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장기화 수순... 기업과 무역국 "새 현실에 적응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교역국에 부과한 대규모 관세를 둘러싼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관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과 상관없이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해 관세 체계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3일 보도했다.
긴급조치권 남용 논란... "무역적자와 펜타닐, 국가비상사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100개국 이상에 광범위한 상호주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미국은 수십 년 동안 가까운 나라와 먼 나라 모두에게 약탈당해왔다"며 "이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한 만큼 우리도 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1조 2천억 달러 규모의 무역적자와 펜타닐 중독 확산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관세 명분을 세웠다. 그러나 하급심은 그가 긴급조치권을 남용했다며 위법 판결을 내렸고, 이에 행정부는 대법원에 항소했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가 IEEPA를 관세 부과에 사용한 첫 사례로, 법적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IEEPA 무효돼도 다른 법으로 관세 유지"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IEEPA 관세를 무효화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즉시 다른 법을 적용해 관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1974년 무역법 122조(Section 122) : 무역 불균형 완화를 위해 최대 150일간 15% 관세 부과 가능, 1930년 관세법 338조(Section 338) : 미국 무역을 차별하는 국가에 최대 50% 관세 부과 가능 등을 예로 들며 "관세는 여기에 머물 것이고, 각국은 협정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이미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무역확장법 232조와 불공정 무역 제재용 무역법 301조를 병행해 자동차, 반도체, 로봇, 항공, 제약 등 핵심 산업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워싱턴 로펌 윌리라인의 무역 전문 변호사 팀 브라이트빌은 "이 행정부는 관세를 경제정책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며 "기업들은 관세가 일상화되는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와 유럽 "현실적 협상 선택"... 한국·베트남 등 이미 합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교역국들에 새로운 협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와 19~20% 수준의 고정 관세 협정을 체결했고, 한국과는 3,5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조건으로 15% 관세 협정에 합의했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통제와 희토류 공급 제재에 맞서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양국은 지난주 한국 경주 회담에서 일시적 휴전에 합의했다.
트럼프는 중국산 펜타닐 관련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로 인하하고, 기술 수출규제 1년 유예를 약속했다. 대신 시진핑 주석은 미국산 대두(soybean) 수입 재개와 희토류 수출 제한 1년 유예를 수용했다.
시장 불안 고조... "관세 환급 1,000억 달러, 전례 없는 혼란"
대법원이 트럼프의 관세 근거를 무효화할 경우, 1,000억 달러 이상의 관세 환급과 매년 수천억 달러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시장 불안도 커지고 있다.
올해 IEEPA 관세는 2025 회계연도 미 세관 순수입 증가분(1,180억 달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덕분에 재정적자는 1조 7,150억 달러로 소폭 축소됐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어니 테데스치 연구원은 "정부가 관세 수입에 중독되고 있다"며 "이는 향후 어떤 행정부든 세율을 낮추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미 세관국 관계자는 "이 정도 규모의 환급은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다"며 "기업들이 직접 '사후 정정 신청(post-summary correction)'을 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하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자극, 기업 실적도 타격
트럼프 관세는 지금까지 소비자 물가에 직접 전가되기보다는 기업의 수익성을 잠식하는 방식으로 작용해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관세가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0.4%포인트 끌어올려 연 3%를 유지시켰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올해 3분기 실적을 앞두고 총 350억 달러 규모의 관세 관련 비용을 보고했다.
오하이오주에 본사를 둔 OTC 인더스트리얼 테크놀로지스의 빌 캐나디 CEO는 "결국 기업들은 생산거점을 미국이나 멕시코로 재이전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 관세의 '새로운 정상(new normal)'은 15%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는 이제 미국 경제정책의 상수"
결국 대법원의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체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관세는 이미 재정 수입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교역국과 기업 모두 새로운 무역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무역 전문가는 "이제 관세는 일시적 조치가 아니라 미국 경제정책의 상수가 됐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