 판결은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금요일로부터 30일 후에나 발효될 수 있다고 규정했으며, 결과적으로 특정 주에서는 이 명령이 시행될 가능성이 열렸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라 하더라도 부모 중 한 명이 미국 시민 또는 영주권자(그린카드 소지자)가 아닐 경우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연간 약 15만 명의 신생아가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배럿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행정부가 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이견이 없다"며 "하지만 사법부가 그 의무를 무제한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고, 오히려 법에 따라 사법부가 개입을 금지당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사법부의 권한 남용을 '제왕적 사법부'라 지적했다.

그러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공개 낭독하며, 이번 판결을 "법치주의에 대한 참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서면 반대의견에서 "이 명령이 명백히 위헌적이라는 점을 무시한 다수 의견은 중대한 오류이며, 이런 경우야말로 전국적 금지명령이 정당한 구제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10월 개원 이후 9개월 동안 심리한 사건들에 대한 마지막 날에 나온 결정 중 하나다. 이날 대법원은 텍사스주의 온라인 음란물 규제법, 부모가 LGBT 관련 동화 수업을 자녀에게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 연방통신위원회의 인터넷 접근성 확대 자금 조달 구조, 오바마케어의 예방진료 보장 조항 유지 등과 관련된 판결도 함께 내놓았다.

트럼프는 판결 직후 "헌법, 권력분립,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그는 앞으로 이 판결을 토대로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ies)'에 대한 연방자금 중단, 난민 수용 중단, '불필요한' 연방 지출 동결, 성전환 수술 연방 지원 중단 등의 정책도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행정명령 자체의 합법성보다는 사법부가 정책 전체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전면적 구제'는 소송 당사자에게만 해당된다고 판시하면서, 전국적 금지명령의 범위에 제약을 두었다.

하지만 배럿 대법관은 "경우에 따라 일부 주들이 광범위한 구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면 예외적 조치도 가능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단체소송(class action)을 통한 광범위한 구제도 가능하다고 언급되었지만, 실제로 이를 성사시키기는 매우 까다롭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번 판결을 두고 "명백히 위헌적인 정책에 대해 법무부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대신, 법원이 대통령의 위법 행위를 누구에게도 금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영향을 받을 아동의 부모들에게 즉각 단체소송을 제기하고 임시 중단명령을 신청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메릴랜드 소재 연방지방법원 데버라 보드먼 판사는 월요일 긴급 심리를 열기로 했다. 이민자 권익 단체들은 전국적 금지명령 재발령을 요청하며 해당 사건을 단체소송으로 처리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워싱턴주 법무장관 닉 브라운은 "이번 판결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면서도, "대법원이 '당사자 구제'를 위해 광범위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은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면적 금지명령은 과거 민주당·공화당 정권 모두에서 논란이 되어왔으며, 대통령의 정책 전면 시행을 막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해왔다. 이번 판결은 그런 사법 권한의 한계를 재조정하는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이번 판결은 우려스럽지만 제한적인 범위의 결정"이라며, 법률적으로 영향받을 수 있는 가정들을 위한 추가 보호조치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ACLU 이민자 권익 프로젝트 부국장 코디 우프시는 "이 행정명령은 명백히 불법이고 잔혹하다"며 "어떤 아이에게도 적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1868년 제정된 수정헌법 14조의 시민권 조항이 미국 내 불법체류자나 일시적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예: 유학생, 취업비자 소지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이 조항이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로이터/입소스의 6월 11~12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24%가 출생시 시민권 제도를 폐지하는 데 찬성했으며, 52%는 반대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5%만이 폐지를 지지했으며, 공화당 지지자 중에는 43%가 폐지를 지지했다.

올해 들어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여러 차례 힘을 실어주었다. 지난 6월 23일에는 자국이 아닌 제3국으로의 추방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5월 30일과 19일에는 인도적 사유로 부여됐던 이민자들의 임시 체류 자격을 종료하는 행정명령도 인정했다. 다만, 5월 16일에는 1798년 전시법을 근거로 한 베네수엘라인 추방 시도를 절차 부족을 이유로 차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