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권을 둘러싼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금융 규제 완화 기조가 은행 인수·합병(M&A)과 자본 규제의 문턱을 낮추면서, 그동안 비교적 '성역'으로 여겨졌던 은행 산업이 행동주의 펀드들의 새로운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코메리카. 블룸버그)
올여름, 비교적 덜 알려진 헤지펀드 홀드코 자산운용(HoldCo Asset Management)은 텍사스 기반 중견은행 Comerica에 매각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섰다. 그 결과 코메리카는 2025년 최대 규모의 은행 거래로 평가되는 Fifth Third Bancorp와의 인수합병에 합의했다.
그러나 홀드코는 이 거래마저 "주주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반대에 나섰다.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표를 던지라고 촉구하는 한편, 두 은행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며 전면전에 돌입했다. 코메리카는 성명을 통해 "거래를 끝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피프스 서드 측도 2026년 초 거래 종결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키코프 등 다른 지역은행으로 확산
홀드코의 공세는 코메리카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KeyCorp를 비롯한 여러 지역은행에서도 경영 개선 또는 매각을 요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공동 창립자인 빅 게이(Vik Ghei)와 미샤 자이체프(Misha Zaitzeff)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지나치게 안주하고 있다"며 추가 타깃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게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또 다른 코메리카'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가 만든 새로운 기회
전통적으로 은행업은 엄격한 규제 탓에 행동주의 캠페인이 드문 분야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은행 거래와 자본 요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규제·기술 비용 부담에 시달리는 중소형 은행들이 합병을 모색하는 가운데, 행동주의 투자자들에게도 개입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S&P Global Market Intelligence에 따르면, 2025년 은행 M&A 거래 규모는 연초 기준으로 202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S&P의 금융기관 리서치 책임자 네이선 스토벌은 "은행권에서 이런 수준의 행동주의는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월가 전반으로 번지는 움직임
코메리카 사례 이후, 기존에 다른 산업을 주로 공략해온 행동주의 투자자들도 은행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블루힐 어드바이저스(Blue Hill Advisors)의 제이슨 블럼버그 대표는 "홀드코의 최근 성과가 자극제가 됐다"며 "2026년은 행동주의가 은행권에서 본격화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은행들의 방어 전략
은행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일부 은행은 정관을 재검토하거나 '포이즌 필(poison pill)'로 불리는 주주권리계획 도입을 검토하고, 대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반대로 행동주의 반발을 우려해 인수·합병 논의를 잠정 중단한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은행권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은 예금의 수탁자라는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으며, 지역은행의 경우 이사회와 경영진이 지역사회 인사들로 구성돼 결속력이 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결권 자문사 ISS는 "홀드코의 코메리카 캠페인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피프스 서드와의 인수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권고했다. 해당 주주총회는 1월 초 열릴 예정이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세와 은행권의 방어전이 맞물리면서, 미국 은행 산업은 2026년을 앞두고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