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거래(circular deals)의 위험과 과거 닷컴 버블의 데자뷔
AI 업계에 번지는 '순환성(Circularity)' 열풍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전반에서 '순환 투자(circular financing)' 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일부 투자자들은 오늘날의 초대형 AI 거래들이 1990~2000년대 닷컴 버블의 과잉 투자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현재 거래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거대하고 구조는 복잡하며, 자금 흐름은 한층 더 추적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통점도 존재한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식으면 엔비디아(Nvidia) 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같은 기업은 매출과 투자 가치 모두에서 이중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순환 투자란 무엇인가
기본 구조는 이렇다. 한 회사가 다른 회사에 돈을 지급하고, 그 회사는 다시 그 돈으로 첫 번째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즉, 서로가 서로의 고객이자 투자자가 되는 구조다. 이런 거래는 투자·대출·리스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1990~2000년대 초에는 이러한 의존적 거래가 주로 통신 장비 산업에서 나타났다. 당시 통신 장비 제조사들은 고객사들이 장비를 살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는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형태를 취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루슨트 테크놀로지스(Lucent Technologies)**였다. 루슨트는 신생 통신회사들에 수십억 달러의 대출을 제공하며 판매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그러나 고객사들이 파산하자 루슨트는 부실채권을 대거 상각해야 했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당시 일부 투자자들은 루슨트 자체의 보고서보다 고객사(예: Winstar Communications) 의 공시에서 루슨트의 위험 노출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엔비디아-오픈AI, 순환 구조의 대표적 사례
오늘날의 AI 투자 순환 구조는 대출이 아닌 상호 지분투자와 구매계약의 얽힘 형태를 띤다.
예컨대 2025년 9월 발표된 엔비디아(Nvidia)와 오픈AI(OpenAI) 의 전략적 제휴를 보자.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오픈AI는 수백만 개의 엔비디아 GPU(그래픽 칩) 를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이 거래는 전통적인 '벤더 파이낸싱'은 아니지만, 자금이 서로 순환하는 구조다.오픈AI는 상장사가 아니어서 재무상황을 공개하지 않지만, 현재 적자를 지속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비디아의 투자금은 오픈AI의 인프라 확충 자금으로 쓰이지만, 그 자금 중 상당액이 다시 엔비디아 제품 구매로 돌아오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윈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서로 자금에 의존해야만 성장하는 인공 거품" 이라며 경계한다.
게다가 거래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엔비디아는 오픈AI 지분 가치가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제품 매출 증가라는 단기 이익을 기대하는 셈이다.
6대 기업 얽힌 '자금의 스파게티 맵'
모건스탠리가 10월 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AI·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AMD·오라클·코어위브(CoreWeave) 간 자금 흐름은 "스파게티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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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는 5년간 3,000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을 오라클(Oracle)에서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자금 조달이 엔비디아 투자에 달려 있어, 만약 엔비디아의 투자금이 무산되면 오라클 또한 엔비디아 칩 구매에 쓸 돈이 줄어드는 연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
AMD는 오픈AI를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오픈AI가 AMD 주식의 최대 10%를 주당 1센트에 살 수 있는 워런트(옵션) 를 제공했다.
이는 사실상 "고객을 사들이는 행위"에 가깝다. -
코어위브(CoreWeave) 는 엔비디아가 5%의 지분을 보유한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으로, 엔비디아로부터 칩을 구매하는 동시에, "팔리지 않은 컴퓨팅 용량은 엔비디아가 전량 매입하겠다"는 보증 계약(2032년까지) 도 체결했다.
이 와중에 코어위브의 최대 고객은 마이크로소프트이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투자자이자 수익공유 파트너이고, 오픈AI는 다시 코어위브의 고객이자 3억5,000만 달러 규모의 주주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 기업의 관계망은 매출·투자·파트너십이 얽힌 순환 고리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선순환이지만, 언제든 악순환으로"
이러한 구조가 반드시 불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AI는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이며,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데이터센터와 연산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문제는 수익화 시점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투자 경쟁이 과열된다는 점이다. 만약 투자자들이 "AI 모델 개발에 쏟는 막대한 자본이 언제 수익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느낄 때,
이 산업은 '벽에 부딪히는 순간(hit a wall)' 을 맞을 수 있다.
이는 닷컴 버블 당시의 순환 투자 구조와 닮았다. 당시에도 '순환성(circularity)'은 상승기에는 선순환(Win-Win) 으로 작용했지만, 거품이 꺼지자 악순환(Vicious cycle) 으로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