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법원이 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언론 재벌 지미 라이(Jimmy Lai·78)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미·중 관계(U.S.-China relations)에 새로운 마찰 요인을 더하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중 정상 외교 앞둔 '민감한 변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에게 라이의 석방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중국 방문을 통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으로, 라이 사건은 세계 최대 경제국 간 협상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가보안법 최대 형량

라이에 대한 이번 형량은 홍콩 국가보안법(Hong Kong national-security law) 시행 5년여 만에 선고된 가장 무거운 형이다.

Jimmy Lai
(Jimmy Lai. AFP)

그는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선동적 기사 게시(publishing seditious articles)와 해외 제재를 촉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는 2024년 법학자에게 선고된 10년형을 넘어선 것이다.

라이와 함께 기소된 공범 8명도 6년 3개월에서 10년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5명은 재판 과정에서 라이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인물들이다.

침묵 속 미소로 법정 드나들어

라이는 판결이 낭독되는 동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흰 재킷과 안경을 착용한 그는 법정에 들어서고 나오는 길에 부인 테레사 라이(Teresa Lai)와 은퇴한 홍콩 가톨릭 주교 조지프 젠(Joseph Zen) 추기경 등 가족과 지지자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라이 측은 그를 '정치범(political prisoner)'이라고 주장했지만, 홍콩 고등법원(High Court) 3인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 "즉각 석방하라"

미국, 영국(U.K.), 유럽연합(European Union)은 일제히 이번 판결을 비판하며 라이의 석방을 촉구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는 지난달 베이징 방문 중 이 사안을 직접 제기했다고 밝혔다. 라이의 가족은 영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측은 외부의 석방 요구를 내정 간섭이라고 반박했다. 홍콩의 앤드루 청(Andrew Cheung) 수석대법관은 "재판이 끝나기 전 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법치(rule of law)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빈곤 탈출에서 민주화 상징으로

라이의 삶은 '가난에서 부(富)로(rags-to-riches)'의 전형으로 불린다. 그는 어린 시절 중국 본토의 기근(famine)을 피해 밀입국 형태로 홍콩에 들어와 장갑 공장에서 일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섬유 산업에서 성공을 거두며 미국 기업에 스웨터를 공급하는 주요 제조업체를 일궜고,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Giordano)를 통해 아시아 대표 패스트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Tiananmen crackdown) 이후 그는 언론이 중국의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창간한 애플 데일리(Apple Daily)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베이징과 반복적으로 충돌했다. 그는 1989년부터 2020년까지 홍콩 민주화 진영에 1억4천만 달러 이상을 후원한 것으로 추산된다.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낼 가능성

라이의 구금은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pro-democracy protests) 이후 본격화됐다. 그는 평화적 시위 참가, 사무실 전대(sublease)와 관련된 사기 혐의 등으로 이미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돼 있다.

변호인단은 라이가 여러 만성 질환(chronic health conditions)을 앓고 있으며 독방 수감(solitary confinement)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홍콩 당국은 의료 처우가 "충분하고 종합적(adequate and comprehensive)"이라고 반박했다.

가톨릭 신자인 라이에게 감옥은 신앙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는 성경(Bible)과 종교 서적을 읽고, 십자가(cross)를 그리며 수감 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고 지인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은 홍콩 민주화 운동(democracy movement)의 향방뿐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 속 인권과 법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